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온라인 세상, 오프라인 놀이의 즐거움, '런닝맨'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런닝맨'으로 오랜만에 예능 게스트로 참여한 박예진은 유재석과 함께 한 조가 되어 쫓고 쫓기는 놀이를 하며 "정말 신난다"고 말했다. 사실 어찌 보면 '런닝맨' 놀이만큼 유치하게 여겨지는 것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물총으로 상대방의 이름표를 쏴서 맞추면 이기는 이런 놀이를 어른들이 한다는 건 어딘지 유아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다를 것이다. 막상 놀이에 들어가서 몰입하다 보면 박예진이 말하는 것처럼 실제로 긴박감이 느껴지며 빠져들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 실제 어른들의 마음이 그런가. 만일 '런닝맨'의 그들처럼 이름표 하나씩 붙여주고 누구는 방울 달고 물총 들고 놀이를 하라고 하면 그 장면은 참으로 어색할 것이다. 그래서 '런닝맨'의 재미가 만들어진다. 어린 아이들이나 할 것 같은 소소한 놀이에 이 다 큰 어른들이 빠져들어서 목숨 걸고 달리고 게임을 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웃음을 준다. 그렇지만 단지 이것뿐일까. 우리는 과연 그 유치한 게임에 빠져드는 어른들을 보며 웃기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걸 바라보는 우리도 때로는 그들이 빠져드는 것만큼 비슷한 긴박감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놀이란 그만큼 어른 아이를 구분하지 않는 구석이 있다는 점에서 '런닝맨'이라는 예능이 가진 장점이 생겨난다.
그런데 이 '런닝맨'의 놀이를 살펴보면 어딘지 지금의 어른들이 옛날 어렸을 때 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놀이형태는 조금 세련되어 있지만, 그 핵심은 숨바꼭질,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다방구, 오징어놀이(일명 오징어 가이상), 땅따먹기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그 놀이의 무대가 실제 현실공간이라는 점도 그렇다. 20여 년 전만 해도 아이들의 놀이는 거의 동네 골목이나 공터, 운동장이 그 주무대였다. 그다지 기구도 필요 없이 땅바닥에 금을 그어 놀이판(?)을 만들거나 거리나 공터에 있는 물체(예를 들면 전봇대 같은)를 활용하기만 하면 됐다. 게다가 이 놀이는 옛 놀이처럼 모두 몸을 부딪치고 달리고 하는 체력단련(?)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런닝맨'의 놀이는 한 마디로 오프라인 놀이만의 매력이 있다.
땅이 점점 아스팔트로 뒤덮이고, 운동장이 있다 해도 방과 후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오프라인 놀이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이들은 이제 온라인 게임을 하고 심지어는 함께 모여서도 각자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는 게 놀이가 되어 있다. 어른들은 정작 자신들은 오프라인 놀이를 하며 자라왔지만, 언제부턴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일이 선이고 놀이는 악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아이들이 놀지 못하고 학원을 전전하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런닝맨'이 반가운 것은 바로 이 오프라인 놀이가 가진 박진감을 잊고 있던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에게도 새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일의 공간으로만 여겨왔던 도시를 놀이의 공간으로 재인식시킨 것만 해도 '런닝맨'의 공적은 크다. '런닝맨'을 통해 우리는 쇼핑몰이든, 길거리든 그 곳이 모두 놀이공간화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컴퓨터 게임만이 유일한 놀이라고 여겨왔던 아이들에게서 이른바 '런닝맨 게임'이 화제가 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이 게임을 못하게 하고 있지만 사실 이건 막아야 할 일이라기보다는 권장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아이들의 놀이를 위해 위험요소를 제거해주는 것이 합당한 일이지, 위험하다는 이유로 오프라인 놀이를 원천적으로 못하게 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것이 아닐 것이다.
'런닝맨'은 물론 놀이가 가진 재미와 즐거움을 전해주고자 노력하는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은연 중에 보여주고 있는 놀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생각해본다면 '런닝맨'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놀이는 죄가 아니며 유치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게다가 점점 온라인화 되어가고 있는 요즘 사회에서 이 오프라인 놀이가 가진 즐거움을 환기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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