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나이가 어때서’ 제발, 아이들은 아이답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농구선수 알렌 아이버슨의 별명이 그랬듯, 아이들은 예능에서도 언제나 정답이었다. <아빠 어디가>의 대박 이전에도 이경규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들을 통해 중박 이상의 웃음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지켜만 보고 있어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툭툭 튀어나오는 상상을 초월하는 엉뚱함은 큰 웃음을 주고, 가끔씩 보이는 대견하고 성숙한 언행들은 어른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주는 웃음은 행복함을 바탕으로 하는 기분 좋은 깔끔하고 맑은 웃음이다.
JTBC의 새로운 예능 <내 나이가 어때서>는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7~9세 ‘어린이’들을 토론의원으로 ‘모시고’ 고견을 들어보는 어린이 토론프로그램이다. 어른들의 고민을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거침없이 돌직구를 날리겠다는 기획의도다. 그럴듯했고, 기대했다. 순수한 아이들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힐링과 혜안이 나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육아예능 시대 이후 찾아온 어린이 스튜디오 예능이란 점도 흥미로웠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친구들이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인지, 그리고 늘 한계에 봉착했던 어린이 스튜디오 예능의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해서 나타났을지 궁금했다.
역시나 귀엽고 사랑스럽고, 때로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놀라운 통찰을 던지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어린이 토론에서 육아 예능 이전의 어린이 예능과 크게 달라진 점을 찾기 힘들었다. 육아 예능의 무기는 자연스러움이다. 아이들이 카메라를 의식하고 어른들의 도움을 받거나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방송을 잘하려고 할 때 어린이 예능은 바닥을 향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꾸며진 티가 날 때,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게 느껴질 때 순수함 순진함 엉뚱함이란 아이다운 매력은 급감한다. <붕어빵>이 육아 예능 시대를 맞아 빛이 바랬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고, 방송에 어느덧 익숙해진 어린이들의 <아빠 어디가>와 점점 더 연령대를 낮춘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희비가 갈린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 어린이 토론은 방송을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어른의 역할이나 입장이 되어보길 바란다. 학예회에서 어른 복장을 하는 건 귀여울 수 있지만 아이들이 논리정연하고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연애’와 ‘썸’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상황극을 펼치는 게 마냥 귀여워 보이는 일은 아니다. 거대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들의 거리처럼 육아 예능을 거치면서 아이들에게 갖게 된 시청자들의 기대와 거리가 멀다. 아이들에게 어른 역할, 어른들이 하는 말을 똑같이 하는 건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습과 재미가 아니다. 방송에 나와서 똑 부러지게 말하고, 춤을 비롯한 장기자랑을 펼치는 아이들이 신기하고 기특하지만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재미의 근본은 방송을 잘 하는 것이 아니다.
육아 예능은 굉장히 오랜 시간 아이들이 아이답게 사는 모습을 관찰해 재밌는 장면을 고르고 골라서 스토리텔링이란 엄청난 공력이 들어간 후가공으로 만드는 예능이다. 긴 기다림 속에서 몇몇 장면을 포착하는 거다. 그렇게 이어진 화면은 행복한 가정이란 판타지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아이가 아이답게 커가는 사랑스런 모습에 시청자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 아이의 재롱과 미소 속에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즉, 요즘 아이들의 진짜 모습과 성숙한 수준이 궁금하다기보다 익숙한, 그리고 아이(아기)다움을 소비하는 거다.

그런데 <내 나이가 어때서>의 아이들은 <붕어빵>을 볼 때의 안타까움과 마찬가지로 아이의 모습으로 어른들의 세상에 어정쩡하게 끼어있는 것 같다. 이른바 어른아이들이다. 거꾸로 물구나무서면 소심한 성격을 날려버릴 수 있다고 말하는 어린이다운 솔루션도 등장하고,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면 무슨 뜻이냐고 짜증을 내는 진짜 아이다운 장면도 더러 있지만 능숙하게 연애 상황극을 수행하고, “사귀고 결혼하고 아기 놓고 육아하고”, “썸탄다”는 식의 어른들이 쓰는 말을 그대로 쓰고, “편집해주세요”라는 방송인다운 요구를 하기도 한다.
데이트 비용 문제를 두고 토론하는 중 ‘여자는 꾸미기 위해 화장하고 옷 사는데 돈이 더 드니까 남자가 돈을 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 이런 대화 자체가 화장을 할 리가 없는 아이들이, 데이트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 머릿속에서 나올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의 얼굴과 아이의 입에서 어른들의 말이 고스란히 나오는 건 아이다운 상상력과 논리로 생각해서 말한다고 보기가 어렵다. 아이들은 늘 놀라움을 주지만 아이들의 성숙함을 보여주기 이전에 기존 어린이 예능의 한계를 뛰어넘은 육아 예능의 성공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내 나이가 어때서>는 육아 예능 이후 아이들에게 부쩍 늘어난 대중적 관심과 호감을 바탕으로 하는 재밌는 기획이지만 정작 육아 예능이 이전의 어린이 스튜디오 예능을 답습하고 있다. 아이들이 방송을 잘 하려고 한다. 아이들의 기상천외한 토론을 원했다면 어른 놀이를 시킬 게 아니라,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아이들이 할법한 고민을 하게 했어야 했다. 부모나 방송국에서 쥐어준 옷은 이미 아이다움과 거리가 먼 것이다.
첫 회에 ‘아빠가 뭐하는 분이시냐?’는 이휘재의 질문에 “알잖아요”라고 말한 남희석의 딸 하령이 힌트다. 구성이 얼마나 신선하든 아이들을 쇼에 가두고, 상황극 위주로 재능을 뽐내는 식으로 방송을 하면 그 결과는 붕어빵을 보듯 뻔하다. 시청자들은 방송 신동이나 영재를 원하는 게 아니라 순진무구한, 그래서 귀엽고 사랑스런 아이들을 원한다. 이것은 요즘 아이들의 성숙도와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예능으로서 재미의 문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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