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 작가의 ‘고집’, 이유 있다

[엔터미디어=조민준의 드라마 스코프] 일요일 아침마다 하는 MBC의 <해피타임>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이다. 다른 게 아니라 ‘해피타임 명작극장’이라는 코너 때문이다. 알다시피 방영당시 시청률이 높았거나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를 짧게 간추려서 보여주는 식인데, 가끔 2000년대 이전의 드라마들을 다시 접할 때면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 기껏해야 15~20년 정도 전의 작품들도 지금의 드라마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면이나 세트의 기술적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대본과 연기의 차이가 크게 두드러진다.

말하자면 그때만 해도 대사들은 대체로 연극적이었고 심지어는 문어체에 가까운 경우도 있었다. 배우들은 그에 맞게 양식화된 연기를 했으며 동시녹음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는 숫제 성우들처럼 대본을 읽었다. ‘해피타임 명작극장’을 통해 살펴 본 바에 따르면 트렌드가 바뀐 것은 90년대 후반으로, 이 무렵부터 대사도 일상어에 가까워졌고 작법 또한 그에 따라 변화했다.

심지어 절대다수의 중견 작가들도 변화의 대열에 합류했으나(80년대 초 <전원일기>를 썼던 김정수 작가의 2011년 주말극 <내일이 오면> 속 대사가 여타 미니시리즈들의 그것과 별 위화감이 없는 것처럼), 오직 한 사람만은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지 않고 있다. 바로 SBS 월화 미니시리즈 <천일의 약속>의 작가 김수현이다.

사실 이 노작가의 작법도 세월과 함께 변화를 겪었다. <사랑과 진실>이나 <배반의 장미> 시절에 비하면 문체도 훨씬 일상어에 근접했다. 하지만 특유의 고답적인 비유법(적어도 수능 세대라면 절대 쓰지 않을 ‘반동분자’같은 어휘 등)이라든가, 남녀 안 가리고 쏟아지는 속사포 같은 수다들과, 마치 잘 훈련된 스턴트맨들의 호흡처럼 정교하게 맞아떨어지는 대사의 합들은 여전히 스타일로 남아, 그녀의 드라마에 대한 호오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소재가 되어버렸다. 기억하기에 모두가 양식화된 대사를 쓰던 시절에는 김수현의 어투를 왈가왈부하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더 감각적이고 찰진 대본이라는 평가만이 존재했을 따름인데, 동지들이 간데없는 2011년에 이르러서는 그녀 홀로 깃발을 흔들고 있는 셈인 것이다.
물론 그녀 특유의 어투가 시청자의 취향에 거슬리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트렌디하지 못하다는 사실만은 어쨌든 명확하니까. 문제는 일정 정도 비평적 시각을 견지해야 할 방송관련 저널리즘에서도 바로 그 취향에 가까운 이유만을 ‘김수현 비판’의 논지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로서 여기에는 좀 억울한 구석이 있다. 이를테면 다음의 대화를 좀 보자.

자넨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만. / 자네야말로 그대롤세. 벼멸구 같은 얼굴이 조금도 늙지 않았어.

대화이긴 하나 일상적인 느낌은 아니다. 의고체이긴 한데 요즘은 어르신들도 이런 말투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 오래된 드라마의 대사도 아니고, 연극 대사도 아니다. 소설가 박민규가 지난해에 발표한 단편소설 중 한 토막이다. 시간적 배경은 현재. 원로 소설가들은 물론이고 문단에서 가장 젊고 감각적인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의 최근작에도 이처럼 일상적이지 않은 대사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을 비평적으로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문학과 드라마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같은 픽션이되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극의 형태로 좀 더 직접적이고 친밀하게 대중과 만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런 매체이기 때문에 드라마의 대본을 쓸 때는 어떠한 문학적인 시도도 하지 말아야 할까?

비록 등장인물들의 말본새가 연극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들린다고 해도 김수현 작가의 대본은 내용과 맥락에서 철저히 현실의 디테일에 기대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진가 또한 여기에 있다. <천일의 약속>에서도 알츠하이머의 증상은 서연(수애)의 현실 영역 구석구석으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를 닦을 때, 식사 주문을 할 때, 국을 끓일 때, 야식을 고민하는 바로 그 때 끼어드는 기억의 교란은 직접적이고도 현실적인 공포로 시청자에게 다가온다. 메인 플롯에 해당하는 사건이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 사촌 여동생이 결혼하겠다며 남자를 인사시키러 온 자리에서 철없는 사촌 언니는 그간의 교제사실을 숨겼다며 억하심정을 토로하고, 이는 가족 간에 쌓여 있었던 응어리를 터트리는 도화선이 된다. 자못 연극적인 대사의 합은 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현실적인 상황에 극적 스릴을 더한다.

대사 작법과 연기의 트렌드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리고 어차피 극이란 현실의 모방인 만큼 내용과 함께 어투 또한 현실적이라면 그보다 좋은 대본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트렌드랍시고 대사의 문학적 함축에 대해서는 점차 무신경해지고 있는 오늘날 드라마 대본 일반의 스타일도 결코 달갑지 않다. 단지 대중적인 인기가 있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발성과 딕션 훈련조차 되어 있지 않은 이들이 드라마 주연으로 속속 데뷔하고, 그들의 연기역량에 맞추기 위해 하향 조정된 일상어 중심의 대본이 나올 수밖에 없다면, 그 악순환이 드라마의 발전에 도움이 될 일은 만무하기 때문이다. 김수현이라는 노작가가 꿋꿋이 지켜가고 있는 고집을, 특히 당대에 세심하게 읽어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칼럼니스트 조민준 zilch92@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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