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백’ 조재현 캐스팅 논란, 스토리에 달렸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드라마 공감] 사극에서 아역이 성인역으로 교체될 때마다 나오는 게 캐스팅 논란이다. 과거에는 아역이 성인역을 밑받침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많았지만 상황은 어느새 역전되었다. 성인역보다 더 뛰어난 존재감을 보여주는 아역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계백'도 다르지 않다. 어린 계백을 연기한 이현우의 웃음에도 비애를 담은 절절한 눈물연기는 단연 돋보였고, 어린 의자를 연기한 노영학의 내면을 숨기고 허허실실하는 연기는 어른 연기자 못잖았다. 특히 어린 은고를 연기한 박은빈은 아역이라기보다는 성인역을 해도 될 만큼 여인의 감성을 숨긴 냉철한 면모를 제대로 연기해주었다.

아역들의 호연은 물론 드라마의 초반 캐릭터 몰입도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좋지만, 성인역의 부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현우의 바톤을 이어받은 이서진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고 전쟁노예가 된 신세로 거의 야수가 된 계백을 연기했다. 대사가 거의 없이 등장했기 때문에 액션을 통해 모든 걸 보여주는 상황은 오히려 성인역으로서의 부담감을 상당부분 상쇄시켰다. 물론 이것은 그간 이서진의 다양한 사극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노영학에서 조재현으로 바뀐 의자 역할은 연기력으로는 전혀 논란이 될 만한 것이 없었지만 연기자의 나이는 무리한 캐스팅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아무리 사극이고 캐릭터라지만 의자 역할을 맡은 조재현과 의자의 아버지인 무왕 역할을 맡은 최종환은 동갑이다. 물론 이 의자왕자의 역할은 정치적인 야심을 숨기고 향락에 빠진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등 난점이 많아 조재현 정도의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노영학에서 조재현으로 넘어가는 중간 지점에 한 명 정도 더 적당한 인물을 캐스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박은빈에서 송지효로 넘어온 은고 역할은 송지효의 문제라기보다는 박은빈의 호연으로 남는 잔상 때문에 몰입이 잘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송지효는 '주몽'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나은 연기를 보여줄 가능성이 충분하다. 무엇보다 이 은고라는 캐릭터가 가진 힘이 송지효의 다른 면모를 끄집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계백'은 계백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사택비(오연수)와 은고의 정치적인 수 싸움이 또 다른 재미를 주는 사극이다. '선덕여왕'에 덕만과 미실이 있다면, '계백'에는 사택비와 은고가 있는 셈이다.

의외의 흥미를 끄는 인물이 티아라의 효민이다. 사택비를 보좌하는 초영이란 캐릭터는 그 역할의 크기는 작지만 분명 존재감을 나타낼만한 구석이 많은 인물이다. 최근 들어 사극 속의 현대적인 캐릭터가 한 명씩 들어가는 것은 하나의 트렌드처럼 되어 있다. '이산'의 홍국영이 그런 인물이었고, '선덕여왕'의 비담이 그랬다. 이들은 사극 속이지만 현대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도드라져 보인다. 그만큼 이 캐릭터는 계급사회에서 그 틀 자체를 뛰어넘는 면모를 언어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초영이 성인역의 효민으로 오면서 선머슴 같은 대사로 툭툭 치고 들어와도 그다지 부담감 없게 느껴지는 것은 그 캐릭터가 가진 현대적인 면모 덕분이다. 남은 문제는 효민의 연기력이 그 캐릭터의 강점을 얼마나 잘 소화해낼 것인가다. 성형 탓인지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캐릭터의 힘을 전달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계백'은 차츰 본 궤도의 스토리라인이 점점 살아나고 있다. 초반부 어딘지 어색한 전쟁 신과 기존 '선덕여왕'의 미실과 자꾸만 비교되는 사택비의 면모가 이 사극의 불필요한 요소들이었다면, 지금은 그래도 이런 초반의 부진을 털어낼 만큼 흥미로운 스토리의 힘이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스토리를 잘 탄다면 아역에서 성인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담감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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