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퀵’, 주인공이 사이코패스 막장인 이유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평상시에는 멀쩡하던 사람들이 운전대를 잡으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그 사람들이 주변의 차를 사람이 타고 있는 기계로 인식하지 않고 그냥 기계로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차들이 커다란 얼굴을 갖고 있는 인격체인 픽사의 [카] 세계에서는 우리보다 교통사고가 상대적으로 적을까? 아마 그럴 것 같다.

차를 그냥 기계로 보는 건 운전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 역시 자동차를 하나의 기계로, 다시 말해 ‘차’라는 단어로 본다. 카 체이스 장면을 쓰는 작가들이 그 ‘차’라는 단어 안에 사람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는 분명히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 얼마 전에 설경구 나오는 [해결사]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 설경구는 살인누명을 쓴 전직 형사로 나온다. 그는 한참 고생 끝에 누명을 벗고 범인의 정체와 음모를 밝힌다. 이제 그는 그만하면 된다. 그런데 순전히 범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겠다는 이유로 그는 엄청난 카 체이스를 벌인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재수 없게 그 소동에 말려든 수많은 자동차들이 날아가고 폭발한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그 차안에 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그 사람들이 그 사고로 죽거나 끔찍한 부상을 입었을 거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 증거로 설경구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영화의 해피엔딩을 받아들인다. 차 안에서 불타 죽어간 사람들은 그냥 멋진 카 체이스의 장식에 불과했던 거다.

조금 더 끔찍한 예는 곧 개봉될 [퀵]에 나온다. 이 영화는 폭주족들이 벌이는 난동에 말려든 자동차들이 엄청난 충돌 사고를 내는 장면부터 시작하는데, 척 봐도 인명손상이 엄청나 보이고 실제로 어린아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죽었다.

6년이 지나면, 우리는 그 사고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폭주족이 퀵 서비스맨 주인공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본다. 옛날에 사고를 친 폭주족이라고 주인공 하지 말라는 법 있냐고? 물론 그런 건 없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조건은 붙는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인식은 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물론 그 때문에 자발적으로 속죄하는 건 의무다. 정 그걸 못하겠다면 자기 파괴의 차선책이 있다.

[퀵]의 주인공은 어느 쪽도 아니다. 이 친구는 자기 헬멧 (어쩌다보니 옛날 여자친구인 아이돌 가수가 쓰게 된다)에 폭탄을 장착하고 폭탄소포를 배달하라고 협박하는 악당이 왜 그에게 그런 짓을 저지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악당이 친절하게도 ‘네가 옛날에 재미로 한 짓’ 때문이라고 설명까지 해주는데도.

그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인식이 없다. 그건 그냥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는 사고 당시를 기억하지만 그 때 자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에 생각이 닿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당시 그가 얼마나 멋있게 굴었는지만 기억한다.

이것만으로도 소름끼치는데, [해결사]에서 언급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교통사고가 뒤를 이으면 할 말이 없어진다. 카 체이스를 위해 또 길가던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 차와 함께 구르고 박살이 난다. 분명 인명 손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여전히 아무런 죄의식이 없으며 그에 대한 관심도 없다. 아, 그럼 사이코패스 막장 주인공이로군. 하긴 그런 주인공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을 다루더라도 최소한 감독과 작가는 그게 사고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시사회가 끝난 뒤 기자간담회에 참여했기 때문에 나는 [퀵]의 감독이 이들 양아치스러운 폭주족 청년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으며, 그들에게 폭주족 같은 건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암만 봐도 [퀵]이라는 영화가 그 기능을 할 것 같지는 않다. 그가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하는 청년들이 딱 [퀵]의 주인공 수준이라면 길가는 유치원생들을 오토바이로 깔아뭉개도 눈썹 까딱 안할 부류일 게 뻔하니 말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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