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가수’, 시청자를 열광시켜야 살 수 있다

[엔터미디어=최명희의 대거리] 생리학에 ‘베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처음 자극과 다음에 주어지는 자극의 세기 차이가 일정한 비율 이상이 되어야만 감각기에서 그 자극의 변화량을 느낄 수 있다는 법칙을 말한다. 점점 더 큰 자극에만 반응하게 된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으로, 마케팅이나 심리학에서 자주 원용하기도 한다. ‘베버의 법칙'은 감각기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적용이 된다. 즉, 무한자극에 지속적으로 반응할 수는 없다. 자극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중용과 절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MBC TV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호주특별 경연을 통해 되살아나는가 싶던 ‘나가수’ 시청률은 어느 덧 10%대 초반에서 바닥을 횡보하고 있는 형국이다. 주말 격전을 벌이는 타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의 선전을 감안하면 더 뼈 아프다. SBS ‘런닝맨’은 꾸준히 달리며 ‘나가수’를 추월하더니 이내 격차를 벌리고 있다. KBS ‘개그콘서트’는 국회의원의 ‘지원사격’ 속에 고공비행을 거듭하고 있다.

단순 시청률로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한 때 전국민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던 예능 프로그램인 ‘나가수’가 최근 급속도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나가수’ 제작진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범수, 박정현 등 원년멤버까지 동원된 호주특별 경연은 확실히 시청자의 주목을 받았다. 가왕 조용필 스페셜에 이어 이번에는 전설의 그룹 산울림 스페셜을 준비했다. 듀엣 미션, 노래 바꿔 부르기 미션 등 포맷에도 변화를 줬다. 또 무명가수나 다름 없었던 적우를 영입하며 임재범 이후 모처럼 또 다른 스토리를 배치해 놓았다. 아울러 ‘나가수’가 위기의 순간 마다 전가의 보도 처럼 사용하던 프로그램 확대 편성 카드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정도 처방전으로 근본적인 위기에 처한 ‘나가수’를 되살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판단이다. 현재 ‘나가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청중평가단과 시청자의 괴리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일 방송에서 최근 대세로 떠오른 김경호가 엉덩이를 흔들며 박미경의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불러 청중평가단을 미치게 만들었다. 청중평가단은 김경호에게 29%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선물했다. 김경호는 ‘나가수’의 전성기를 만들어낸 임재범이 보유하고 있던 이 분야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임재범을 넘어서는 가수가 나왔다는 놀라운 사건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전주보다 1% 가량 하락했다.

‘나가수’에서 경연을 벌이는 다수의 가수들이 청중평가단의 반응을 이끌어낼 퍼포먼스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는 양상이다. 바비킴은 신촌블루스의 '골목길'로 1위를 차지한 이후 경연 때마다 춤사위를 넣고 있다. 윤민수 역시 자기 스타일을 과감하게 버리고 변신을 시도하면서 사상 첫 1위에 올랐다. 윤민수는 최근 경연에서 한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연출로 Add4의 ‘빗속의 여인’을 불러 청중평가단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시청률은 또 떨어졌다.

청중평가단이 이 같은 퍼포먼스에 미친 듯한 반응을 보이고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어깨 춤이 절로 나오는 공연을 보며 즐겁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경연 이후 청중평가단 인터뷰에서 “정말 후회 없는 공연이었다” 식의 찬사가 빠지지 않은 건 진심이 느껴진다. 시청률과 무관하게 청중평가단의 반응은 점점 더 뜨거워지는 모양새다. ‘막귀 논란’도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청중평가단에게 책임을 돌리고 비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윤민수의 변신이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안타깝게 느껴진 건 그가 생존을 위해 청중평가단의 기호에 맞는 무대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자문위원단이 ‘윤민수가 보여준 최고의 무대’라고 찬사를 보내고 동료가수인 거미는 ‘진작 이렇게 하지’라며 응원을 보탰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윤민수가 이제 쇼를 알아가는구나’라는 인순이의 평가에도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는 듯 했다. 윤민수나 바비킴의 퍼포먼스가 이미 ‘나가수’ 무대에 완전히 적응한 이후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기위해 변신을 시도했던 김범수의 그것과는 다른 분명한 이유가 있다.



자기스타일을 고집해서 성과를 내야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변화과 다양성은 여전히 ‘나가수’의 주요 덕목이다. 하지만 인순이가 김돈규의 ‘나만의 슬픔’을 파격적으로 연출했지만 꼴찌에 그친 것에서 보듯이 갈수록 가수들의 변신이 음악을 중심에 두기 보다는 춤과 함께하는 퍼포먼스 중심으로 흐를 가능성이 너무 높아진 상황이다. 인순이는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인순이 정도 되니까 가능한 말일 수 있다. 故 서지원의 15주기를 기념해 마련한 김경호의 무대도 쉽게 묻혀 버렸다.

가수들이 청중평가단의 기호에만 함몰되면 될수록 시청자를 붙들어 두기가 더 어려워진다. 시청자들은 다양한 음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청중평가단 조차도 지속적으로 더 강한 자극만을 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퍼포먼스만 강조한다면 당장 이번 주에 시작하는 SBS '서바이벌 오디션 K팝 스타'로 채널이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청중의 간택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나가수’의 특성상 가수들의 이런 선택을 무작정 비난하기도 힘들다. 제작진이 조율에 나서야 하는데, 일부 자문위원은 오히려 퍼포먼스를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일삼고 있다.

애초에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영희 PD는 ‘음악을 통한 감동, 음악을 통한 즐거움’을 ‘나가수’의 모토로 삼았다. 가수들이 감동의 영역을 담당하고 개그맨들의 즐거움에 힘을 보탰어야 했는데 개그맨들이 전혀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가수들이 즐거움까지 도맡아야 하는 점도 부담으로 보인다.

‘나가수’는 청중평가단 뿐 아니라 대중과 시청자를 미치게 해야 살아날 수 있다.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당초 시청자들이 ‘나가수’에 열광한 이유는 좀처럼 TV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최고의 실력파 가수들이 ‘신들의 향연’이라고 까지 불리웠던 최고의 무대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또 도대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무대에서 탈락자가 나오는 서바이벌 방식이 주는 긴장감이 시청자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과연 최근 ‘나가수’ 무대를 자신있게 ‘신들의 경연’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탈락에 대한 긴장감과 화제성이 떨어진 가운데 왜 서바이벌 방식에 대한 변화는 고민하지 않는 것인가. 특정 자극이 한계에 도달했다면 절제의 미학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자극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면 ‘나가수’를 살릴 해법이 보이지 않을까.


최명희 기자 enter@entermedia.co.kr


[사진=M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