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가위나 칼, 종이처럼 발명된 이후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 중인 물건들도 있지만, 대부분 발명품에는 수명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 전기 전집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이 만든 발명품들 중 상당수가 더 이상 이전처럼 쓰이지 않거나 멸종한 상태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증기기관차를 돌리는 철도가 몇 군데나 되나? 제너의 우두법은 이제 역사교과서에나 나온다. 에디슨의 축음기는? 발명품의 죽음은 지금도 이어진다. 워크맨과 타이프라이터는 지금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다. 브라운관은 곧 관용구만 남기고 사라질 것이고 그 관용구의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영화 애호가들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의 세상을 통째로 바꾸었다가 사라진 발명품 하나를 기억한다. 바로 비디오테이프가 그것이다. 비디오테이프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되었고 영화감상은 영화관과 텔레비전 방송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제 비디오테이프는 DVD에게 자리를 넘기고 거의 수명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비디오 대여점이라는 사업도 사라지고 있다. 뉴욕 영화광들의 메카였던 킴스 비디오의 폐업은 이를 상징하는 뉴스였다.

마지막 숨을 쉬고 있는 것은 또 있다. 필름 말이다. 그리고 필름을 사용하는 무비 카메라도. 필름의 죽음이야 지난 뉴스이다. 하지만 무비 카메라의 죽음은 바로 얼마 전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파나비전, 아리, 아톤에서 이제 더 이상 필름 무비 카메라를 만들지 않겠으며 앞으로 디지털 카메라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이들 회사에서 필름 무비 카메라를 만들지 않는다면, 필름 영화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 없다. 사형선고가 곧장 사형집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 예스러운 테크놀로지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구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한 동안 필름이라고 불렀던 매체가 디지털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필름의 죽음이 영화의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업 과정과 저장 방식이 바뀌었을 뿐, 영화는 여전히 영화이다. 유성영화가 무성영화의 자리를 차지한 뒤로 영화는 본질적으로 크게 바뀐 것은 없다. 무성영화와 유성영화 사이의 간극도 생각만큼 크지는 않다. 차원을 추가하고 의자를 흔들고 관객들에게 물을 뿌려도 여전히 영화는 영화이다.

그러나 그 과정 중 우리는 당연히 영화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을 잃을 것이다. 그 중 일부는 우리가 불편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다. 비내리는 화면, 툭툭 끊기는 필름, 화면 구석의 담배자국과 같은 것들. 아마 필름의 죽음은 시네마테크의 죽음으로, 곧이어 극장의 죽음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아마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 영화는 책처럼 개인적인 감상 매체로 변화하고 관객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곳은 인터넷 게시판밖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요새 전철을 타면 정말로 그런 시대로 첫발을 내디딘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놀랍지 않은가. 원리만 따진다면 거의 원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19세기의 발명품이 21세기까지 살아남아 사람들의 꿈에 이처럼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이.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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