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킥’, ‘태권V’와 ‘옹박’의 부적절한 만남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옹박]의 감독 프라챠 핀카엡의 신작 [더 킥]의 시사회 보고 오는 길이다. 기대를 했다기보다는 궁금해 했던 영화인데, 보는 동안 많이 오글오글했다. 여러분도 우리의 태권 패밀리가 태국 땅에서 겪는 난처한 모험들을 따라가다 보면 극장에 들어올 때보다 손발이 조금 작아져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각본이 그렇게 대단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감독의 전작들도 그렇게 각본에 꼼꼼하게 신경을 쓴 작품이 아니었고 어차피 관객들은 액션을 보러 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액션을 더 잘 살릴 수 있는 각본’에 조금 더 투자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라챠 핀카엡의 영화인 [초콜렛]만 해도 자폐증 주인공이 무술천재가 된다는 독특한 아이디어 때문에 이야기와 액션 모두가 살았던 작품이었다. 정교한 걸작 따위는 아니었지만 영화에 큰 힘이 되었던 각본이었던 거다. [더 킥]에서 그런 걸 바라면 안 되었던 걸까.

정확히 누군가를 집어서 당신이 잘못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다 사정이 있을 것이고, 또 두 나라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니까. 감독은 프라챠 핀카엡이 했지만 각본과 공동감독은 이종석이 했다. 내 생각엔 프라챠 핀카엡이 무술에 집중하는 동안, 이종석은 한국어 대사와 연기를 맡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칼로 긋듯 책임이 분명하지는 않았을 거다.

몇몇 선택은 이해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다섯 명이나 되는 태권 패밀리가 주인공인 이유 같은 것. 실전이 가능한 태권도 유단자가 두 명 나오는데, 아무래도 이들은 배우로서 초보니까 뒤에서 받쳐줄 (한국) 배우들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예지원과 조재현이 엄마 아빠로 나오게 되고, 그러다 보니 애교 떨 막내도 하나 들어오고... 하지만 이렇게 인원수가 많아지다 보니 영화의 액션은 한 없이 산만해진다. 다섯 명 중 무술 전문가는 두 명밖에 없으니 액션의 밀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고.

하지만 이보다 더 신경이 쓰였던 건 우리의 태권 패밀리가 태국이라는 나라에서 계속 겉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굉장히 오래 전에 태국에 왔던 것 같다. 심지어 아이들은 태국에서 태어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관광객처럼 행동하고 태국어와 주변 환경에 서툴다. 후반부에서 막내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똠양꿍을 들자, 형이 “너 그런 것도 먹을 줄 알아?”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냥 당황스럽다. 그게 그렇게 신기한가? 그렇다면 그들은 그 나라에서 도대체 무얼 먹고 살았던 걸까.

여기엔 캐스팅의 핸디캡이 있다. 한국배우들을 며칠 연습시켜 완벽한 태국어를 시키는 건 그냥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핸드캡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태국 거주인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 선택의 결과, 그들은 주변 세상으로부터 문을 닫고 오로지 한국인으로만 사는 갑갑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정확히 같은 인물들을 관광객이나 방문객으로 등장시켜 보다 이치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물론 배우들의 앙상블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두 나라의 배우들이 같은 프레임 안에 있으면서도 계속 겉돌고 있는 걸 보면 거의 슬퍼지려고 한다. 서로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고 있으면 티가 날 수밖에 없고 연기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럴 때는 못 알아듣는다는 걸 인정하는 편이 모두에게 좋다.

내가 이런 부분들을 계속 지적하고 아쉬워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태국과 한국의 합작영화로서 가졌던 가능성을 그대로 날려버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의도와 성격만 보아도, [더 킥]은 두 나라 문화가 교류하는 장이 될 수 있었다. 특히 다른 문화권과 영 어울리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멋진 홍보와 립서비스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교류의 흔적이 거의 안 보인다. 대화는 거의 없고 일방적인 자존심과 울컥하는 성격의 과시만이 있다. 액션 영화 감독으로서, 프라챠 핀카엡은 이것으로 만족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 조금 더 유연한 캐릭터들과 폭넓은 문화 교류를 바랐다. 그랬다면 액션영화로서도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기왕 지자 야닌이 우리 편으로 나온다면 태권도와 무에타이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액션어휘를 창조해내는 것에 집중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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