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톱밴드’, 한준희의 기타에 드러난 진심
[엔터미디어=최명희의 대거리] 두산 베어스의 에이스 ‘써니’ 김선우가 지난 4일 자신의 서른 다섯 번째 생일을 맞아 선발 등판한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12승째를 챙겼다. 이날도 변함없이 김선우의 모자에는 ‘1’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1’은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존 서저리)를 마치고 재활 중에 있는 팀동료인 ‘포크볼의 달인’ 이재우의 등번호.
몇 해전부터 프로야구에서는 부상이거나 재활 중인 동료의 등번호를 모자에 적어 출전하는 선수가 많다. ‘봉타나’의 무사귀환을 기대하는 LG선수들은 ‘51’을, ‘괴물’의 복귀를 바라는 한화선수들은 ‘99’를, 각각 모자에 달고 경기를 시작하는 식이다. 몸이 생명인 야구선수들이 동료의 회복을 기원하면서 그 선수들 대신 등번호를 달고 뛰는 셈. 아울러 관중과 팬들이 한 번이라도 더 그 숫자를 인식하면서 부상 중인 동료를 잊지 말아달라는 표현이기도 하다. 팬들 입장에서는 진한 동료애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착한 오디션으로 자리잡아 확고하게 고정팬층을 확보한 KBS ‘톱밴드’에서도 이 같은 훈훈한 동료애가 포착됐다. 지난 3일 방송된 ‘톱밴드’ 16강전에서 최고령밴드 ‘블루니어마더’의 리더인 한준희의 기타에는 다소 투박한 글씨체로 인쇄된 ‘이븐더스트’와 ‘진수성찬’이라는 팀명이 적힌 종이가 기타줄 위아래로 한 장씩 붙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븐더스트’와 ‘진수성찬’은 ‘블루니어마더’와 함께 ‘체리필터’ 코치조에 속해 있었으나 ‘블루니어마더’와 ‘2STAY’에 밀려 탈락한 비운의 밴드. 스승인 ‘체리필터’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패자부활전에서 승리해서) 우리가 틀렸다는 걸 증명해줘”라고 당부하며 진한 아쉬움을 남겼지만 결국 패자부활전에서도 되살아나지 못해 ‘톱밴드’에서는 더 이상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비록 이날 ‘블루니어마더’도 고교생 밴드 ‘WMA'에게 패해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이븐더스트’와 ‘진수성찬’ 등 옛 동료의 몫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열의와 함께 기타에 붙어있는 글씨를 보고라도 먼저 탈락한 동료들을 한 번이라도 더 기억해 달라는 따뜻한 마음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이날 ‘거위의 꿈’으로 큰 감동을 선사하고도 ‘POE’에게 패한 라이밴드의 보컬 이지혜도 같은 맥락의 발언으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젖게 만들었다. 이지혜는 “정말 진심을 말씀드리면 기억해주세요. 저희를 꼭 기억해주세요. 그게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짧아도 좋고 길면 더 좋겠지만”이라고 솔직하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모처럼 주목받고 있는 밴드들이 기억에서 잊혀지는 건 당연히 두려운 일. 그래서 한준희의 기타에 유독 시선이 집중된 건, “기타는 이렇게 치는 겁니다”라는 김종진의 극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블루니어마더’를 압도적은 표 차이로 꺾으며 8강에 진출한 ‘WMA' 역시 ‘블루니어마더’는 물론 ‘이븐더스트’와 ‘진수성찬’의 명예까지 책임지고 ‘POE'와의 일전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WMA' 보컬 손승연은 8강 진출 후 인터뷰에서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한준희 아저씨가 ‘약속 지켰다’고 말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한준희의 약속이란 16강 승부를 벌이기 전에 ‘우리가 져줄게’라고 한 썰렁한 농담을 가리킨다. 농담은 현실이 됐고 현실은 오히려 승자의 눈물과 진한 동료애로 진화했다.
이 착한 오디션의 따뜻한 동료애를 바라보면 ‘최선을 다했으면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말은 스포츠에서만 적용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 16강이 가려진 이후 기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톱밴드’ 김광필 EP의 한 마디가 떠오른다. 김광필 EP는 ‘어떻게 이런 착한 오디션을 만들었냐’는 질문에 간단하지만 명쾌하게 답했다. “록커들이 원래 착하잖아요.”
최명희 기자 enter@entermedia.co.kr
[사진=‘블루니어마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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