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격’ 신원호 PD|“실버합창단 때문에 엄청 울었죠”
[정덕현의 대중문화를 묻다] 디지털 세상에 깊숙이 들어올수록 아날로그에 대한 갈망은 더 깊어지는 것일까. 최근 예능 프로그램들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아날로그적 경험이다. '1박2일'의 야생이 그렇고, '슈퍼스타K'의 라이브가 그러하며, '놀러와'의 세시봉이 그렇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남자의 자격'만큼 아날로그를 건드리는 예능도 없다. 아저씨 정서와 아날로그는 잘 어울리는 짝패가 아닌가. 아날로그의 끝단을 경험한 아저씨들이 전해주는 이 정서는 때론 디지털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젊은이들에는 기적 같은 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남자의 자격' PD는 그 경험을 하고는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정 : 요즘 예능은 과거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신원호 PD : 대중들이 달라졌죠. 요즘은 스토리를 따라갑니다. 아무리 대박으로 웃겨도 뻔하다고 생각되면 절대로 보지 않죠. '1박2일' 설악산편은 웃긴 게 별로 없었잖아요. 하지만 시청률은 설악산편이 죽 올라갑니다.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스토리를 궁금해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편집할 때마다 고민입니다. 웃기는 걸 붙일까, 스토리를 붙일까. 예능PD기 때문에 먼저 손이 가는 건 웃기는 거지만, 사실 대중들이 원하는 건 스토리인 거 같습니다.
정 : 신PD는 본래 웃기는 걸 좋아했잖아요. 많이 바뀌었나 보죠?
신원호 PD : 어떡해요. 대중들이 바뀌었는데요. 대중들은 그저 웃는 게 아니라 즐겁고 싶은 것 같아요. 즐거움의 영역이 반드시 웃는 것만은 아니잖아요. 그 다양한 영역들을 찾아가는 게 저희들의 고민이죠. 사실 아직도 웃음에 대한 강박이 있어서 쉽진 않지만.

신PD는 작금의 대중들의 욕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본래 그는 전통적인 예능 프로그램들, 즉 웃음에 목숨 거는 프로그램들을 좋아하고 만들어왔지만, 이른바 '무한도전' 같은 리얼 예능이 등장하면서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한다. 물론 처음에는 한 때의 유행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게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 이미 생화를 매번 보던 대중들이 다시 조화에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스토리의 추구는 이런 리얼 예능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그는 대중들이 요구하는 즐거움의 영역이 예능PD들이 늘 생각하는 그 영역보다 훨씬 넓다는 걸 감지하고 있었다.
정 : 그런 면에서 보면 '하모니'편에서 보여줬던 거제도 합창대회는 아주 특별한 즐거움을 주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신원호 PD : 참 신기한 일이었죠. 성가대 같은 걸 안 해봐서 합창느낌을 잘 몰랐거든요. 주변에 물어봤더니 공연할 때마다 운다고 하더라구요. 이해를 못했죠. '하모니'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건 여수감자들이 나오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처음 연습하는 순간부터 뭔가 짜릿한 게 있더라구요. 그래도 처음엔 이게 내 식구들이라 그런가 보다 했죠.
정 : 그런데 그게 아니던가요?
신원호 PD : 사실 중간에 다른 사람들 합창을 한 번 다함께 가보려고 했었죠. 그런데 스케줄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대회 당일 날 처음으로 남들이 하는 합창을 들어보게 된 거예요. 내 식구도 아닌데 찌릿찌릿한 거예요. 우연한 일이겠지 하면서 이렇게 돌아보는데 배추도사 조용훈씨가 울고 있잖아요. 그리고 두 번째로 실버합창단이 나왔는데 그 때부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나오는 거예요. 나만 그런 건가 하면서 또 돌아보니까 이제 전부 울고 있더라구요. 너무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정 : 공감을 제대로 체험하셨군요.
신원호 PD :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아닌데 잘 모르겠는 거예요. 장르로 치면 이걸 뭘로 구분해야 하나 생각했죠. 근데 구분할 수 있는 게 없더라구요. 그 느낌이 너무 신기해서 이 부분을 확실히 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어차피 한 회에 이걸 다 넣을 수는 없겠더라구요. 그래서 두 회로 나누고 한 회의 엔딩은 실버 합창단으로 마무리했죠.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게 편집을 할 때 몇 번을 봤는데도 계속 눈물이 나더군요.
정 : 방영 전에 다른 사람들 반응도 그랬나요?
신원호 PD : 사실 미리 모여서 시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하나도 안 우는 거예요. 마침 이런 저런 농담을 하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 반응이 없어서 엄청 불안했죠. 이거 자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정 : 그때 신PD가 느낀 대로 시청자들도 느꼈죠. 작년 어느 신문에서 그 해 예능의 최고 명장면을 뽑아달라는데 저는 그 실버합창단을 얘기한 적이 있죠.
신원호 PD : 제가 원래 그렇게 축축한 사람이 아닌데 그 후에도 여러 번 울게 됐어요. 자다가 일어나 문득 TV를 켰는데 케이블에서 마침 실버합창단이 나오더군요. 또 눈물이 울컥...

그것은 아마도 '아날로그 정서'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목소리, 그것도 여러 명이 하나로 어우러져 내는 하모니에는 그런 힘이 있다. 게다가 실버합창단이었다. 노래에 이른바 연륜과 경험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이 들어가도 여전히 노래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보는 느낌은 신산했을 것이다. 더 큰 감동은 그 노래가 시간을 넘어서 거기 앉아 있는 젊은 그들의 가슴 속에도 전해지고 있다는 그 '공감'의 경험이다. 공감의 경험이 주는 감동은 동시대를 살아내고 있다는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아날로그 정서의 끝단이다. 그 짧은 순간에 나이 들어가고 있는 자신들과, 그렇게 나이 들어도 여전히 노래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같은 존재라는 걸 느낀 것일 게다.
정 : 사실 아저씨라고 부르면 어딘지 짠해지는 구석이 있죠.
신원호 PD : 그러고 보니 처음 아저씨를 아이템으로 하려고 했을 때도 그런 경험이 있었어요. 기획회의를 하고 있을 때 유독 TV에서 아저씨들 관련 프로그램을 많이 하더라구요. 기러기 아빠도 나오고 실직 가장 얘기도 나오고 했는데, 이게 가슴 짠하더라구요.
정 : 그래도 처음 아저씨를 소재로 한다는 것에 어딘지 언발란스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아줌마라면 모를까.
신원호 PD : 초창기에 그런 질문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여자는 버리고 가느냐고. 제목 때문이었을 거예요. 어딘지 마초 그림을 먼저 그리시더라구요. 실제로 초반에 군대 같은 소재가 그랬던 거 같은데, 하지만 사실은 다르죠. 여자들이 바라는 남성상을 많이 그렸으니까요. 육아라든가, 금연, 리마인드 웨딩, 꽃중년 같은 게 그런 거죠. 남자들의 판타지보다는 여자들의 판타지에 더 초점을 맞췄고 그게 또 맞다고 생각했어요.
정 : 그러다가 터닝포인트가 있었죠?
신원호 PD : 몇 개의 터닝포인트들이 있는데 패러글라이딩 편에서부터였던 거 같아요. 그 때 오프닝에 남자들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을 두고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패러글라이딩이었죠. 그 때가 처음으로 버킷리스트였던 거 같아요. 하고 싶은 걸 해보는. 그 전까지는 하기 싫은 걸 해보는 게 많았거든요.
정 : 그렇게 남자들의 판타지로 조금씩 변해간 부분이 있습니다.
신원호 PD : 아저씨 소재라는 것 때문에 처음에는 저변이 아주 좁았습니다. 죽기 전에 해볼 일이라는 것. 또 남자라는 것. 여기에 발목이 잡혀 있었죠. 그러다 차츰 넓혀나갔습니다. 초창기에 아마 합창, 신입사원 같은 거 했으면 못 받아들였을 것도 같습니다. 처음엔 보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차츰 디테일로 들어가니까 조금씩 받아들여 주셨죠. 지금은 여자들의 판타지와 남자들의 판타지가 많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정 : 터닝포인트가 일종의 중년문화에 대한 인식이 하나씩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 것 같기도 합니다. 탭댄스 편에서 나온 얘기지만 춤이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았잖아요. 그런 중년문화에 대한 편견을 깨는 재미가 있더군요.
신원호 PD : 탭댄스도 그렇고 스포츠 댄스도 마찬가지로 멋있습니다. 사실 외국에서 탭댄스 추는 할아버지 보면 정말 멋있거든요. 왜 그런 지 몰라도 아저씨라고 자꾸 터부시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그게 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탭댄스를 배울 때도 처음엔 나밖에 없었거든요. 아주머니들하고 1년 동안 했죠.
정 : 중년문화라는 게 중년들이 그저 모여서 한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이게 보여지고 다른 사람들이 많이 공감해줄 때 생기는 거죠.
신원호 PD : 사실 방송으로 뭔가 해보려는 건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잡아 끌어주는 역할을 방송이 해줄 수는 있는 거 같아요. 그런 느낌만 있어요. 보고 만약에 이게 재밌어 보이면 해봅시다. 해봐도 좋습니다. 이 정도는 던져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저씨가 어딘지 짠하게 느껴지는 건 그 아날로그적인 정감이 거기 묻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저씨라는 편견의 틀 때문에 그 안에서만 머물며 버텨온 세월이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원호 PD는 처음에는 그 아저씨들이 편견에 붙잡혀 해오지 않던 것을 의무적으로 시킴으로써 어떤 변화의 체험을 하게 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차츰 자연스럽게 이 아저씨들이 해보고는 싶었지만 여러 이유로 못해본 걸 해보게 해야겠다고 바뀌었다는 것이다. 즉 '남자의 자격'은 의무에서 시작해서 판타지로까지 나아간 셈이다. 지금 아저씨들이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아 나도 저거 해보고 싶다'고 여기는 건 바로 이 판타지를 어떤 꿈처럼 이 프로그램이 전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정 : 암 특집 하면서 금연을 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신원호 PD : 담배 끊고 금단현상 때문에 뭘 자꾸 먹어서 그런지 살이 잔뜩 불었습니다.
정 : 프로그램에서 한 것 때문에 실제로 변화하는 경우가 많은가요? 금연처럼.
신원호 PD : 물론 한계가 있죠. 처음 2회 때 우리가 24시간 금연 체험을 했었잖아요. 근데 그 때뿐이더라구요. 동기부여가 약했죠. 그런데 이번엔 정말 다르더라구요. 제가 19년을 피웠거든요.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끊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못했죠. 방송에는 못 냈는데 폐암은 너무 많이 죽더라구요.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걱정하면서 피우는 건 너무 없어 보이더라구요. 경규형 한 달 됐고 국진이형도 2주됐고, 윤석이형도 몇 주 됐죠. 술자리에서 경규형이 "야 너 왜 안 끊어" 그러니까 윤석이 형이 "끊으라면 끊을께요" 하더니 진짜 끊더라구요. 시키면 다 하는데 "웃겨" 이거만 못하죠.(웃음)
정 : 하모니 이후에 뭘 가르치겠다는 사람들 줄을 섰죠?
신원호 PD : 사물놀이를 하려는데 여기저기서 같이 하자는 사람이 많죠. 하지만 막상 때가 되야 하는 경향이 있어서 연락처만 남겨달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 : 요즘 가끔씩 프로그램에 얼굴을 보이시더라구요. PD가 예능 프로그램에 자꾸 얼굴 들이미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신원호 PD : 정말 싫어해요. 나영석 피디는 이명한 PD가 짜놓은 1박2일 시스템 때문에 나올 수밖에 없죠. 대본 없이 바로바로 하려면 피디가 직접 던져주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도 비슷한 형태인데 처음에는 제가 들어가는 게 싫어서 멘토를 넣었던 거죠. 그런데 나중에는 결국 제가 할 수밖에 없더라구요. 일일이 멘토에게 제작진의 말을 전달시키는 것도 일이더라구요. 그래도 전 철저히 제 컷은 자를 겁니다.
신PD는 어느새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을 그대로 닮아있었다. 프로그램 때문에 스스로도 많이 변해 있었고, 세상과 어떤 분명한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 변화가 일어난 것은 다름 아닌 공감이라는 이름의 아날로그 정서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체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였을 게다. 충분히 공감하고 충분히 소통했던, 유쾌한 만남이었다.
칼럼니스트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 = 전성환 기자 shjeon087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