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팔’, 왜 대중들은 무뚝뚝함에 열광할까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혜리)의 미래 남편 찾기는 이 시리즈가 가진 고유의 재미요소 중 하나다. 이번 남편 후보감으로 오른 인물은 네 사람. 바른생활 사나이의 매력을 보여주는 선우(고경표)와 천재 바둑기사 택이(박보검), 심지어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낸 의외의 매력남 정환(류준열) 그리고 늘 친구들 사이에서 웃음을 주는 동룡(이동휘)이 그들이다.
여기서 선우는 일찌감치 덕선이 아닌 그 언니인 보라(류혜영)에 대한 속마음을 밝힌 후 관계가 이미 급진전하고 있으니 남편 후보감으로는 제외다. 동룡 역시 지금껏 이렇다 할 덕선과의 관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또 캐릭터 자체가 멜로를 그려낼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력한 남편 후보감으로는 지목되지 못한다. 남은 건 택이와 정환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두 캐릭터가 다른 듯 닮은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들이 좀체 속내를 밖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환은 최근 대중들이 특히 열광하는 이른바 ‘츤데레(새침하고 퉁명스러운 모습을 지칭하는 일본 인터넷 유행어)’의 전형이다. 뭔가를 하자고 하면 “미쳤냐?”고 퉁퉁거리지만 만원 버스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덕선을 보호하기 위해 뒤에서 팔뚝에 힘줄이 가득 나올 정도로 힘을 쓰는 인물이고, 비오는 날 우산을 챙겨 주며 “쓰고 가라”고 퉁명스레 말을 던지고 가는 인물이다.
택이는 정환과는 사뭇 다른 지점에서 무뚝뚝하다. 오로지 바둑에만 빠져 지내는 이 인물은 세상물정을 전혀 모를 정도로 무심하게 살아간다. 아버지의 생일 날 무엇을 선물해야 할지도 잘 모르고, 그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속내는 그 누구보다 여리다. 아버지가 인터뷰 도중 슬쩍 드러낸 속내에 울컥 눈물을 흘리는 인물이 택이다. 그는 짐짓 속내를 숨기기 위해 무뚝뚝한 것이 아니라 속내를 표현할 줄 몰라서 무뚝뚝한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들의 이 ‘무뚝뚝함’에 왜 대중들은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 ‘무뚝뚝함’ 이면의 속내를 드라마가 우리네 시청자들에게 슬쩍슬쩍 들여다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토록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정환이 덕선에게 소개팅 나가지 말라고 말하는 대목이 더 심쿵하게 시청자들을 빨아들이고, 중국 바둑 대회에서 살뜰히 자신을 챙겨온 덕선을 보며 늘 심각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택이가 환하게 치아를 드러내고 웃는 장면이 시청자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마구 속내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보다 이처럼 한껏 숨기고 있다가 조금씩 드러나는 것이 드라마적으로 보면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뭐든 자신감 있게 치고나가는 캐릭터보다는 어딘지 어눌하고 어색한 지점에서 우리는 순수함을 느낀다. 경험이 많은 것보다 오히려 경험이 없어 그 첫 번째 느낌에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몰라 오히려 침묵하는 그 모습에서 그 마음의 진정성을 느끼게 되는 것.
하지만 여기에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달달함을 견딜 수 없어하는 세태의 정서도 들어있다. 그 달달함이 가진 판타지가 너무나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은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오히려 남자, 여자가 아니라 친구임을 강변하며 달달한 이야기를 던지기보다는 퉁퉁 거리면서 속내를 숨기려는 모습이 더 현실적이라 여겨지는 것일 게다.

무뚝뚝함이 오히려 매력으로 드러나는 이 세태는 스스로 드러내는 것보다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 오히려 진짜로 다가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잘난 사람들은 참 많다.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 잘난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들에게 대중들은 별반 관심도 매력도 느끼지 못한다. 대신 어딘지 우리와 비슷한 모습의 인물이지만 거기서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나 말투로 살짝 드러나는 매력에 대중들은 관심을 갖는다.
평범하게 생겼지만 어느새 우리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드는 류준열의 매력을 애초에 상상하기나 했을까. 가장 주목받은 매력적인 외모의 박보검은 오히려 침묵하고 속내를 극히 숨기는데서 그 매력이 더 폭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럴 듯한 달달한 대사보다는 퉁명스런 말투와 무표정이 우리에겐 더 리얼하고 현실적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네 젊은이들이 이 시대에 짓고 있는 표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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