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가수’ 고무줄 편성, 그리 자신이 없어서야
[엔터미디어=최명희의 대거리] 드디어 빅뱅이 일어난다. 일요일 저녁 예능 프로그램의 자웅을 겨루고 있는 KBS ‘해피선데이-1박2일’(이하 ‘1박2일’)과 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가 동시간대에 진검 승부를 겨룬다. ‘나가수’가 이번주 방송시간대를 옮기면서 지난 수년간 동시간대 절대 강자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1박2일’과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된 것.
‘나가수’가 두 차례의 파격편성을 통해 ‘1박2일’과 승부를 벌인 경험은 있지만 비슷한 시간대에 시작해서 같은 시간에 끝이 나는 진정한 경합은 이번이 처음이다. MBC는 오는 10일 ‘신입사원’ 후속 프로그램인 새 코너 ‘집드림’을 오후 5시에 편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나가수’는 자연스럽게 방송 시간대가 2부로 이동할 것으로 관측된다.
‘나가수’ 시청률이 대폭 상승하자 이에 고무된 조치로 보인다. 시청률 조사 회사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지난주 ‘나가수’가 135분 파격 편성된 ‘일밤’은 16.9%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반면 ‘해피선데이’ 시청률은 전주보다 하락세를 보이며 17.9%를 나타냈다. ‘나가수’가 방송된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난공불락을 자랑하던 ‘1박2일'이 포진한 '해피선데이'를 불과 1%포인트 차이로 턱 밑까지 추격한 셈이다.
사실 ‘나가수’ 신정수 PD는 기자간담회나 경연현장 공개, 그리고 언론사 인터뷰 등을 통해 기회가 닿을 때마다 ‘1박2일’과의 정면 승부를 염두에 둔 발언을 했다. 맞대결 카드를 만지작 거리던 상황에서 지난주 파격 편성을 통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새 프로그램이 시작한다. '1박2일'과 한 판 붙는다면 시기적으로 아주 적절하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장안의 화제가 되며 신드롬까지 형성하고 있는 데다 시청률까지 잘 나오고 있는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너무 자신감이 결여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가수’의 시간대 이동은 ‘나가수’ 제작진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집드림’ 김준현 PD의 간담회를 통해 알려졌다. 더구나 ‘시간대 이동이 한시적인 것이며 정확한 편성은 첫 방송 뒤 시청률 추이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되자 김준현 PD는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집드림이 먼저 방송될 지, ’나가수‘가 먼저 방송될 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PD가 자신의 프로그램이 언제 방송될 지도 모르고 기자간담회에 나왔다는 말인데 크게 믿음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일밤’ 선배격인 ‘나가수’ 제작진이 ‘어느 정도 자리를 확보한 우리는 제대로 된 큰 상대와 싸우러 간다. 후배 ‘집드림’ 제작진은 편하게 시작해라’라는 신호를 줬다면 얼마나 멋지고 기대되는 일일까. '1박2일'에 대한 부담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미 '나가수'는 '1박2일'가 겨룰 만큼 성장했다. 그런데 이번 조치는 ‘우리가 한번 싸우고 와서 승리가 보장되면 계속 싸우고, 질 것 같으면 너희가 가라’라는 얘기 아닌가. MBC 입장에서도 시작도 안한 ‘집드림’이 버리는 카드는 아닐 것인데, 콩가루 집안의 무책임한 형님을 보는 느낌이라 아쉬움이 크다.

더구나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고무줄 편성은 시청자를 너무 우습고 만만하게 보는 경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SBS ‘김연아의 키스앤 크라이’가 ‘런닝맨’과 시간대를 바꿔 ‘간’을 보더니 결국 제 자리를 찾아간 게 불과 얼마 안된 일이다. 테스트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서 하던지, 그렇게 자신 없으면 시청자들 앞에 내놓지 말아야지 시청률 추이를 보며 엿가락 처럼 프로그램 시간대를 달리하는 건 시청자에 대한 기본 예의를 망각하는 결정이다.
모든 예능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열혈 시청자들도 많지만, 잘해야 일주일에 한두 개 프로그램 정도 밖에 소비할 여건이 안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다. 일주일 내내 격무에 시달리다 평안한 일요일 저녁에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고자 TV를 켰는데 다른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으면 정말 짜증나는 일일 것이다.
‘나가수’와 ‘1박2일’의 한 판 승부는 정말 기대되는 일이긴 하다. 짜릿한 승부가 될 것이다. 한 판 승부 이후가 궁금하다. 만약 ‘나가수’가 ‘1박2일’에 큰 폭으로 밀린다면 ‘나가수’ 제작진이 어떤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시간대를 다시 옮길 지도 무척 궁금해 진다. 전장에 임하는 장수에게 퇴로가 확보되었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는 행위는 심리적으로 큰 안정감을 줄 지 모르지만 전투력 배양에는 큰 도움이 안되는 법이다.
최명희 기자 enter@entermedia.co.kr
[사진=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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