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던 ‘삼시세끼’처럼 ‘응답하라 1988’도 성공할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솔직히 <응답하라 1994>보다 잘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응답하라1988>의 기자간담회에서 신원호 PD는 이렇게 말했다. 심지어 그는 “두 번째까지 잘 되다가 세 번째 폭망하는 현상이 재밌을 것이다. 망할 거란 생각이 나도 든다. 이번 시리즈의 성공을 장담하지 않고, 기대도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왜 망한다고 말할까. 여기서 떠오르는 인물과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나영석 PD와 <삼시세끼>다. <삼시세끼>에 대해서 나영석 PD는 방영 전 만난 필자에게 “이번에는 진짜 망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망했다”는 얘기는 실제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나오기도 했다. 이서진이 그랬고 게스트로 온 윤여정이 그랬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삼시세끼>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다면 이런 놀라운 성공을 거둔 프로그램에 왜 그들은 ‘망했다’고 말하는 걸까. 그것은 통상적인 프로그램의 룰에서 보면 자신들의 시도가 ‘망할 수 있는 요건들’을 갖추고 있다는 표현이다. 이를테면 시골에서 시커먼 남자 둘이 농작물을 키우고 밥을 해먹는 아이템은 사실 기존 예능의 불문율로 보면 ‘해서는 안되는 아이템’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그 공식 안에서는 ‘망했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 새로운 작품이 공식 안에서 만들어질까. 결국은 공식 바깥으로 나왔기 때문에 새로운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신원호 PD의 “망할 것”이라는 말이 오히려 기대를 갖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 말은 이미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속 성공으로 한껏 올라 있는 기대감을 눌러 놓는 것이면서 또한 그런 기대감 때문에 오버하지 않는다는 자기 결심이기도 하다. 성공을 위해 시청률을 만들어낼 법한 코드들을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더 담담하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건네겠다는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은 제목에서 묻어나듯 1988년을 시대상으로 다룬다. 물론 시대는 배경일 뿐이고 그 시대의 공기가 제공하는 가족적인 이웃의 이야기가 진짜 알맹이다. <한 지붕 세 가족>의 2015년 판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1986년부터 1994년까지 방영된 <한 지붕 세 가족>은 지금에는 찾아보기가 힘든 골목을 사이에 두고 있는 다세대주택의 ‘이웃사촌’들이 엮어가는 정이 넘치는 드라마였다. <한 지붕 세 가족>이 방영되던 그 중간지점으로서의 1988년을 신원호 PD가 굳이 소환한 건 당대가 그나마 이러한 이웃 간의 가족이야기가 가능한 시점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2015년에 1988년 이웃사촌들의 이야기는 어딘지 생뚱맞아 보일 수 있다. 세련됨과는 정반대로 가는 것이고 지금의 개인화된 도회적 삶과도 한참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맨땅의 헤딩’ 같은 시도에 신원호 PD가 스스로 ‘폭망’이라는 표현까지 쓰는 것일 게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어쩌면 우리가 <응답하라> 시리즈에 바라는 것일 수 있다. TV만 틀면 쏟아져 나오는 다 비슷해 보이는 코드화된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담담해도 우리의 감성을 적셔줄 수 있는 그런 이야기.



물론 시청률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다. 하지만 시청률을 떠나서 1988년을 중심으로 한 1980년대의 가족적인 이야기들과 당대를 단박에 회고시키는 음악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과연 망할 거라고 했지만 큰 성공을 거뒀던 <삼시세끼>처럼 <응답하라 1988>도 의외의 지점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아마도.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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