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빙은 정말 게으른 배우들의 선택일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한국 사람들이 배우들에 대해 품고 있는 막연한 판타지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배우라면 마땅히 극중에서 필요한 외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희선이 <신화: 진시황릉의 비밀>에서 극중 대사 일부를 더빙으로 처리했을 때, 몇몇 인터넷 저널리스트들은 김희선의 무능함과 게으름을 비난했다. 난 지금도 묻고 싶다. 당신들이 한 번 몇 개월 동안 집중 교육받고 완벽한 북경어로 대사를 읊어보지 그래? 심지어 그건 같은 중국어권인 홍콩 배우들에게도 힘든 일이다. 가까운 예로 <와호장룡>의 주윤발을 보라. 실제로 이안 감독도 한동안 더빙으로 밀어버릴 생각을 했었단다.

한국사람들이 프로페셔널한 외국어 구사라고 생각하는 예들 대부분은 판타지다. 사람들은 <파일럿>에서 채시라가 유창한 불어 대사를 구사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드라마를 프랑스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한참 멍하게 듣고 있던 그 사람은 사정을 설명해주자 놀라서 외친다. "그게 프랑스어였어요?"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하이킥>에서 박해미가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했고, 신지는 게으르게 버벅거렸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작 러시아 사람들은 박해미의 대사를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을 거다. 오히려 신지의 말은 알아들었겠지. 간단한 한국어 단어와 문장을 짧게 뱉으며 소통을 시도하는 외국인을 생각해보라.

한국사람들이 이렇게 언어의 유창함과 완벽함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가 외국어를 사용할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린 영어에 집착하지만 정작 그 언어를 써야 할 정말 필사적인 이유는 찾지 못한다. 우린 대부분 한국어라는 좁은 언어풀에서 끼리끼리 교류하며 살아가고 거기에 만족한다. 인터넷 시대라고 특별히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나만 해도 영어 사이트에 들어가는 일이 10년 전보다 훨씬 줄었다. 인터넷 안의 한국어 언어풀이 그만큼 넓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외국어를 쓴다는 행위가 무엇인지 감을 갖지 못하게 된다. 훌륭한 외국어 사용은 결코 모어구사자의 발음을 완벽하게 흉내내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의사소통에 그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모리스 슈발리에는 경력 말기까지 늘 강한 불어 악센트와 어투를 구사했지만, 미국인들은 그걸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모니카 벨루치의 이탈리아 악센트를 비난하는 프랑스 관객들은 없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이 적당한 회색 지대 안에서 능숙한 언어 생활을 하면서 만족스럽게 생활하고 심지어 아카데미 상도 받는다. 외국어 사용에 익숙한 사람들일수록 표면의 완벽함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이 언어의 판타지라는 걸 안다.

반대로 어쩔 수 없이 배우가 전혀 지식이 없는 언어를 발성만으로 따라가야 하는 때가 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티가 난다. 거의 전세계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처럼 보였던 <앨리어스>의 시드니 브리스토를 보라. 한동안은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 사람이 북한에 침투했을 때는 어땠더라? 요새는 여기 저기 한국어가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가 많아서 들 수 있는 예로 점점 많아진다. <로스트>의 몇몇 한국어 대사는 인터넷 농담으로 굳어진지 오래다. 드라마 작가들에게 부탁하노니, 배우들에게 제발 모르는 외국어를 시키지 말라. 그렇게 하면 멋있을 거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부분 한없이 불쌍해보일 뿐이다.

실제로 이런 외국어 사용의 대부분은 연기에 심각한 해를 끼친다. <최종병기 활>을 보자.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 중 상당수는 만주어를 구사한다. 우리는 만주어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언어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서툰 외국어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

만주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는 조선인을 연기하는 박해일과 문채원은 그래도 괜찮다. (사실 그들이 그렇게 능숙한 만주어를 구사하는 것 자체도 이상하다. 어린 시절 배운 외국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두 남매에게 만주어를 고수할 동기가 있었던가?) 하지만 청나라 군사들이 그래서 쓰나? 그래서 난 그들이 영화의 만주어 대사의 후반 더빙으로 처리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만주어 구사자 더빙 배우를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 배우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방법도 있었을 거고. 하긴 정말 그랬는데, 결과가 여전히 그 정도였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김탁환의 <노서아 가비>를 원작으로 한 <가비>가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내용상 주인공은 능숙한 러시아어 구사자다. 영화가 이를 어떻게 처리했을지 궁금하다. 아마 러시아어 대사는 최대한 줄이려 했을 것이다. 그래도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러시아어 흉내를 내는 장면이 상당히 될 것이고, 배우도 그 때문에 고생을 상당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영화가 요구하는 능숙함에는 미치지 못했을 거다. 아마 "어차피 러시아어 모르는 한국 관객들이 들을 건데 적당히 하지." 선에서 멈추지 않을까.

하지만 난 왜 그래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하나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할 때, 그 영화는 그만큼 다른 세계로 열려있다. 당연히 그 열린 방향으로 최소한의 리얼리티를 고수하는 건 중요하다. 그를 통해 우리는 언어의 반대편에서 새로운 관객들을 얻게 된다.

난 여기서 부분 더빙이 해결책이라고 믿는다. 왜 배우들은 액션 연기에 스턴트 더블을, 노래 연기에 전문 가수를 동원하면서, 외국어 연기는 늘 직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영화에서 배우는 전체를 구성하는 재료의 일부이고 연기는 서커스가 아니다. 만약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보다 완벽한 결과물이 나온다면 그 방법을 채택해야 하지 않을까? 배우의 에고는 그 다음의 문제인 거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최종병기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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