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현무가 보여주는 이 시대 아나운서의 정체성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전현무는 독특한 아나운서다. 개그맨을 웃기는 아나운서. 어딘지 권위를 가져야 할 것 같은 아나운서라는 직함을 갖고 있지만,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 싼티를 작렬시키는 인물. 게다가 그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도 아니다. KBS 소속 직원으로 때때로 뉴스도 해야 하고 교양 프로그램 진행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지금 '남자의 자격'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의 고정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파격 중에 파격이지만 그의 예능에서의 존재감은 오히려 빛난다.
최근에는 '1박2일' 시청자투어에 참여해 영유아들의 조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니 '해피선데이' 내내 전현무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1박2일'에서 그는 춤을 배우는 과정에서 특유의 몸치로 포복절도의 웃음을 주었다. 뻣뻣하고 배배 꼬이는 그 몸은 그 어떤 과장도 없이 그 자체로 몸 개그였다. '남자의 자격'은 '청춘합창단'을 하면서 본래 멤버들의 존재감이 많이 사라졌지만 그 와중에도 전현무의 존재감은 살아있었다. 윤학원 지휘자가 '청춘합창단'을 위해 원 포인트 레슨을 해줄 때, 윤형빈과 윤학원이 서로 '윤씨 자랑(?)'을 하자 전현무는 "저도 윤현무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해 좌중을 웃게 만들기도 했다. 또 논산 훈련소에 갔을 때 자신이 고문관이었음을 밝히면서 군인들에게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잘 나가서일까. 최근 벌어진 전현무의 라디오 생방송 펑크는 과연 지금 KBS가 전현무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전현무는 우스갯소리처럼 자신이 요즘 '아이돌 스케줄'을 소화한다고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웃을 일이 아니다. 그는 '남자의 자격', '비타민', '영화가 좋다', '퀴즈쇼 사총사', '외뢰인K'를 고정으로 하고 있는 데다가 '시크릿'이나 '1박2일' 같은 각종 오락프로그램에도 게스트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일이 이것만이 아니다. 그는 아나운서로서 KBS의 직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숙직에 라디오뉴스도 소화해야 하고 처리해야할 행정적인 일도 많다.
실제로 전현무의 방송사고 전날과 당일 날의 스케줄을 보면 실로 과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정오에 옥주현의 가요광장 대타 DJ를 뛰었고, 고정 프로그램을 녹화한 후, 밤 10시 라디오 뉴스, 밤 11시 라디오 뉴스, 그리고 다음날 새벽 5시 라디오 뉴스, 오전 7시 황정민의 FM대행진 게스트, 정오에 다시 옥주현의 가요광장 대타 DJ, 그리고 오후에 또 고정 프로그램 녹화... 물론 이렇게 밤낮없이 뛴다고 해서 그만한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그는 직원이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쿨하다고 해도 다른 출연자들과 비교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전현무처럼 아나운서로서도 또 예능인으로서도 활약을 보이는 경우 갖게 되는 정체성의 문제다. 그는 예능에서 다른 출연자들보다 훨씬 많은 활약을 하지만, 그들과 동류가 되기는 여러모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는 결국 KBS 직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또한 아나운서들에게서도 별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생방송 펑크 같은 사건이 터지면 전현무는 아나운서로서의 정체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즉 예능인 같은 아나운서지만, 예능인으로서도 아나운서로서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물론 전현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현재 달라지고 있는 방송환경 속에서 더 많은 것이 요구되고 있는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들이 가진 딜레마다. 방송은 점점 엔터테인먼트화되어가고 있고, 그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나운서들도 예능을 해야 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직원으로서의 아나운서라는 이 이중고는 현재 아나운서들이 겪는 고충을 잘 말해준다. 아나운서로만 남으면 비전이 없고, 예능인으로 나서면 능력은 인정받지만 힘은 배로 들고 어쩔 때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래서 프리선언을 하지만 방송사는 그것을 배신으로 여긴다.
전현무는 확실히 독특한 아나운서지만, 그것은 어쩌면 현재 변화하고 있는 방송환경의 요구에 그가 가장 잘 적응하고 있다는 얘기인지도 모른다. 방송환경도 바뀌고 있고 거기에 따라 아나운서들도 바뀌고 있지만, 이들을 대하는 방송사의 태도는 여전히 완고하다. 이 시점에서 KBS의 전현무 활용이 적절한가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것은 달라진 환경 속에서 앞으로 방송사가 아나운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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