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없는 가수가 비주얼가수가 되기까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별자리 스토리] 김범수가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이소라의 '제발'은 말 그대로 소름 돋는 무대였다. 이른바 '재도전' 논란의 여파를 일시에 잠재워버린 김건모의 손 떨리는 무대가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김범수는 단연 돋보였다. 이제 끝났다 싶은 클라이맥스에서 또 한 차례의 절정으로 이어지는 김범수는 노래 하나로도 반전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결과는 1위. 순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프로그램이라도, 그 1위가 김범수에게 주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데뷔 13년차 얼굴을 내밀고 한 첫 번째 1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범수에게 진짜 넘어야할 산은 노래대결에서의 1위 자리가 아니었다. 이미 그의 가창력은 '얼굴 없는 가수' 시절부터 정평이 나 있던 것. 심지어 빌보드 차트에 처음으로 자신의 노래를 올려놓고도 그 진위를 의심받고, 그 자랑스러운 인터뷰에서조차 얼굴을 드러낼 수 없었던 그가 아닌가. 얼굴 한 번 내밀었다가 음반 판매고가 뚝 떨어지는 경험을 한 그가 받았을 상처는 '승승장구'에 공개된 그 옆얼굴 인터뷰를 통해 절절히 전해진다. 지금에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아마도 그 때는 눈물이 났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해야 될 일은 가창력의 인정보다 '얼굴 있는(?) 가수'로서의 김범수를 선언하는 일이었다. 조금씩 안무와 의상으로 시선을 끌며 '비주얼 가수'라는 닉네임을 농담처럼 대중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더니 그는 급기야 남진의 '님과 함께'를 부르면서 진짜 '비주얼 가수'로 거듭났다. 이것 역시 하나의 반전이다. 그에게 처음 '비주얼 가수'라고 이름 붙여진 것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웃음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얼굴 없는 가수'가 스스로 '비주얼 가수'로 돌아설 때 웃음은 터져 나오기 마련. 하지만 그가 박명수와 함께 심지어 쪼쪼댄스를 추며 부르는 노래만큼 보는 재미를 선사했을 때, 그 누구도 그가 '비주얼 가수'라는 말에 이의를 달 수는 없었다. '비주얼 가수'란 그저 보기 예쁜 것을 보여주는 가수가 아니라, 진심으로 온몸을 던져 대중들을 즐겁게 해주는 가수를 뜻한다는 걸 김범수는 보여주었다.



'승승장구'라는 토크쇼에 1인 게스트로 나온다는 것은 아마도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했던 시절의 김범수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승승장구'에 출연해 자신이 살아왔던 힘겨운 나날들을 담담히 얘기하는 모습은 이제 거친 세파를 뚫고 나와 성숙해진 한 사람을 바라보는 흐뭇함을 전해주었다. 바람이 세찰수록 뿌리는 깊은 법이고, 급류에 깎이고 깎일수록 돌은 더 단단해지고 매끄러워지는 법이다. 김범수는 그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단어를 그 삶 자체로 말하고 있었다.

'승승장구'가 보여준 그런 그가 있기까지 마치 엄마처럼 누나처럼 그를 갈고 닦은 박선주 보컬 트레이너와의 이야기는 그 대기만성의 드라마를 있게 한 숨은 손길을 느끼게 했고, 휘성과 케이윌과의 우정을 넘어선 형제애는 그 힘겨운 드라마의 쉼터 같은 훈훈함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하는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 그는 이제 똑바로 화면을 바라보며 잘 버티고 잘 살아온 자신을 격려해주고 있었다. "너 요즘 멋있어졌더라." 그의 말처럼 김범수는 정말 멋진 가수가 되어 있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 = 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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