[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슈퍼 에이트] 영화 전체를 통해 가장 멋진 특수효과는 주인공 아이들이 찍는 좀비 영화 안에 나온다. 주인공 해서웨이 형사가 좀비를 만나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운 좋게도 벽에 반짝거리는 못들이 삐져나와 있는 게 아닌가. 형사는 좀비를 벽에 밀어붙이고 못이 머리에 박힌 좀비는 발버둥 치며 죽는다. 이걸 어떻게 했느냐고? 트릭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그 못은 모두 알루미늄 호일로 만든 것이니 말이다, 영화는 굳이 그 못의 재료가 무엇인지 설명해줄 필요도 없다. 척 봐도 알루미늄 호일로 만든 것이 보이니까.

조잡하다고? 물론 그렇다? 12살짜리 애들이 슈퍼 8 카메라로 찍어 만든 아마추어 영화이니 그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특수효과는 감탄사를 자아낸다. 속임수의 정체는 훤히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디어의 명쾌함과 재미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알루미늄 호일이라는 것이 드러나 있기 때문에 더 재미있는 것일 수도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것들은 특수효과의 일반적인 재미 중 하나였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재미있는 장면들을 만들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들이 동원되었는데,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도전의 재미가 있었고, 관객들에게는 탐정처럼 그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CG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는 [터미네이터 2]에서도 진짜로 재미있는 장면들은 대부분 이런 구식 특수효과들이다. 더 화려한 CG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액체 금속 로봇 CG는 평범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린다 해밀턴의 쌍둥이 자매를 동원해 만든 소박한 도플갱어 트릭이나, 액체금속의 두 조각난 머리를 표현하기 위해 만든 라텍스는 지금 봐도 사랑스럽다. 마찬가지로 영화 마술에 익숙한 관객들의 눈에는 [터미네이터 2]의 액체 로봇보다 특수분장과 애니매트로닉스로 처리한 [터미네이터]의 자기 치료 장면이 훨씬 재미있다.

나는 지금 CG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CG 전문가들에게 창의력이나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지난 10년간의 변화를 겪은 관객들이라면 아무도 그런 소리를 못한다.) 하지만 그 발전과정 중 영화 마술의 경이가 사라진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영화 속에서 무언가 신기한 일이 일어나면 관객들은 놀라는 대신 그냥 ‘CG구나’라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재미없어진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제 관객들은 공룡들과 변신로봇들이 뛰어다니는 세상을 일상으로 여긴다. 우린 이미 기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다. 여전히 CG는 돈과 시간을 엄청 잡아먹는 괴물이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특수효과를 제공해주는 요정대모이기도 하다. 한 편에서는 마이클 베이가 몇 억 달러를 굴리면서 외계 변신 로봇들을 굴리는 동안, 다른 한 편에서는 가렛 에드워즈가 자동차 몇 대 값 정도의 제작비와 노트북 컴퓨터로 외계 생물이 나오는 초저예산 SF 영화 [괴물들]을 찍는 세상이 온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이들 사이의 간격은 더 좁아질 것이다. 블록버스터만이 특수효과의 스펙터클을 제공해주는 시대는 곧 끝날 것이라는 말이다. 그 때가 되면 마법은 일상화될 것이고 특수효과 공습으로 관객들을 홀린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순진무구한 것이 될 것이다.

그 미래가 어떤 것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그 때가 되면 관객들은 더 이상 극장을 찾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미래가 아닌 과거를 들여다보기로 하자. 6월 21일부터 7월 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마리오 바바의 대표작들을 상영한다. 대부분 호러 장르에 속해 있는 이 이탈리아 거장의 걸작들은 구식 특수효과들의 보고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무엇인지 아는 진짜 장인이 쥐꼬리만한 돈과 창의력만으로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특히 [사탄의 가면]에서 주인공이 카메라 컷 없이 급속도로 늙어가는 장면 같은 건 어떻게 만들었을까? 한 번 직접 보고 과정을 상상해보라.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 = 영화 ‘터미네이터’, ‘사탄의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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