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정남'은 어떻게 대중들의 마음을 빼앗았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살다보면 참 애매한 상황들이 많다. 결혼축의금을 내야 되는데 얼마를 내야 될까, 또 지하철에서 할머니와 임산부가 동시에 탔을 때 누구에게 양보를 해줘야할까, 하다못해 고깃집에서 마지막 남은 고기는 누가 먹을까 등등... 참 너무 시시콜콜해서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실상 닥치면 어떻게 해야될까 고민되는 그런 상황들이다. '애정남'은 그런 애매한 상황을 끄집어내서 나름대로의 지침을 알려준다. 물론 지침이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다. 마지막 남은 고기는 돈 내는 사람이 먹어라 이런 식이니까. 하지만 듣다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공감대를 느끼게 된다. 사실 웃겨서 웃는 것보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그것 때문에 웃게 되는 것. 이것이 이른바 공감개그가 갖는 특징이다.

공감개그란 결국 현실에 대한 공감이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개그콘서트의 '생활의 발견'이나 '불편한 진실' 같은 코너도 공감개그의 하나다. 즉 '생활의 발견'에는 남녀가 등장하는데 특정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 부조리한 말과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웃음을 준다. 예를 들어 고깃집에서 헤어지려 하는 남녀가 고기를 더 먹기 위해 집착을 하는 그런 식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어색해보이지만 그게 바로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욕망과 습관은 아무리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툭툭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불편한 진실'은 이런 상황을 끄집어내서 아예 르뽀 형식으로 보여준다. 즉 '생활의 발견'이나 '불편한 진실' 같은 코너들도 공감개그의 하나인데 이 두 코너들과 '애정남'에는 조금 다른 특징이 있다. '애정남'은 그저 상황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행동강령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애정남'이 특히 인기가 있는 건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이것은 '애정남'이 현실에 대한 어떤 변화를 능동적으로 제시한다는 얘기다. 지난 추석에 다음 아고라에 애정남 최효종 씨가 올린 글은 대표적이다. 무대에서가 아니라 인터넷에 올린 이 글에는 명절 때 시댁에 들렀다 친정에 가게 될 때 언제 가야되는가에 대한 지침이 들어 있었다. 애정남 최효종은 추석 당일 차례 지내고 아침 먹고 설거지 끝나는 순간 출발하라고 해서 수많은 며느리들의 지지를 얻었다. 물론 시어머니들에게는 이게 지켜져야 따님도 빨리 볼 수 있다는 근거를 내세워 공감을 자아내게 했다. 이것은 대중들의 가려운 부분들을 살짝 긁어주는 일종의 인기발언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애정남'의 인기는 급상승하게 됐다. '애정남'은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남녀를 비교했을 때 아직까지 남성보다 여성들에게 사회생활에서의 어려움이 더 많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이렇게 너무 소소해서 심지어 쓸 데 없어 보이는 고민에 대한 지침에 대중들은 열광하는 것일까. 실제로 남은 음식을 누가 먹든, 팔걸이를 어떻게 하든 '애정남'이 늘 코너에서 말하듯 '쇠고랑을 차거나 경찰이 출동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건 정말 쓸 데 없는 고민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렇지 않다. '애정남'이 건드린 것은 오히려 바로 이 지점이다. 왜 이런 자잘한 것들은 고민의 대상에 끼워주지 않는 걸까. 꼭 쇠고랑을 차거나 경찰이 출동하는 지극히 공적이고 법제화된 틀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중요한 의제로 제기될까. '애정남'이 열어놓은 것은 바로 이 거대담론들에 의해 가려지거나 소외되었던 자잘한 일상들의 소중함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 따위 거대담론들이 도대체 내 살림살이를 얼마나 낫게 해주었는가 하는 냉소적인 시선도 들어있다.

거대담론들은 늘 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우리에게 던져져왔다. 거기에 우리가 끼어들 틈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어디 이런 상명하복식의 혹은 일방통행식의 거대담론으로 굴러가는 시대인가. 이제 우리는 소소한 우리들의 이야기들을 엮어서 세상을 만들어가려 한다. 선거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공약들이 공염불이 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해온 유권자들은 이제 '우리들만의 소중한 약속'이 더 중요해졌다. 그 실천 가능한 것들이야말로 어쩌면 실제로 세상을 변하게 하는 힘이라는 걸 깨달은 탓이다.

'애정남'이 구획하는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약속'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왜 이 개그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누군가 정해놓은 것들 속에서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대중들은 언제부턴가 저 스스로 약속을 정하고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국가나 세계가 주창하고 따르기를 바라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비록 작고 소소하다고 하더라도 나와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을 꿈꾸게 되었다는 것. 물론 이 개그 속에는 저들의 법칙으로 구획되어 좀체 바뀌지 않는 단단한 세상에 대한 소심한 복수가 들어있지만, 그 안에는 또한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대안도 들어있는 셈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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