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화’, 익숙한 플롯과 새로운 시도, 아쉬운 배역에 대해 말하다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교석·이승한 세 명의 TV 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로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가 선보이는 새 코너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퓨전 사극의 뿌리 깊은 나무 이병훈 PD가 최완규 작가와 15년 만에 재회한 MBC 주말 사극 <옥중화>가 50부작 중 서론을 뗐다. 시작부터 20%대를 넘나드는 쾌조의 스타트였으나, 사극의 성공을 견인한다는 아역 파트는 끝났고 익숙한 “아역에 비해 아쉬운 성인 배우 연기 논란”의 페이스에 진입한 것이다. 본격적인 서사를 지켜보기 앞서 [TV삼분지계]의 세 사람에게 물었다. <옥중화>, 이번엔 좀 어떨 거 같으세요?



◆ AI였더라도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제는 AI가 드라마까지 쓸 수 있는 시대라고 한다. 축적된 데이터가 대중이 어떤 이야기에 즉각 반응하는지, 이런 주제에는 어떤 인물이 주인공이어야 하는지, 어떤 전개를 흥미로워 하는지를 죄다 알려준다는 것. <옥중화>를 보고 있노라면 언제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들이 바로 그와 같은 작업에 의한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혈혈단신의 여주인공이 역경을 뚫고 하나하나 미션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심지어 여주인공 옥녀(정다빈, 진세연)가 지하 감옥에 갇혀있는 박태수(전광렬)에게 무공을 전수받는 장면은 무협지처럼 다가오지 않나. 따라서 실패할 염려가 없는 안전한 구성이라고 보는데 뜻밖에 발목을 잡는 건 연기자들의 연기력이다.



극의 윤기를 더해야 할 악의 축인 정난정(박주미)과 윤원형(정준호)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데다가 옥녀 역의 진세연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어린 옥녀가 지니고 있던 명민하고 당찬 눈빛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 뭔가. 부디 아역 박보영과 김유정의 매력을 이어가지 못해 많은 아쉬움을 남겼던 SBS <왕과 나>의 구혜선이나 MBC <해를 품은 달>의 한가인처럼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쨌든, 데이터가 원동력인 AI라면 이 세 연기자를 캐스팅을 했을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방송가 불멸의 흥행수표 이병훈 PD

‘이병훈 표 사극’이란 딱지는 브랜드 마케팅이다. 팩션일 것이며, 아역 배우들의 눈부신 활약, 궁과 관련한 출생의 비밀과 타고난 재능과 착한 심성을 가진 (여)주인공, 위기의 파도를 넘으며 성장하는 영웅담, 그리고 적절한 액션과 멜로. 대하 사극을 제외한 우리나라 사극의 대부분의 클리셰가 집성되어 있다. 하지만 대가와 범인의 차이는 한 끗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옥중화>는 뻔하다기보다 익숙하다. 드라마에서 처음 다뤄진다는 전옥서(조선시대 교도소)를 배경으로 삼은 새로움과 익숙한 이야기 구조 덕분에 50부작의 긴 호흡이 지루하지도 부담스럽지도 않다. 편하게 입문한 다음 어느새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주인공인 옥녀(진세연)는 우연히 발견한 지하 감옥에서 20여 년째 갇혀 있는 박태수(전광렬)를 만난다. 옥녀가 전옥서에서 귀인이라 할 만한 토정 이지함(주진모)과 박태수를 만나 차곡차곡 자라나는 동안 권력 실세인 문정왕후(김미숙), 윤원형(정준호)과 박태수 등 등장인물들의 비밀스런 관계에 대한 궁금증도 층층이 쌓인다. 옥녀가 성장하는데 이런 주변 상황과 그녀의 출생의 비밀이 어떻게 설득력 있게 엮여서 진행될지 점점 더 주말 밤을 기다리게 만든다.

​한 가지 아쉬움은 있다. <옥중화>의 초반을 책임진 아역배우 정다빈은 똑 부러지게 당찬 모습으로 ‘퀄리티스타트’를 끊었다. 문제는 이후 펼쳐질 적지 않은 액션 신이다. 진세연은 ‘슬로모’라는 변명을 붙여도 될 만큼 아직 액션 연기가 익숙지 않은 듯하다. 성장을 거듭해 점점 더 왕좌 가까이로 다가갈 옥녀만큼 그녀의 칼 솜씨도 늘기를 바라며 주말 밤을 기다린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 이병훈 PD의 익숙한 플롯이 최완규 작가의 세계와 만났을 때

안 봐도 대강 예상이 될 정도로 비슷한 플롯을 선호해 온 이병훈 표 사극의 유효기간은 최근 들어 간당간당했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신분이 비천한 주인공이 온갖 기연을 만나 잠재력을 발견하며 조선시대의 전문직을 거쳐 꿈을 쟁취한다”는 플롯은 <허준>(1999. 최완규 작가)과 <대장금>(2003. 김영현 작가), <마의>(2012, 김이영 작가, 이상 전부 MBC)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공식과 같았다. 검증된 공식이니 일단 보기 시작하면 편하게 볼 수 있지만, 그만큼 내용 전개에서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줄어갔다. 결국 플롯보단 ‘이번엔 어떤 조선시대 전문직을 발굴해 새로운 볼거리를 보여주느냐’와 같은 부차적인 부분에 천착하는 한계를 반복했고, <마의> 쯤 이르러선 시청자의 기대치도 예전 같진 않았다.



그런 점에서, MBC <상도>(2001) 이후 15년 만에 최완규 작가와 재회한 작품이란 점은 이병훈 감독의 승부수라 볼 수 있다. 여전히 이병훈 감독이 선호하는 기본 플롯은 변함이 없지만, 소재와 톤은 오히려 최완규 작가의 현대극들(<아이리스>, <마이더스>, <트라이앵글>)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를 세상의 밑바닥들이 모인 전옥서로 잡아 어둠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점이나, 옥녀(진세연)가 체탐인으로서 발을 들이는 첩보의 세계, 아버지를 등진 채 상단을 이용해 복수를 노리는 윤태원(고수)의 존재 등은 익숙한 이병훈 감독의 가락을 흥미롭게 변주한다. 주연을 맡은 진세연과 극의 핵심 악역인 박주미, 정준호의 연기 논란에도 아직은 더 두고 보고 싶은 이유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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