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일밤'의 계보, ‘우리들의 일밤’

[정덕현의 이슈공감]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우리들의 일밤'으로 프로그램명을 바꾼다. 81년 시작되었던 '일요일 밤의 대행진'이 88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약칭 '일밤')'로 개칭된 이후, 23년 만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유는 시청률 부진이다. 거의 일 년 넘게 '일밤'은 평균 10% 시청률도 넘기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문제는 시청률보다는 '일밤'이 그동안 구축해온 이미지의 추락이었을 것이다.

제목을 바꾼 것은 궂긴 이미지를 떨쳐내고 새로운 이미지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일밤'은 어떤 계보를 거쳐 '우리들의 일밤'에까지 이르렀을까. 그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거기 국내 버라이어티쇼의 진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1981년 3월에 시작된 '일요일 밤의 대행진'은 콩트 코미디 중심의 버라이어티쇼였다. 사실 버라이어티쇼는 방송사들의 개국과 함께 탄생한 장르. KBS의 'TV그랜드쇼', MBC의 '올스타쇼', SBS의 '개국 축하 음악회'가 그것들이다. 이 쇼들은 그 후 '쇼쇼쇼', '100분쇼', '젊음의 행진' 등의 쇼 프로그램들로 진화하면서, 음악과 춤, 콩트 코미디가 접목된 무대 중심의 버라이어티쇼로서 자리하게 된다. '일요일밤의 대행진'도 그 계보를 잇고 있다.

하지만 이 초창기의 버라이어티쇼라는 지칭은 현재적 의미에서의 버라이어티쇼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음악과 춤, 콩트 코미디에서 점차 음악과 춤은 따로 음악 프로그램으로 분리되었고, 콩트 코미디 중심으로 위치이동을 시작한다. KBS의 '유머일번지'나 '쇼 비디오 자키'는 대표적인 콩트 코미디로, '일요일밤의 대행진'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진화된 버라이어티쇼를 선보이게 된 88년에도 대표적인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 즉 이 시기의 개명은 콩트 코미디 장르가 대세를 이루는 지점에서 '일밤'이 새로운 버라이어티쇼를 승부수로 던진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승부수는 주효했다. 주병진을 진행자로 내세운 '일밤'은 이경규, 노사연 등을 패널로 등장시키면서 '몰래카메라', '배워봅시다' 등의 콩트 코미디에만 머무르지 않는 새로운 버라이어티쇼를 보여주었다. 91년 SBS가 개국하면서 시도된 '꾸러기 대행진' 같은 버라이어티쇼는 집단MC 체제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에 영향을 받아 93년부터 '일밤'도 이문세, 이홍렬, 이휘재를 내세웠고, 이 때 생긴 '이홍렬의 한다면 한다'나 '이휘재의 인생극장' 같은 코너는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다.



92년도부터 버라이어티쇼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군부시절이 지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적인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개발시대, 심지어 저질 논란까지 벌어지며 위축됐던 예능 프로그램은 이 시기 다양한(버라이어티) 웃음에 자신감을 보였다. '일밤'의 한 코너였던 '이홍렬의 한다면 한다'는 당시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지던 세계화 분위기를 타고 해외 로케를 감행한 버라이어티쇼였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감에 넘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타고 해외까지 달려가던 버라이어티쇼의 카메라는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다시 국내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이즈음 버라이어티쇼들은 침체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서민들을 찾아가 위로를 주는 공익 버라이어티에 주목했다. 96년부터 '일밤'에서 시작한 '이경규가 간다'의 이른바 양심냉장고, 98년 '신동엽의 신장개업'과 2000년 '신동엽의 러브하우스' 같은 프로그램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열렬한 지지와 공감을 얻었다. 물론 타인의 불행을 상업화한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이른바 공익 버라이어티는 '느낌표'에서 정점을 찍고 최근까지 '단비' 등으로 이어졌다.

2001년 IMF 차입금을 조기상환하고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우리네 버라이어티쇼들은 다시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21세기 들어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한 리얼리티 TV는 국내 버라이어티쇼들에도 영향을 주었다. 물론 사적영역의 노출에 대한 국내 정서상 해외의 리얼리티 TV에 등장한 일반인들은 연예인들로 대신 채워졌고, 리얼리티 TV의 핵심 키워드인 도전과 경쟁구도는 국내로 들어와 연예인들의 '예능에서 살아남기' 콘셉트로 전화되었다. 당시 등장한 '강호동의 천생연분' 같은 이른바 짝짓기 프로그램들의 난립이나, 'X맨' 같은 게임쇼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 시기 '무한도전'이 등장하면서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지만 '일밤'은 그 변화의 시기를 놓치게 되면서 '해피선데이'에 그 주도권을 넘기게 된다. 그리고 리얼 버라이어티가 하나의 트렌드로 굳어지면서 '일밤'의 고전은 계속된다. 최근 들어 '일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영희 PD가 다시 '일밤'을 맡게 되면서 어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듯 싶었으나 역부족. 결국 '우리들의 일밤'이라는 이름으로 개칭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서 '일밤'으로 개칭하면서 콩트 코미디에서 버라이어티쇼 중심의 새로운 예능 시대를 열었듯이, '일밤'은 '우리들의 일밤'으로 바뀌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사실 리얼리티 TV의 원조격으로 일컬어지는 '서바이버'의 형식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형식과 거의 같다는 점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리얼리티 TV의 한국식 변용인 리얼 버라이어티쇼와 형제지간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다른 형태로 성장한.

계보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일밤'은 우리네 버라이어티쇼의 진화에 선두적인 위치에 서 있었다. 진화란 위기 상황에서 생겨나는 점을 두고 볼 때,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들의 일밤'이 어떤 진화로 이 위기를 넘어설까. 새로운 제목이 지칭하듯이 과연 '우리들의 일밤'은 이제 우리들, 즉 일반인들이 참여하고 이끌어가는 버라이어티쇼로 예능을 진화시킬 것인가.


칼럼니스트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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