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극, 왜 과거만큼 기대감이 없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드라마 공감] 한때 사극은 시청률 보증수표였다. 기본이 20%였고 잘되면 3,40%에 이르렀다. 잘된 사극 한 편은 그 방송사의 얼굴이 되기도 했고, 다른 프로그램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주몽'이 대표적이다. MBC는 '주몽' 한 편으로 거의 1년 동안 월화 드라마를 독점했고, 그 방영시간대 주변의 프로그램들, 예를 들면 '뉴스데스크'나 '개그야'의 시청률도 동반상승했다. 이 사극 한 편으로 MBC의 이미지 또한 높아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극의 위상은 과거 같지 않은 것 같다. 주말사극의 지존이었던 KBS사극은 '명가' 같은 작품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하더니 '근초고왕'에서 무너졌다. 주말 KBS사극에는 고정 시청층이 있다는 이점 역시 무너졌다. 최근 다시 시작한 '광개토태왕'은 확실히 '근초고왕'의 부진을 털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시청률이 20%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전쟁과 전투로 스펙터클한 장면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화제성은 약한 편이다.
KBS 주말사극은 이제 뭔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고정층을 위한 사극처럼 보인다. 늘 봐왔던 스토리에, 늘 비슷한 전투장면들이 반복된다. 그 스토리는 좀체 삼국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전투장면의 연출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카메라 앞에 도열해 열변을 토하는 장수들을 보여주고 있다. 주중사극으로 주목을 끈 '추노'나 '성균관스캔들'을 보면 왜 KBS 주말사극이 과거로 회귀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주중사극들은 화제는 되지만 시청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또한 주말은 시청층 자체가 다르다. 따라서 주중에는 퓨전장르 사극을, 주말에는 KBS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사극을 하게 된 것이다.
MBC가 새롭게 시작한 '계백' 역시 과거 MBC사극의 연장선을 놓고 보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MBC사극은 '주몽'과 '대장금'에 이은 '선덕여왕'의 그림자 아래 놓여있다. 역사 바깥에서 상상력으로 축조해 놓은 MBC사극의 미션 스토리들은 이제 시청자들이 읽어낼 수 있을 만큼 비슷해졌다. '이산'이 실패한 것은 여러모로 이 새로운 미션 스토리에 대한 시청자들의 갈증을 풀어주지 못했던 것 때문으로 보인다.
'계백' 역시 스토리를 보면 '주몽'과 '선덕여왕'의 그림자들이 어른거린다. 계백의 탄생스토리를 만들어주는 무진(차인표)은 '주몽'의 해모수(허준호)와 다르지 않고, 왕을 오히려 쥐락펴락하는 사택비(오연수)는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과 비교된다. 궁 밖에서 차츰 성장할 계백과 궁내에서 때를 기다리는 의자왕의 예약된 만남은 '선덕여왕'의 덕만과 유신 이야기의 변형처럼 보인다. 퓨전사극의 특징상 뭔가 획기적인 스토리와 전개를 기대하는데 반해 작품은 과거의 것들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이다.
SBS가 들고 온 '무사 백동수'는 그래서 다른 사극들보다 더 주목되는 게 사실이다. 이 사극은 아예 역사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고, 마치 한 편의 무협영화 같은 장르를 끌어들였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짚어가기보다는 그 속의 인물군들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드라마적인 재미를 만들어냈다. 엄밀히 말하면 사극 안에서 길을 찾은 게 아니라 사극 바깥에서 길을 찾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극 역시 20%의 시청률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사극은 퓨전사극으로 전환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 퓨전사극의 매력은 역사를 다시 보는 재미가 아니라, 역사에 숨겨진 것들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상상력을 보는 재미에 있다. 따라서 그 상상력의 최대치를 보고나면 그 눈높이도 계속 높아져 있기 마련이다. 아마도 '선덕여왕'과 '추노'는 그 최대치의 상상력을 보여준 사극들일 것이다. 이 작품들이 세워놓은 사극에 대한 기대감은 좀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상상력의 최대치로 나가게 되면 사극은 그 틀을 벗어나 그저 하나의 장르 드라마가 되어버린다. '성균관 스캔들' 같은 청춘멜로 사극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사극이라기보다는 현대극의 과거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쪽에서는 한없이 높아진 기대감이 자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상상력의 끝단에서 사극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는 작품들이 등장하는 상황. 사극은 내외적으로 힘겨운 상황에 놓여져 있다.
사극이 전처럼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그래서 과거의 사극을 넘어서는 것이) 어렵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과거로 회귀하면서 고정 시청층을 노리거나(KBS '광개토태왕'), 어디선가 봐왔던 스토리와 캐릭터를 재구성하거나(MBC '계백'), 아니면 아예 사극 바깥으로 나가거나(SBS '무사 백동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극들은 우리의 높아진 기대치를 맞추지 못한다. 언제쯤 다시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의 매력적인 사극을 우리는 접할 수 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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