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주는 교훈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대해 뭔가 긍정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영화를 좋게 보았거나, 이 시리즈에 뭔가 대단한 가치가 숨어 있다고 믿기 때문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이 영화 시리즈가 그냥 끔찍하며, 얼마 전에 시사회를 가진 [브레이킹 던 1부]에서는 첫 편에는 있었던 비웃는 재미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 시리즈가 이런 특별한 ‘현상’으로 남아있다면 그 이유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믿으며, 이 영화에 대해 악평을 하는 것이 소위 ‘여자애들의 취향’에 대한 기계적인 공격의 일부가 되는 것도 싫다.

[가디언]지의 앤 빌슨은 용하게 장점을 하나 찾아냈다. (http://www.guardian.co.uk/film/filmblog/2011/nov/24/twilight-breaking-dawn-teenage-girls)빌슨 역시 [브레이킹 던 1부]를 포함한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긍정적이 되어 이 끔찍한 영화들이 나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나은 프로젝트, 그러니까 [헝거 게임] 시리즈와 같은 영화들이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았냐고 묻는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면 누군가가 틴에이저 판타지 버전 [유령과 뮤어 부인]을 만들어낼지 누가 알겠는가? 정말 그렇게 된다면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참고 보는 것은 감당할만한 비용이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비전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대해 앤 빌슨만큼 긍정적이지 못하다. 우선 [헝거 게임] 시리즈는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없어도 영화화되었을 것이다. 작품 자체가 [트와일라잇] 시리즈보다는 재미있고, 지난 10여년 동안 십대를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 영화의 유행을 지탱해준 [해리 포터] 시리즈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공기빵 같은 허풍인 [트와일라잇] 시리즈와는 달리 [해리 포터]는 진짜로 알맹이가 있는 수작이다. 굳이 그 사이에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영향에 대해서도 그리 긍정적으로 보지는 못하겠다. 원래 이런 식의 프랜차이즈 인기에 바탕을 둔 아류작들은 기껏해야 오리지널의 비슷한 수준 정도밖에 도달하지 못한다. 빌슨은 낙천적이 되어 [헝거 게임]을 예로 들었지만,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직접 영향을 받은 영화들은 [레드 라이딩 후드]와 [아이 앰 넘버 포]다. 이 영화들이 [트와일라잇] 시리즈보다 나은가? [해리 포터]가 만들어낸 판타지 열풍 역시 [해리 포터]의 수준을 넘어서는 프로젝트는 거의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가능성 있는 프로젝트들을 [해리 포터] 프랜차이즈의 틀에 맞추느라 망가뜨렸을 뿐이다.

이 시리즈가 현대 틴에이저 소녀들의 성적 욕망과 취향을 솔직히 반영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옹호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여기에도 별로 동조할 생각은 안 든다. 우선 욕망에도 종류가 있고 등급이 있다. 솔직한 욕망이라고 무조건 옹호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예를 들어 [트와일라잇] 타겟 독자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자애들의 성적 판타지들이 모두 그대로 분출된다면 당장 경찰이 나서야 할 것이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판타지는 그보다는 온화하지만, 이 판타지의 수동성과 보수성은 그리 권장할만한 것이 아니다. 도대체 벨라 스완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게 뭐가 있는가?

결정적으로 나는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판타지 장르에 여성적 욕망을 표현하는 통로를 열어주었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짜증이 난다. 그건 역사 왜곡이다. 제2차 세계대전 무렵만 해도 판타지와 SF 장르는 섹스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이 장르는 여자애들을 두려워하는 안경잽이 공부벌레 남자애들의 영역이었다. 우주선 스페이스 비글에는 남자들만 타고 있었고, 심지어 안 그럴 것 같은 야만인 코난도 오로지 야한 형용사만 두른 섹시한 여자주인공 앞에서 은근히 예의를 차렸다.

이 장르들이 섹스와 성적 욕망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 건, 여성 독자들과 작가들이 이 장르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적어도 판타지/SF 장르에서 여성작가들은 남자들보다 늘 적극적이었고 진취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막연한 틴에이저 여자아이들의 판타지 뒤를 졸졸 따르거나 하지도 않았다. 이들 사이에서 [트와일라잇] 시리즈 따위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영화나 텔레비전으로 제한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가장 흔한 예로 [버피]를 보라.

그런데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대해 뭔가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긍정적인 아이디어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의무감으로 만들어낸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바보스러웠다. 처음부터 꺼낼 이야기가 아니었다.

유행이 한 차례 지나가면,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오로지 반면교사의 예로서만 기능할지 모르겠다. 에드워드 컬렌을 보라. ‘이런 뱀파이어는 금지’의 완벽한 사례가 아닌가. (1) 뱀파이어를 채식주의자 순둥이로 만들지 말라. (2) 뱀파이어를 다이아몬드 피부를 가진 무적의 아이돌 따위로 만들지 말라. (3) 십대 여자애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늙은 뱀파이어를 뭔가 멋진 것처럼 그리지 말라... 기타등등 기타등등... 이 모든 것은 욕망과 판타지를 날 것 그대로 꺼내놓고 여기에 어떤 종류의 의미 있는 갈등과 고민도 허용하지 않는 판타지 작가들의 저지르는 뻔한 실수들이다. 이를 인식하고 영화를 본다면 여러분은 진짜로 뭔가를 배울 수 있다. 적어도 [트와일라잇] 같은 작품은 만들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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