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터미디어=듀나의 이 영화는..] [초(민망한)능력자들]는 처절하게 잘못 쓰인 제목이다. 이미 원작은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고 이 책 제목은 [The Men Who Stare at Goats]라는 원제와 비슷하면서도 제목으로 적절하게 기능하고 있다. 수입사에서는 코미디니까 웃기는 제목을 쓰는 게 맞다고 착각했을지는 모르나, 원래 존 론슨의 원작과 그랜트 헤슬로프의 영화가 풀어가는 농담은 농담이 아닌 척 시치미를 뚝 떼고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제목을 잘못 지음으로써 농담의 10분의 1은 까먹고 시작하는 셈이다. 옆에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건가.
하여간 그랜트 헤슬로프의 영화는 아내와 헤어진 뒤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이라크로 간 신문기자가 왕년에 미국의 초능력자부대의 일원이었던 남자와 만나게 되면서 시작한다. 신문기자는 그와 동행하게 되면서 80년대 초능력자 부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알게 되고, 이라크에서 겪는 모험을 통해 그 초능력자 부대의 전통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목인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은 뭐냐고? 그건 초능력자 부대가 천리안, 벽 뚫고 통과하기와 함께 시도했던 여러 실험 중 하나이다. 염소를 노려보기만 하면서 염력으로 죽이는 것.
이쯤 되면 존 론슨의 원작이 SF 코미디 소설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엉뚱하게도 이 책은 픽션이 아니다. 존 론슨의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했던 미국 초능력자부대와 거기에 관여했던 실제 사람들의 인터뷰에 바탕을 둔 논픽션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존 서전트는 이 책이 집필되는 동안 인터뷰에 참여했고, 그 결과 같은 내용을 담은 BBC 다큐멘터리 3부작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랜트 헤슬로프의 영화가 존 론슨의 책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론슨의 책이 논픽션이라면 헤슬로프의 영화는 엄연히 픽션이다. 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사례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나오는 인물 대부분은 실존인물의 이름만 바꾸었거나 몇몇 실존인물들을 묶어 재창조한 것이지만, 이야기의 틀은 여전히 허구이다. 특히 결말 부분은 그렇다.
분위기는 책과 영화가 전혀 다르다. 존 론슨의 책은 냉정하다. 론슨은 시니컬한 영국인답게 초능력 따위의 멍청한 것을 진지하게 믿으며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미국인들의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하지만 영화는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영화 역시 영화의 뉴에이지 넌센스를 비웃는 건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현재의 이라크로 옮겨가면서 영화는 은근히 이 초능력자 부대의 몇몇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특히 현실세계에서는 잔인무도한 바보짓만 남았던 테러와의 전쟁의 난장판에서 주인공들이 벌이는 속죄의 액션은 거의 돈 키호테적이기까지 하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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