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정현·바비킴의 성공 뒤에는 김태현이 있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스틸컷] 박정현은 요정이 되었다. 이렇게 된 데는 노래를 중심으로 세우는 '나는 가수다'라는 예능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박정현은 노래만으로도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하지만 그것만일까. '나는 가수다'는 가요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노래 이외의 방송에 비춰지는 모습들도 그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박정현은 노래만 잘해서 요정이 아니었다. 어색한 듯 느껴지는 말투는 귀여움으로 바뀌었고,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은 무대에서의 엄청난 카리스마와 반전을 이루며 대중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이것은 과연 박정현 혼자만의 힘이었을까.
물론 박정현이 가진 매력이 없었다면 30대 중반의 나이에 요정이 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매력을 제대로 발산하게 하고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자리하게 한 데는 그녀의 '나는 가수다' 매니저인 개그맨 김태현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태현은 초반부터 박정현과 스캔들이 터질 정도로 '우리 결혼했어요'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그러자 박정현은 좀 더 편안하게 자신이 가진 귀여운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가수다'에서 매니저들의 역할 중 중요한 것이 방송을 재미있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만, 실제 매니징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가수와 함께 다니면서 그 가수의 매력을 끌어내는 것.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가수의 일상적인 면을 끄집어내는 일이다. 즉 '나는 가수다'는 두 개의 가수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하나는 무대가 보여주는 가수들의 화려한 카리스마이고, 다른 하나는 무대 바깥에서 보여주는 가수들의 일상적이고 친근한 모습이다. 이 두 요소가 반전을 이루면 이룰수록 시너지 효과는 커진다.
박정현의 그 작디 작은 몸은 일상으로 돌아오면 어린 소녀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막상 무대에 오르면 마치 거인 같은 이미지로 돌변하기 때문에 그 감동은 두 배로 더 커진다. 김태현이 박정현과 마치 연인 같고 때로는 오빠 동생 같은 분위기를 만든 것은 그래서 가장 잘 만들어진 매니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준비된 매니징은 이제 박정현의 명예졸업 이후 새로 들어온 바비킴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연순서를 정하던 중에 바비킴이 장혜진의 공을 대신 뽑아주면서 7번을 골라주자 김태현이 "바비킴이 아니고 바보킴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에는 바비킴을 캐릭터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바비킴이 가진 어딘지 진지하기만 하고 딱딱해 보이는 이미지는 예능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첫 무대가 끝난 후 김태현은 바비킴이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팔과 다리가 함께 움직이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게 했고, 그 다음 주에 그는 다시 "형의 바보워킹이 화제가 됐다"고 말해 바비킴의 캐릭터를 공고하게 만들었다.
바비킴이 노래 잘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점점 재미있는 인물이 되고 있는 데는 분명 김태현의 캐릭터 설정이 주효하고 있다는 얘기다.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을 부르게 된 바비킴이 윤종신에게 "형은 레전드로 남을 것 같다"고 말하자, 김태현이 "아 근데 자꾸 형 프로그램 헷갈리는 것 같은데 이건 수요예술무대가 아니"라고 말한 건 이 무대가 윤종신이 아닌 바비킴이 주인공이라는 걸 되새기게 하는 발언이다.
그러면서도 김태현은 바비킴이 부를 노래에 대한 부연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이런 노래들이 청중평가단의 마음을 끌어올 수 있는 이유가 30대 이상의 기혼자들이 거기 와서 이 노래를 듣잖아요? 그럼 부부끼리 와도 동상이몽이에요. 딴생각하는 거예요." 윤종신에게 '너의 결혼식'을 설명하는 이 짧은 말에는 개그와 함께 노래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 이 노래로 중간평가에 나가는 바비킴의 편곡 스타일을 김태현이 "슬픈 영화도 정말 자기가 울면서 슬프다고 얘기하는 것보다 무심하게 그냥 씩 한 번 웃으면서 떠나보내는 게 더 슬플 때가 있잖아요. 그런 느낌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것 역시 적확한 표현이다.

김태현이 한국말이 아직 어색한 바비킴을 배려해서 김조한과 바비킴을 한국말 라이벌로 만들어버린 것도 주목할 만한 매니징이다. 사실 한국말이 어색하다는 것은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큰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바로 이렇게 예능적인 라이벌 구도를 만듬으로써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 즉 예능을 통해서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데 김태현이 그만큼 능수능란하다는 얘기다.
이것은 윤종신이 중간평가에 늦게 도착함으로써 자칫 비판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예능으로 강하게 비판함으로써 웃음으로 넘긴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사실 윤종신이 늦게 도착한 건 '슈퍼스타K3'의 심사위원으로 그가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런 점은 '나는 가수다' 팬들에게는 좋지 않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이 날 개그맨들은 일제히 윤종신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것은 다분히 예능을 아는 이들의 적절한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김태현이 좀 더 강하게 "일반적인 40대 샐러리맨의 회식자리용 노래"라며 '1.3점'을 준 것에는 '슈퍼스타K3'에 대한 패러디와 윤종신에게 갈 수 있는 비판적인 이야기를 털어버린 효과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나는 가수다'에서의 매니저 역할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 그림자가 되어버리고 너무 나서면 가수들이 가려진다. 그러니 적당한 거리에서 가수들을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웃음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정현에 이어 바비킴을 즐겁고 유쾌한 대중친화적 인물로 만들어내고 있는 김태현 매니징은 주목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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