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영화 패자부활전이 절실해
[엔터미디어=조원희의 로스트 하이웨이] 개인적으로 야구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혼’은 매우 관심이 가는 작품이었다.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스포츠영화의 가능성을 실험한다는 차원에서 더욱 직업적 호기심을 곤두세우고 볼 수밖에 없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형태적으로 봤을 때 ‘투혼’은 최근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 수준이 투입됐고 톱스타인 김주혁과 김선아가 투톱으로 캐스팅됐으며 메이저 배급사를 통해 와이드 릴리즈 된 매우 정상적인 한국 흥행 영화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직접 감상한 ‘투혼’은 기대 이상의 것이었다. 집중력 있는 도입부와 전개부, 그리고 단순하지만 뚜렷한 감정선을 지닌 후반부의 드라마까지, 모든 것이 상업영화로서 일정 수준 이상을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세하게 야구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야구를 잘 모르는 관객’들로부터 ‘야구 광’까지 모두에게 적절했던 야구 장면의 디테일들은 상당했다. ‘공 세 개로 끝낸다’는 심플하면서도 호방한 장면같은 경우는 경제적인 동시에 스포츠 영화의 장르적 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여러 가지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투혼은 지난 10월 30일 현재 22만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와이드 릴리즈 된 상업영화의 최종 관객이 20만명 대에 머문다는 것은 처참한 스코어다. 네거티브한 요소라고는 거의 발견할 수 없는 전형적 상업영화 ‘투혼’은 대체 왜 관객들로부터 외면 받았을까. 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대진운의 불운을 들 수 있다. ‘투혼’이 개봉한 주말인 2011년 10월 7일부터 9일까지의 극장전산망 박스오피스를 보면 1위인 ‘도가니’가 50만여명, ‘의뢰인’이 45만여명의 ‘대박’을 기록했다. 도가니가 상영4주차, 의뢰인이 2주차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1주차인 투혼이 주말에 고작 10만여명의 관객밖에 동원하지 못한 것은 ‘불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보지 않으면 동료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 관람’ 하는 국면에 이른 문제작 ‘도가니’와 1주차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입소문을 막 탄 ‘의뢰인’에 비해 ‘투혼’은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초반 붐을 일으키는데 실패한 점 역시 안타깝다. 사실 ‘투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타겟 관객층의 뜨거운 반응이 있어야 했다. 타겟 관객층은 바로 부산의 지역 관객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의 팬들이었다.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투혼’이 화제가 됐어야 할 바로 그 주에 하필이면 플레이오프에 모든 정신이 곤두서 있었고 곧 이어 패배로 인해 급속한 피로에 빠져 버렸다.
부산의 지역 관객들이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기엔 주연배우들의 사투리 연기가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다. ‘부산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관객들에게 부산 사투리임을 인지시킬 수 있는 수준’은 넘어서는 사투리였지만 이전의 ‘바람’이나 ‘친구’처럼 확실한 부산 사투리의 맛을 살린 사투리 연기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부산의 지역 관객들’의 확연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더구나 자세히 살펴보면 ‘투혼’은 의외로 공격당할 포인트가 많은 영화였다. (‘영화광’이라는 차별적인 표현 대신 채택해 본)‘영화 관람 횟수가 많은 관객들’로부터 신파적 설정을 공격받았다. 영화의 주 소재인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 아닌 다른 구단의 열혈 팬들로부터 역시 공격받을 포인트가 있었다. 사실 ‘신파적 설정’은 뒤집어 생각하면 가장 보편적이고 널리 통할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마음먹은 계층으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기 매우 쉬운 부분이다.
후반부의 ‘드라마가 강조된 부분’ 역시 ‘관람 횟수가 많은 관객들’로부터 공격받기 쉬운 포인트였다. 물론 번연하고 드라마가 가진 힘을 전혀 고조시키지 못했던 부실한 배경음악 같은 명백한 실패 요소도 있었지만 영화 전체의 퀄리티와 좌우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주연배우 김선아가 지나치게 짧은 텀을 두고 드라마와 영화에서 비슷한 상황의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점 역시 시너지보다는 마이너스가 많았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 모든 실패 요소에도 불구하고 ‘투혼’이 과연 20만명 수준의 관객으로 극장 상영을 끝낼 영화인가? 라는 질문에 나는 ‘아니오’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투혼’은 분명히 스포츠 영화적 쾌감과 한국적 홈 드라마의 접점을 잘 봉합한 상업영화다. 만약 상영관수와 회차를 지켜낼 수만 있다면 ‘패자 부활’이 가능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의 영화관은 이제 ‘패자 부활’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오히려 와이드 릴리즈가 아니라 소규모의 상영관수로 시작해 상영관을 늘려나가는 독립영화나 슬리퍼 히트작일 경우라면 장기 상영을 통해 많은 관객을 만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와이드 릴리즈’로 등장해 첫주 스코어에서 실패하면 다음주부터는 상영관 수가 반토막난다. 뿐만아니라 상영관에서도 매 회 상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간대에만 ‘형식적으로’ 상영한다. 극장 수익의 극대화를 위한 상영관 운영 때문이다.
요즘처럼 투자, 배급, 그리고 극장이 모두 한 회사의 시스템이 아니었던 시절, 극장과 배급사, 그리고 투자사와 제작사는 흥행의 부담을 모두 분담해서 보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주 오래 전에는 ‘재개봉 시스템’이 있었고 얼마 전까지도 비디오나 DVD 등의 2차 판권으로 패자부활을 꿈꿀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디지털화 된 2차 판권 시장은 음원 유통이 그렇듯이 유통사가 훨씬 더 많은 지분을 가지는 구조다. 어떻게든 첫 이닝에 실패한 투수가 다음 회부터 안정을 찾아 결국 팀을 승리로 이끄는 모습을 영화계에서는 발견하기 힘들게 됐다는 이야기다.
‘투혼’을 예로 들었지만 이것은 오로지 특정 영화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영화의 개봉 소식은 실시간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관객들의 움직임도 언제나 실시간인 건 아니다. 정보는 알고 있지만 걸음이 느려 보고 싶었던 영화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조금 늦게 극장에서 찾아보면 대신 ‘현재 히트하고 있는 영화들’만 구경하게 된다. 마케팅의 차원에서도 ‘첫주의 입소문’ 외에 ‘둘째주 셋째주의 입소문’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게임이 끝나버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영화 저널’이나 ‘영화 애호가’들의 리뷰나 찬사같은 것들은 한국의 영화 흥행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첫 타석에서 삼진을 당한 선수가 두 번째 타석에서 홈런을 때리는 것은 야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영화계에서 보기는 힘든 일이 돼버렸다. 승리자가 많은 것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언제나 다수를 이루는 패자들이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 부분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한국 영화계엔 패자 부활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조원희 owen_joe@entermedia.co.kr
[사진=영화 ‘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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