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예슬 원맨쇼가 된 ‘스파이명월’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드라마 공감] '스파이명월'은 코미디다. 즉 현실성을 따지는 드라마가 아니다. 북한에 퍼진 한류를 단속하는 요원인 명월(한예슬)이 남한에 침투해 들어와 그 한류의 상징적인 인물인 강우(문정혁)를 유혹해 결혼하고 자진 월북시키라는 황당무계한 미션 자체가 허락되는 것도 그 장르가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과장될 수밖에 없고(어쩌면 더 과장될수록 더 좋다), 현실성을 벗어나는 과감한 캐릭터나 연출은 오히려 이 장르에서는 득이 된다.

또 어디선가 봤던 캐릭터나 상황 설정, 스토리 또한 코미디라는 장르 속에서는 허용된다. 그것이 패러디라는 형태로 활용된다면 이야기는 따라했다는 비난보다는 훨씬 더 풍부해졌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스파이명월'은 어떨까. 코미디 장르로서 이런 장점들을 잘 활용하고 있을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2% 부족하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저런 게 어딨어?'하고 현실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면 그건 완전한 코미디 장르가 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명월 역할을 맡은 한예슬은 나은 편이다. 그녀는 과거 '환상의 커플'에서 나상실이란 망가지는 캐릭터를 경험해본 덕분인지, 이 드라마에서 정극 바깥의 과장된 캐릭터인 명월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하지만 한류스타 강우를 연기하는 문정혁은 장르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연기력이 부족한 탓인지 코미디가 아닌 정극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한예슬을 돕기 위해 남파된 스파이 최류를 연기하는 이진욱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너무 진지하다. 물론 이 진지함은 그 자체로 황당한 상황 즉 남파해 한류스타를 월북시키는 이 드라마의 상황 속에서는 코미디가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코미디는 이 뭔가 폼을 잡는 진지함이 순간 무너질 때 생겨난다. 즉 시골마을에 간 강우가 배고픔에도 자존심 때문에 감자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장면이나, 뱀을 보고 질색하는 장면에서 본래 한류스타의 무게감과는 전혀 거리가 먼 호들갑을 보여줄 때 코미디는 살아나게 된다. 즉 어떤 진지함이 갖는 긴장감이 풀어질 때 웃음이 터지게 되는 것이다.

자꾸만 문정혁을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과 비교하게 되는 대목은 그 진지함과 가벼움을 오가면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진폭이 너무나 약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망가지려면 확실히 망가지고, 폼을 잡을 때는 확실히 폼이 나야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멜로와 희극을 모두 잡을 수 있다. 한예슬의 위장 부모 역할로 등장하는 조형기와 유지인의 코믹 연기가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건 이렇게 중심인물이 코미디를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캐릭터 구축이 잘 되지 않는 것은 스토리의 탓이 크다. '스파이명월'은 여러모로 많은 다른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한예슬 캐릭터에서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을, 문정혁 캐릭터에서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을 떠올리는 건 물론이고, 명월이 강우를 유혹하기 위해 리옥순에 의해 조종(?)되는 장면은 '시라노 연애조작단' 혹은 '아바타 소개팅'을 떠올리게 한다.

또 이 작품에 흥신소 사장으로 위장된 남파간첩 한희복(조형기)의 설정과 고문서를 찾아가는 이야기 구조는 여러 모로 황인혁 PD의 2007년 작품인 '얼렁뚱땅 흥신소'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이 드라마는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을까. 차라리 드러내고 패러디하는 식으로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낯선 스토리를 좀 더 쉽고 효과적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으로 패러디만한 게 있을까.

안타깝게도 '스파이명월'은 코미디로서 괜찮은 소재와 기획 포인트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운용하는데 있어서 부족함을 보이고 있다. 스토리가 '최고의 사랑'이나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뛰어넘지 못하고, 강우가 독고진을 뛰어넘지 못하면 '스파이명월'은 아류작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스파이명월'이 마치 한예슬의 원맨쇼처럼 보이는 것은 그녀의 연기가 돋보인다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다른 요소들이 부족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스파이명월'에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로맨틱 코미디다. 그리고 이 멜로와 코미디 중에서 더 방점이 찍히는 것은 코미디다. 코미디가 확실히 살아야 황당한 상황 설정 또한 받아들여질 수 있고 그 속에서 멜로 또한 살아날 수 있다. 머뭇대지 말고 좀 더 확실하게 자신감을 갖고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 남과 북이 만나는 스케일에, 남남북녀의 멜로, 긴장감을 깔아주는 스파이 스토리까지, 사실 로맨틱 코미디의 소재로서 이만한 작품도 드물다. 한예슬의 원맨쇼가 아니라 좀 더 많은 캐릭터들이 함께 빵빵 터트려줄 수 있는 작품이 되긴 어려운 걸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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