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혹성탈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가능할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2002년에 나온 앤드루 니콜의 <시몬>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지? 미적지근한 평을 받았고 곧 잊혔지만 개봉 전에는 요란한 화제를 모았던 영화였다. 영화의 내용은 할리우드의 까탈스러운 스타들에게 질린 프로듀서가 컴퓨터 그래픽 배우를 자기 영화에 출연시켜 스타로 만든다는 것. 아이디어만으로도 배우들의 신경을 긁을만 한데, 그만 니콜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파이널 판타지> 영화판 클립을 보고 감명을 받은 그는 컴퓨터 그래픽 캐릭터 시몬을 진짜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결론만 먼저 말하면, 그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일단 당시 기술로는 관객들을 속일 수 있을만큼 사실적인 컴퓨터 그래픽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멀리 갈 것 없이 그냥 <파이널 판타지> 영화를 보시라!) 게다가 컴퓨터 그래픽 캐릭터가 언젠가 그들의 직업을 빼앗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미국 배우조합이 들고 일어났다. 결국 시몬의 역할은 패션 모델 레이첼 로버츠에게 돌아갔고 소동은 마무리되었다. 과연 니콜이 진짜로 컴퓨터 캐릭터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고려했었는지도 알 수 없다. 이 모든 게 홍보용 쇼였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 와서 보면 배우 조합의 걱정은 쓸모없어 보인다. 컴퓨터 그래픽 캐릭터들은 여전히 비싸고, 실제 인간과 똑같은 캐릭터를 만든다는 목표에는 여전히 도달하지 못했다. 적어도 주름살 없는 젊은 외모의 배우를 클로즈업 시킨 상태에서 관객들을 속이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 하지만 당시의 걱정이 의미가 없어진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서 오히려 인간 배우의 개입이 늘었던 것이다.
이 새로운 경향의 선두에는 영국 배우 앤디 서키스가 있다. 2002년(<시몬>과 거의 같은 시기이다),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에서 골룸을 연기했던 그는 2005년 <킹콩>의 킹콩, 2011년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침팬지 시저를 연기하면서 스타로 떠올랐다. <두 개의 탑>과 <킹콩>에서 그는 직접 출연해 인간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지만, 관객들이 매료되었던 건 그가 퍼포먼스 캡쳐를 통해 연기의 틀을 제공했던 컴퓨터 그래픽 캐릭터들이었다.
솔직히 초창기 그의 명성 일부는 홍보 스턴트를 위해 살짝 과장된 면이 있긴 하다. 서키스는 그가 관여한 모션 캡쳐/이모션 캡쳐/퍼포먼스 캡쳐 분야의 홍보 모델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그 홍보 과정 중 골룸의 연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서키스만큼이나 노력했던 애니메이터들의 노고가 묻힌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서키스가 훌륭한 배우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고 지난 10년간 그의 연기를 담고 복제하는 기술은 점점 더 세련되어졌다. 의심이 된다면 밑의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서키스의 연기가 어떻게 침팬지 시저의 디지털 육체를 통해 완성되는지 보라.

http://www.youtube.com/watch?v=5TsHcomGhpM&sns=tw
여전히 서키스 혼자 하는 연기는 아니다. 수많은 스태프들이 서키스와 시저 사이에 놓여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시저의 연기를 볼 때 그 뒤에 숨어있는 앤디 서키스라는 배우를 본다. 오히려 컴퓨터 그래픽과 이모션 캡쳐는 일반적인 원숭이 분장보다 배우의 디테일한 연기를 더 많이 보여준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앤디 서키시의 아카데미 후보 가능성을 점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왜 안 되는가. 캐서린 지타-존스가 <트래픽>에서 보여준 연기의 일부분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 눈물의 도움을 받았지만,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데에 별 문제가 없었다.
서키스는 컴퓨터 그래픽과 인간 배우와의 공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지 보여주는 모델이다. 물론 앞으로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완벽한 컴퓨터 그래픽 인간 배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까운 미래가 되면 배우들은 분장과 컴퓨터 그래픽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아마 나이든 배우들이 자신의 젊은 시절을 재구성한 컴퓨터 그래픽을 '입고' 연기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미래에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변화 중 우리가 가장 예측하기 쉬운 종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을 진짜로 바꾸는 건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혹성탈출’, ‘반지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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