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작가의 핫 브레이크] 지난 해 대중음악계의 키워드 중 하나는 걸그룹들의 성공적인 일본 진출이었다. 한류의 정점을 찍는 일처럼 보여졌다. 한국 아이돌 그룹들이 아시아의 대표적인 문화 상품으로 올라선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대중음악을 ‘문화 산업’으로 바라봤을 때, 마냥 기뻐할 수만 있을까.
기억할 것이다. 홍콩영화 붐인 시절이 있었다. <영웅본색>같은 느와르, <천녀유혼>같은 무협사극이 극장으로 관객을 끌어모으면서 주윤발, 왕조현 같은 스타들은 한국에서 CF까지 찍었다. 할리우드 영화가 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붐은 오래 못갔다. 하나가 히트하면 붕어빵을 공장 단위로 찍어내듯, 아류들이 판을 쳤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세계를 정복하다시피한 할리우드 영화와 대비되는 점이기도 하다. 물론 자본과 인력, 그리고 국력이라는 인프라의 덕도 크겠지만, 할리우드 영화는 획일적이지 않았다. 블록버스터, 타임킬링 영화, 그리고 예술 영화까지 다양한 스타일이 있었고 메이저와 인디 영화사의 작품이 골고루 소개되고 팬을 모아왔다. 할리우드의 성공은 다양한 소프트웨어의 힘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당국은 자국 대중음악의 해외 진출에 있어 다양성을 간과해왔다. 말하자면 ‘되는 놈 밀어주기’ 식이었다. 현 정부 출범이후 초대 문화부장관이었던 유인촌씨가 SM엔터테인먼트 계열의 노래방에서 대중음악정책을 발표한 건 그 상징과도 같았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 바깥에서, 여러 음악인들은 그동안 꾸준히 해외 진출을 시도해왔다. 2000년대 이후 껌엑스, 스트라이커스 같은 펑크 밴드들이 일본의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현지에서 좋은 성과를 얻어왔으며 최근에는 윈터플레이가 일본 재즈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고 영국에서도 공연을 가졌다. 언어/국적의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장르 음악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해외 음악 시장의 문을 두드려온 것이다. 이런 흐름이 올해 더욱 가시화될 전망이다. 동시 다발적으로 미국과 일본 시장을 향해 의미있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눈에 띄는 건 ‘서울소닉’ 프로젝트다. 갤럭시 익스프레스, 이디오테이프, 비둘기우유는 음악기획사인 DFSB의 주도로 오는 3월 8일부터 4월 4일까지 북미 투어를 벌인다.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초대형 페스티벌인 SXSW, 캐나다 최대의 페스티벌인 캐내디언 뮤직 위크를 포함하여 LA의 록시 클럽 등 다섯개 도시에서 페스티벌과 클럽 공연등 숨가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2009년 EBS 스페이스 공감 ’헬로루키’에서 대상을 차지했던 아폴로 18역시 자체적으로 미국 투어에 나선다. 서울소닉 팀과 마찬가지로 SXSW에 서는 것을 시작으로 약 2주에 걸쳐 텍사스, 루이지애나, 아칸사스 주를 돌며 10여회 이상을 공연을 가진다. SXSW는 음악계의 천하제일 무도대회라 해도 틀리지 않은 대형 축제다. 지난 해에는 총 89개의 공연장에 49개국에서 모인 뮤지션들이 무대에 섰다. 그동안 YB, 서울전자음악단, 공명이 한국을 대표해서 참가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꺼번에 네 팀이다. 세를 과시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장르 음악을 발전을 북미권의 전문가들이 주시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의미있는 공연이 있다. SXSW가 전세계의 음악을 집대성하는 일종의 컨벤션이라면, 매년 4월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코아첼라 페스티벌은 여름 내내 미국-유럽-아시아로 이어지는 록 페스티벌 시즌의 프리미어 쇼에 다름아니다. 헐리우드 스타들부터 부모손을 잡고 온 꼬마들까지 22만명이 이 페스티벌을 즐긴다. 또한 각국의 에이전트들이 모여 자국 페스티벌에 세울 새로운 유망주를 찾는다. 한국 뮤지션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렉트로니카 듀오인 EE가 이 코아첼라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2009년 발매된 그들의 데뷔 앨범은 처음부터 국내보다는 해외를 상대로 프로모션이 이뤄졌다. 유투브를 통해서 영상이 소개됐고, 해외의 음악 블로그나 파티 에이전시들이 EE를 주목했다. 인텔에서 진행하는 크리에이터스 프로젝트에 그들이 선정된 게 첫 성과다. 각 나라마다 6-8팀의 참신한 아티스트들을 발굴, 소개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EE의 이름이 보다 알려질 수 있었고 코아첼라와 인텔이 파트너 쉽을 맺으며 페스티벌 관계자가 EE를 세우고 싶다는 의향을 밝혀왔다.
최근 세계 대중음악계의 흐름은 다양성에 있다. 산업의 힘은 음반과 디지털 음원, 공연이 삼분하고 있고 메이저와 인디의 구분도 희박해졌다. 대세가 사라지면서 그만큼 많은 음악인들에게 성공의 가능성들이 주어지고 있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보다 다양한 음악들이 소개되고 또 요구된다. 대형 자본을 등에 업었던 원더걸스, 세븐, 비, 보아의 미국 진출은 실패로 끝났지만, ‘대세’가 아닌 ‘다양성’과 만날 한국 밴드들은 해당 장르 팬및 미디어의 의미있는 반응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했든 장르 음악은 인종/언어의 장벽이 낮은 대신 음악적 독창성에 더욱 방점이 찍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펜타포트 페스티벌에서 서울소닉 참가팀들의 공연을 본 해외 프로모터들은 그들의 음악을 이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였던 미국 밴드 후바스탱크보다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언제나 ‘하나의 트렌드’만이 존재하는 한국 시장에서 장르 음악은 늘 변방에 머물러왔다. 이 척박한 토양에서 그러나, 그들은 음악적 발전을 거듭해왔고 스스로 음악 선진국에 진출하는 길까지 뚫으려한다. 정부의 어떤 지원도 없었다. 몇년전 서울전자음악단이 SXSW에 설 수 있었던 건 문화콘텐츠진흥원의 해외공연 참가지원사업 덕분이었다. 지금은 그런 사업도 옛말이 됐다. 아니, 지난 정부에서 그래도 5명 정도 있었던 대중음악 담당 공무원이 지금은 정부 전체를 통틀어서 단 두 명 뿐이다. 그런 환경 덕분에 아폴로 18은 주변의 동료 뮤지션들과 함께 스스로 경비마련을 위한 후원 공연을 연다. 나라없는 사람들처럼 힘든 길을 가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작가 noisepop@hanmail.net
[사진 = 서울소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