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나 지금이나 남자배우의 군대문제는 골치
[엔터미디어=듀나의 그 때 그 이야기] 에롤 플린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할리우드 배우이다. 1930년대에서부터 40년대에 걸쳐 그는 일련의 로맨틱한 사극 액션 영화로 인기를 끌었는데, <시 호크>, <캡틴 블러드>, <로빈 후드의 모험>, <엘리자베스와 에섹스의 사생활>과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고전이다. 이 작품들에서 그는, 현대 관객들에겐 '엣지'가 조금 부족한 것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용맹하고 활기차며 로맨틱한 영웅을 연기한다. 그러는 동안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와 자그마치 여덟 편이나 같은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고 자신이 직접 겪은 모험을 바탕으로 책까지 썼으니, 그는 당시 미국 남자애들이 백일몽에서만 간신히 꾸었던 삶을 살고 있었다.
인기의 절정기였던 1942년, 그는 미국에 귀화한다.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당시, 그것은 새 조국에 군인으로서 봉사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관객들 역시 그가 할리우드의 다른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입대해서 군복을 입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다. 그는 자원입대를 시도했고... 신체검사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기껏해야 30대 초반이었던 건강한 근육질 액션 배우가 어쩌다가 이꼴을 당했을까? 그건 그가 겉만 멀쩡한 종합병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심장병을 앓고 있었고, 이미 한 번 심각한 심장마비를 겪은 적이 있었다. 만성허리통증에 시달렸고, 결핵과 말라리아로 몸이 망가졌으며, 성병도 앓았단다. 게다가 등의 통증을 견디겠다고 코카인과 헤로인을 했고, 할리우드의 화려한 분위기에 말려들어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몸이 남아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여전히 봉사하고 싶었고, 이후 여러 편의 전쟁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만 군대에 들어가지도 않았으면서 전쟁영웅 연기하는 그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관객들의 시선은 차가워져 갔다. (이상하게도 온갖 핑계를 대며 입대 자체를 안 했던 존 웨인에겐 이런 불이익이 없었다) 스튜디오에서는 그의 건강상태를 공개해 그를 변호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이미지를 망칠까봐 걱정했던 플린의 저지 때문에 입을 닫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는 내리막길이었다. 그는 액션 영화 주인공을 그만두고 좌절한 주정뱅이들을 연기했다. 건강은 점점 나빠졌고 알코올 중독은 심해졌다. 술버릇과 괴팍한 성격 때문에 그는 점점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이 되어 갔다. 그러다 1959년 10월 14일, 그는 심장마비로 죽는다. 당시 50살이었다.
마틴 스콜세지의 <에비에이터>에서 주드 로가 샤방샤방한 액션 영화 히어로었던 당시의 에롤 플린을 연기한 적 있다. 리처드 벤자민의 <아름다운 날들>에서 피터 오툴이 연기한 한 물 간 주정뱅이 배우인 앨런 스완은 에롤 플린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로빈 후드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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