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박2일', 강호동 없어도 여행만으로 충분한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스틸컷] '1박2일'만큼 다채로운 소재를 가진 예능이 있을까. 여행을 소재로 한다는 것은 그만큼 무진장의 이야기들을 갖기 마련이다. 아무 목적 없이 훌쩍 떠나도 어디서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얻어오는 것, 그것이 여행 아닌가.

강호동의 부재가 큰 공백으로 남으리라는 애초의 예상을 뒤엎은 것도 바로 이 여행 자체가 가진 소재의 무궁무진함 때문이다. 전국의 5일장을 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일이이라는 것을 보여준 '1박2일'은 이제 답사여행이라는 천 개의 소재를 열어줄 비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답사여행은 한 마디로 그저 지나치고 발길에 툭툭 채이던 것조차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이게 하는 여행이 아닌가. '1박2일'이 경주 남산 답사여행에서 굳이 유홍준 교수를 초빙한 것은 여행에서 그 의미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달리 보이게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느낀다'는 그 답사여행의 명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해온 여행에 대한 생각을 간단히 뒤집어 놓는다. 나영석 PD의 말대로 "먹고 자고 관광만 하는" 게 여행은 아닌 셈이다.

유홍준 교수는 실제로 우리가 산행을 하며 그저 지나쳤을 지도 모를 돌 조각 한 개의 의미를 찾아주었다. 본래 살아있는 '불교 야외 박물관'으로 불리는 남산을 둘러보며 다양한 부처상들과 탑이 가진 미학적인 가치들을 되짚는 것은, 한편으로 천년고도 경주를 새로이 발견하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물론 혹자는 예능으로서의 재미가 부족했다고 여겼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예능의 재미를 떨어뜨린다기보다는 예능의 새로운 재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재미가 어디 포복절도의 웃음에만 있을까. 감동도 있고, 새로운 지적인 발견을 하는 즐거움도 있다. 여행을 소재로 하면서 게임의 즐거움(물론 이 즐거움을 무시할 순 없지만)만 찾는 건 여행이 줄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스스로 제한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1박2일'이 백 번째 여행으로 '답사여행'을 선택한 것은 여러 모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남산 여행을 하며 유홍준 교수가 파불되어 얼굴이 사라진 부처상 앞에서 강호동을 언급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강호동의 얼굴크기가 그 파불된 불상의 얼굴과 딱 맞는다는 유홍준 교수의 재치 있는 설명은 물론 하나의 유머일 뿐이지만, 그 유머가 그려내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강호동의 커다란 존재감은 분명 지금껏 우리에게 백 가지 여행의 즐거움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면 강호동이 없는 지금 현재 우리는 나머지 천 개의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발견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다. 강호동이 없는 자리에 파불된 불상 하나가 주는 커다란 존재감을 느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강호동의 부재는 어쩌면 이제 좀 더 다채로운 '1박2일'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가 되는 지도 모른다. 강호동이 '1박2일'을 통해 특유의 야생 아웃도어 여행의 진수를 끄집어내주었다면, 이제 그가 없는 '1박2일'은 새로운 여행의 맛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들 앞에는 아직도 그들이 즐겁게 넘어야 할 천 개의 고원이 남아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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