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유가 ‘도가니’ 제작의 1등 공신인 현실
[엔터미디어=조원희의 로스트 하이웨이] (하도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나오니) ‘도가니’ 이야기가 조금 지겨우실 수도 있겠지만 예를 들지 아니할 수 없다. 사실 ‘도가니’는 만들어지기 쉬운 작품이 아니었다는 사실 역시 이제는 잘들 알고 계실 것이다. ‘도가니’가 영화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뛰어난 원작 때문? 현실을 고발하는 주제의식? 완급이 뛰어난 시나리오? 아니다. 공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계의 A급 캐스트 중 하나인 공유가 제작 단계에서부터 참여했기 때문에 바로 그 뛰어난 원작, 주제의식, 시나리오 등이 제대로 평가를 받아 투자처로부터 제작비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A급 캐스트는 무엇을 말하는가? ‘뛰어난 배우’를 일컫는 말인가? 아쉽게도 아닐 수 있다. 여기서는 ‘투자자가 환영하는 배우’를 가리키는 말로 약속한다. ‘투자자가 환영하는 배우’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대중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갖췄을 것, 수익률이 높았던 영화에 출연한 경험이 있을 것, 마케팅에 도움이 되는 이슈를 지니면 더욱 좋음. 이정도다. 물론 뛰어난 연기력을 갖췄거나 훌륭한 인간성을 지녔다면 더 도움이 되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A급 캐스트’의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어떤 배우가 A급 캐스트가 아닌 걸까? 간단하다.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고 이전에 히트한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다면, 혹은 인지도를 갖췄지만 최근 나온 영화마다 ‘망’했다면, 그 외 어떤 장점을 갖춰도 ‘A급 캐스트’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가니’는 공유라는 배우를 만나 그 영화가 가지고 있는 진가가 발휘됐지만, 주제의식은 물론 뛰어난 대중성까지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A급 캐스트를 만나지 못해 사장돼버린 프로젝트들은 한국 영화계에 허다하다. 그래서 제작사들이 A급 캐스트를 먼저 확보하고 투자처를 찾는 경우들도 흔하다.
하지만 반대의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내가 만들 영화의 주인공이 소위 ‘A급 캐스트’를 피해야 할만 한 조건이라면? 그런 경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할리우드에서 A급 캐스트로 인해 프로젝트가 망쳐진 유명한 경우를 만날 수 있다. 바로 1997년작 ‘자칼’의 예다. ‘자칼’은 적지 않은 제작비를 들였고 브루스 윌리스와 리처드 기어라는 대단한 배우들, 그리고 시드니 포이티어라는 노장 거물 배우까지 등장하는 블록버스터였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제작비도 회수하지 못하는 실패를 거뒀다. 알만한 분들은 다 아는 ‘자칼의 날’이라는 걸작 스릴러의 리메이크였다. 보증된 원작과 보증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자칼’은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동시에 외면당했다. 그 이유는 브루스 윌리스 때문이었다. ‘자칼’의 내용은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암살자 ‘자칼’을 잡기 위해 애쓰는 FBI 요원들의 이야기다.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자칼’이 요인 암살을 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재미다. 브루스 윌리스가 ‘자칼’ 역을 맡았다. 아시다시피, 브루스 윌리스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칼’이 어디 있을까? 하는 긴박감은 영화 내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냥 브루스 윌리스가 암살자인 영화’였을 뿐이다.
1973년작 ‘자칼의 날’은 달랐다. 에드워드 폭스라는 ‘지명도 높지 않은 배우’가 자칼 역을 맡아 관객들은 그를 잡으려는 요원들과 비슷한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브루스 윌리스를 썼을까? 그것은 바로 할리우드에서도 ‘투자의 용이성’을 위해 A급 캐스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A급 캐스트가 위험한 경우는 두 가지 정도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실존인물의 역할을 할 때, 두 번째는 ‘자칼’처럼 당연히 신인이 맡아야 할 역할을 맡았을 때다. 과거의 실존인물이 아닌, 현재의 관객들이 실존인물을 잘 알고 있는 경우, A급 캐스팅은 위험할 수 있다. 그 실존인물과 A급 캐스트와의 ‘유사성’이라는 망령이 영화 내내 떠돌 수 있다. 대중에게 각인돼 있는 A급 배우의 이미지가 ‘와, 저 배우 진짜 그 사람이랑 비슷하다’라는 각성을 영화 내내 던져주며 드라마에 몰입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이다. 대중들에게 각인돼 있는 A급 배우의 아우라가 실존인물의 이미지를 가리는 일식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로 A급 배우가 실존인물과 전혀 다른 모습일 때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대 참사가 벌어진다.

때로는 의당 신인이 맡아야 할 역이 ‘주인공’인 경우가 생긴다. 어른들 사이에 끼어있는 청소년이 주인공인 경우라던가 하는 경우엔 그 청소년이 맡아야 될 ‘주인공’ 역을 축소하고 ‘어른’ 역할을 키워 A급 캐스팅을 끼워맞추는 일이 허다하다. 한국에서 젊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가 드문 것은 바로 이 이유다. ‘어디서 본 적 없는 젊은 주인공’이 있는데, 투자사들이 좋아하는 A급 배우가 비교적 비중이 적은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A급 배우’라는 것은 대중적 인기가 많은, 그리고 투자사에서 환영하는, 그리고 수익률이 높았던 영화에 출연한 적이 많은 배우를 가리키는 것이지 배우의 등급을 나누거나 퀄리티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분류한 것이 아니다.
A급 캐스팅의 딜레마는 여배우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A급’ 여배우들은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혹은 뛰어난 미모를 지키기 위한 각종 장치들과 관리들로 인해 나이를 초월한 미모를 가진 경우도 있다. 히트하는 영화에 왜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기지 않는가에 대한 비판이 크다. 예산의 문제, 배급의 문제, 제작환경의 문제 등 수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분명히 ‘A급 여배우가 등장해야 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물론 미녀인 가난한 행상인도 있겠지만 영화 속의 가난한 행상인은 주인공일 경우 미녀일 수밖에 없고 여전사도 미녀, 스포츠 선수도 미녀, 시한부 선고를 받고 병상에 누워있는 여인조차 풀메이크업으로 임종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영화가 현실을 담고 진지한 시선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A급 캐스팅’이란 리얼리티로부터 영화를 분리시키는데 때로는 일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A급 캐스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히트를 한 영화를 알고 있다. ‘집으로’에서 김을분 할머니가 아니라 기성 배우가 할머니 역을 맡았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400만 관객이 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나에게 다음 영화에 어떤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A급 배우’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다음 영화가 어떤 영화든 말이다. 이것은 풀기 어려운 딜레마다.
칼럼니스트 조원희 owen.joe@entermedia.co.kr
[사진=영화 ‘도가니’, ‘자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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