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의 자격’ 멤버들의 변화와 중년문화



[정덕현의 대중문화를 묻다] 지금 대중문화에서 가장 핫(hot)한 부분은 ‘아저씨’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20대는 90년대 대중문화 폭발기에 주 구매층으로 부상한 적이 있었고, 아줌마는 2000년을 넘어서면서 그 자리를 차지했었다. 반면 아저씨가 이토록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은 최근 들어서기 때문이다. ‘아저씨’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만들어져 히트를 하고, 아저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 않은 삼촌팬들이 등장했으며, 불현듯 통기타를 들고 나타난 ‘세시봉’ 아저씨들은 동시대 분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10대들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아저씨들이 서서히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오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건, 바로 ‘남자의 자격‘이다. 작년 방송3사의 연예대상을 차지한 이경규, 강호동, 유재석은 모두 아저씨들이지만, 그중 이경규가 마치 이 시대 아저씨들의 희망처럼 부상한 것은 그가 다른 예능이 아니라 ‘남자의 자격’의 수장이었기 때문이다. 아저씨를 예능화한 거의 최초의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신원호PD를 만나 그 아저씨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 속에는 현재 생겨나고 있는 ‘중년문화’의 단서들이 숨겨져 있었다.

정 : 지금 신원호 PD 나이가 37세죠? ‘남자의 자격’의 평균 나이가 42세. 어떻게 소통이 잘 되나요?

신원호 PD : 초창기에는 이경규씨랑 각을 많이 세웠죠. 이경규씨 센스는 정말 대단합니다. 사실 제작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출연진이 쓸만한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는 드물죠. 하지만 이경규씨는 정말 쓸 만한 아이디어를 많이 냅니다. 그런데 제작진 입장에서는 사전 기획으로 어떤 최소한의 틀이 마련되어 있거든요. 이 틀이 확 틀어져버리면 힘들어지죠. 제작진이 중심을 잃는 순간 프로그램은 망치게 되는 겁니다. 근데 초창기에 이경규씨가 그 중심을 흔들려고 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당연 기싸움이 있었죠. 불화는 아니고. 하지만 석 달 넉 달 지나고는 이런 게 싹 없어졌어요. 서로서로 딴 맘 없는 거 아니까.

정 : 특히 결정적인 계기가 된 소재가 있었나요?

신원호 PD : 아마 ‘남자의 눈물’편이었을 거예요. 서로 눈물을 흘리고 좀 속마음을 꺼내놓고 하니까 제작진과 연기자들 사이에 놓여진 벽 같은 게 무너지면서 차츰 가슴이 열리더라구요.



사실 이경규의 변화는 시청자들도 느끼고 있다. 예능의 달인으로 서 있던 그는 한때 자기중심적으로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재미없으면 빨리 자르라는 사인을 보내는 건, 유머화된 표현이지만 어느 정도는 이경규의 스타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이경규가 어느 순간부터는 타인을 의식하면서 어떤 소통과 공감을 찾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이경규의 변화는 어찌 보면 현재 이 땅의 아저씨들이 겪고 있는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맘을 안 열고 스스로 닫아 두었다가 이제 조금씩 마음을 열고 변화해 가는 모습. 이것은 요즘의 아저씨들이 과거의 늘 부정적으로 이미지화되었던 아저씨들과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남자의 자격’이 초창기 마초적인 어감의 제목 때문에 비판적인 시선을 받았다가 차츰 여성들까지도 공감하게 된 데는 이 아저씨의 변화된 이미지가 크게 작용한 덕분이다. 이경규는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정 : ‘남자의 자격’은 전체적으로 어깨에 힘을 많이 뺀 느낌이 있는데, 신PD의 특징인가요 아니면 의도인가요?

신원호 PD : 저는 굉장히 독한 걸 좋아합니다. 어찌 보면 저하고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프로그램을 지금 하는 거죠. 어쩔 수 없죠. 그렇게 안하면 사람들이 안보니까. 사실 합창 같은 건 정말 제 취미에는 안 맞는 거거든요. 특히 뭔가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다든가 어마어마한 일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별로 안 좋아해요. 아마 대부분 예능 피디들이 그럴 거예요. 뿅망치 때리고, 벌칙 받고 낄낄 웃는 그런 소소한 걸 좋아하죠. 그런데 예능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외국과는 다른 한국형 리얼이 생겼죠. 외국은 굉장히 자극적이고 세게 나가지만 우리는 리얼을 하면서도 착하게 가죠. 한국적인 따스한 리얼들이 호응을 얻습니다. 작고 소소하고 따스한 부분으로 갔었기 때문에, 또 가장 중요한 게 공감이라서 그 본질을 저희가 버릴 수 없는 거예요.

정 : ‘하모니’편처럼 뭔가 거창한 걸 치고 나면 더 강한 걸로 갈 거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데 신PD는 늘 원상태로 돌아오더군요.

신원호 PD : 가장 중요한 게 강약조절입니다. 합창 끝난 후에는 센 거 하지 말자고 강조했죠. 5대 기획도 사실 그렇게 큰 건 없거든요. 이름만 대(大)자가 들어가서 그런 거지. 배낭여행은 어떻게 볼 지 모르지만 여행가서 굉장히 쫀쫀한 모습을 잡을 거고. 예산 자체도 대학생 평균예산으로 갈 거기 때문에 정말 고생할 거거든요. 그 고생은 젊은 친구들이 하는 고생하고는 또 달라요. 탭 댄스도 그렇습니다. 오래 배우고, 대회에 나간다는 것 때문에 크게 비칠지 모르지만 사실 학원 나가고 발표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게 너무 크게 받아 들이시더라구요. 저희는 절대로 판을 키울 생각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소하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신원호 PD의 성향 같다. 그는 늘 소소한 예능을 생각하고 거대하게 부풀리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꼭대기에 오르더라도 늘 맨 아래로 내려오는데 익숙한 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획들은 절대로 소소하지 않다. 배낭여행 콘셉트만 해도 20대와 중년을 연결시킨 느낌이 든다. 중년들도 좋아하지만 20대들도 재미있을 법한. 실제로는 큰 기획이라도 그것조차 소소하게 툭툭 던져놓는 그런 인상이 짙다. 그래서 ‘남자의 자격’은 아주 능숙한 느낌이 있다. 마치 여전히 20대 감성을 지닌 4,50대 PD가 만들어낸 것 같은. 아저씨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정 : 아저씨들을 전면에 세우니 어떤 점이 드러나던가요?

신원호 PD :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다른 의외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선물 편에서 김국진씨 같은 경우 그 정도까지일 지는 몰랐는데 백화점에 뭘 사러는 처음 가보는 거였어요. 팬 사인회 하러 몇 번 가본 게 고작이라는 거죠. 어머니한테 선물을 처음 해봤다고 하는데 정말 못 누리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걸 정말 몰라서 안 해봤구나 하는 생각. 사실 김국진씨는 전형적인 남자죠. 옷 같은 거 잘 사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처음 백화점에서 어머니 선물을 사가고는 너무 즐거웠던지 제게 문자까지 보냈더라구요. ‘너무 좋아하시네 하하하 안방에 걸어놓으셨어.’라고요.

정 :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멤버들도 있나요?

신원호 PD : 김태원씨는 생각보다 평범한 사람입니다. 물론 정서나 감성부분은 다르지만 생활 태도는 지극히 표준이죠. 하지만 이윤석, 김국진씨는 남자로 큰 사람이라서 의외의 모습들이 있죠.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너무 좋은 게 미션을 주면 그걸 실제로 한 번도 안 해본 게 많기 때문에 스토리도 극적으로 나옵니다. “나 안 해봤어. 안 해”라고 시작했다가 결국은 하게 되고 하고나니 괜찮더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김국진씨 같은 경우는 참 많은 변화를 보여줬는데요. 방송에서 절대 영어 안 한다 하던 사람이 영어를 하고, 물에 절대 안 들어간다던 사람이 웨이크 보드 타고, 개는 절대 집에 들이는 게 아니다 하던 사람이 개 키우고, 선물 절대 안 해봤다는 사람이 선물을 하고는 저한테 문자까지 보냈죠.

중년 남자들이 경험을 안 해봐서 그렇지 경험을 해보면 바뀌는 게 실제로 많다. 그렇게 경험을 하기까지 장벽 같은 게 존재하는데 그 장벽을 어떻게 보면 ‘남자의 자격‘이 억지로라도 깨주니까 그 속에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윤석과 김국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거꾸로 얘기하면 평범한 사람보다 가부장적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이 오히려 변화의 여지가 더 많을 수 있다. ‘남자의 자격’은 그 아저씨들의 변화하는 모습, 즉 굳어져서 절대 하지 않았던 시도들을 하게 함으로써 거기에서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준다. 아저씨들을 중심으로 한 중년문화의 가능성은 바로 이런 변화를 통한 즐거움의 발견에서 찾아질 수 있다. (다음 회에는 ‘남격’ 아저씨들과 아날로그 정서에 대한 신원호 PD와의 이야기가 게재됩니다)


칼럼니스트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 = 전성환 기자 shjeon08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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