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프’, 원작의 한계를 극복한 배우의 존재감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캐서린 스토킷의 베스트셀러 <헬프> 읽는 동안 나는 이 소설의 캐릭터들과 스토리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것은 책의 어쩔 수 없는 태생과 관련되어 있었다. 소설의 배경은 인종차별적인 짐 크로우 법이 맹위를 떨치고 있고 여기저기에서 무시무시한 린치가 벌어지던 60년대 미시시피 주 잭슨이다. 그런데 스토킷은 이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막 미시시피 주립대학을 졸업한 작가 지망생 백인 여성이 흑인 가정부들의 관점에서 미시시피 사회를 그린 책을 쓰려한다는 설정을 이용한다.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 이것은 백인의 이야기여야 할까?

책을 쓰는 동안 스토킷 역시 그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작가 자신이 후기에 그 한계에 대해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 대한 비판은 굳이 인종문제나 미국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아도 거의 자동적으로 도출될 수 있는 종류이다. 출판사들을 60번 정도 거치면서 거절당하는 동안에도 작가는 분명 그런 소리를 여러 번 들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소설에서도 설정을 바꾸지 않고 어떻게든 그 한계를 돌파하려는 시도들이 보인다. 일단 소설 전체를 보면 백인 여자주인공만큼 같은 일하는 흑인 여성 두 명의 비중도 크니 말이다.

얼마 전 나는 이 소설의 영화판을 보았다. 소설을 보았을 때보다 훨씬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건 아마 바이올라 데이비스와 옥타비아 스펜서를 포함한 훌륭한 배우들이 소설 속의 목소리에 보다 강렬한 힘을 넣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흑인 여성 에이블린의 내레이션이 백인 여성 작가 스토킷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거의 같은 이야기가 바이올라 데이비스의 입과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었을 때, 나는 간접성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나는 그 목소리가 흑인배우인 데이비스의 동의를 전적으로 얻었다고 생각했고 영화를 보는 동안 그것으로 충분했다. 배우의 존재감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이렇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개봉된 뒤에도 수많은 비판들이 제시된다. 영화 속에 나오는 흑인 캐릭터들은 모두 스테레오타입이고 의도가 무엇이건, 여전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마찬가지로 기존 흑인 유모의 전설을 이용한다. 당시 사회를 살았던 흑인 여성들은 영화가 그린 것보다 훨씬 어려운 삶을 살았고 그들의 삶도 '흑인 유모'로 제한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이야기는 흑인들의 이야기를 이용해 작가로 성장하는 백인 여성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여기에 대해 나는 뭐라고 반박할 수 없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짐 크로우 법과 남부 인종차별에 대한 나의 지식은 (번역된) 책과 영화에서 얻은 간접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위에서 <헬프>를 비판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역사니까. 그리고 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동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적어도 스토킷이 흑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쓰는 백인 여성에 대한 글을 쓴 것 가지고 무조건 트집을 잡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결국 책에서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하기 마련이니, 실제로 흑인 유모에게 양육된 중상층 백인 여성인 작가가 자신의 경험과 죄책감을 소설에 투영한 것을 보고 무조건 기계적인 잣대를 댈 필요는 없지 않을까. 여전히 스테레오타입의 위험성과 역사적 해석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고 또 권장되어야 하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이야기꾼의 욕망 자체는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는 동안 난 이런 생각도 했다. 여전히 인종차별이 없는 세상은 멀고 멀지만, 짐 크로우 법이 사라지고 지금 수준의 평등권이 보장될 수 있었던 건 당사자인 흑인들만의 싸웠기 때문은 아니었다고. 자기 일이 아니니 굳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지만 평등과 정의를 위해 몸을 바쳤던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싸우고 투쟁하고 같이 죽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속좁은 몇몇 사람들이 동료들과 사회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행동이야말로 세상을 올바르게 만들고 스스로의 죄에 의해 자멸하지 않게 유지시키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린 그들의 이야기도 함께 들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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