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의 영화낙서판] ‘서유기 리턴즈’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김병만이라는 개그맨의 활용에 있다. 김병만은 누구인가. ‘달인’이다. 당연히 관객들은, 개그맨의 페르소나와 인기에 영합한 이런 영화에서 그의 ‘달인’스러움, 즉 맥가이버 칼과 같은 다재다능함과 정교하게 계산된 어눌함이 교묘하게 결합된 슬랩스틱을 기대한다.

놀랍게도 ‘서유기 리턴즈’에는 이런 슬랩스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21세기 한국에 부활한 손오공으로 나오는 그는 30분이나 지나서야 간신히 얼굴을 들이미는데, 양념으로 넣은 로맨스와 개그 시간을 제외하면 그가 하는 일은 여의봉을 들고 요괴 넷을 성실하게 때려잡는 일밖에 없다. 물론 그는 그것도 잘 한다. 하지만 관객들이 기대한 것이 심심하게 풀어낸 정통액션은 아니지 않은가.

영화가 김병만을 이렇게 활용한 이유는 뭔가. 뭔가 거창한 예술적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면 여러분은 지나치게 깊이 생각한 것이다. 한 마디로 영화는 ‘달인’ 김병만의 이름을 이용해 코 묻은 돈을 뜯어내는 것 이외엔 다른 생각이 없다. 생각이 너무 없어서 그 ‘달인’이 왜 인기 있는지도 생각하지 못하는 단계까지 간 것이다.

신기할 지경이다. 김병만이 이 영화에 모든 에너지를 투여하지 못한 건 이해가 된다. 그는 본업만으로도 바쁜 사람이니까. 하지만 감독 신동엽(개그맨이 아니라 ‘내 사랑 싸가지’를 감독한 동명이인이다)이 그 빈자리를 채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전혀 이해가 안 된다.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생각해낼 수밖에 없다. 이 어린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전력을 다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왜? 어린이 영화니까.

얼마 전 나는 이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리뷰를 썼는데, 어떤 사용자가 그걸 보고 물었다. 척 봐도 애들 영화인데 왜 굳이 시사회를 찾아 리뷰를 쓰는 수고를 하느냐고. 나는 이 질문이 이상했다. 왜 어린이 영화는 평가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왜 어린이 영화는 당연히 ‘저질’이어야 하는가. 이건 아주 이상한 논리이다. 오히려 어린이 영화이기 때문에 더 엄격한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아이들이 먹는 것과 입는 것에 대해 늘 꼼꼼하게 신경 쓰지 않는가? 왜 영화라고 예외여야 하는가.



물론 아이들에게 건강식품만 먹일 수는 없는 일이고, 몰래 먹는 불량식품이 주는 쾌락 역시 아이들에게 중요한 경험이다. 그리고 ‘외계에서 온 우뢰매’나 ‘영구와 땡칠이’와 같은 영화들은 지금은 2,30대인 당시 어린이들에게 바로 그런 경험을 제공해주었다. 김병만과 같은 개그맨들이 그 전통을 이으려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전통은 생각 없이 그냥 끊어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개그맨들이 알바 뛰면서 찍은 싸구려 영화건, 할리우드가 몇 억을 들여 찍은 대작이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기억에 남는 영화들은 다 이유가 있다. 남기남의 영화들이 아직도 기억되는 건, 그가 저질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이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제작 조건 안에서도 모양이 제대로 잡힌 영화를 만들어내는 프로페셔널리즘과, 가끔 그 열악한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는 상상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사람들이 심형래의 ‘티라노의 발톱’을 기억하는 건, 자신의 능력치를 넘어서는 야심이 현실과 재능의 한계 속에서 무참하게 충돌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영화를 대충 만들지 않았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그들은 몸을 던졌다.

‘서유기 리턴즈’에서는 그 중 어느 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들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그들은 ‘어린이 영화’를 영화를 대충 만들어도 되는 알리바이로 이용한다. 미안하지만 아이들에게 어른과 다른 감수성이 있다는 건 그들에게 성의 없는 영화를 주어도 된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결국 모든 건 성의의 문제이다. 어린이 영화라고 내놓은 작품이 최악 중 최악이라도 난 영화를 만든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생각이 없다. 아무리 재능과 노력을 부어도 시시한 영화는 나올 수 있는 거다. 그렇게 나온 영화가 나의 ‘어린이 영화’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무조건 항의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각각 다른 기준이 있는 거니까. 내가 원하는 건 단 한가지이다. 제발 당신들이 영화를 만드는 동안 진지했다는 증거를 보여 달라. 당신들에게 ‘어린이 영화’가 변명과 알리바이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걸 보여 달라.


칼럼리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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