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유, 누가 검증도 안된 프로에 1회로 출연을 해요.” 12월 4일 첫 방송된 TVN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코리아>에서 배우 공형진이 한 말.
[엔터미디어=나지언의 어떻게 그런 말을] 이제부터 불타는 토요일 밤에는 흥청망청 술 먹고 떠드는 대신 집에서 조용히 ‘나 자신과의 약속’에 충실해야겠다. TVN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코리아>를 보자는 나 자신과의 약속 말이다. 미국 NBC의 간판 코미디 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를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이런 생각이 먼저 든 것도 사실이었다.
하버드 대를 나온 똑똑한 여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난 밤새도록 섹스했고 술 먹고 주먹다짐했고 하버드에서 컨닝했고 마리화나를 피웠어’라며 분노에 휩싸인 갱스터 랩을 부른 것처럼 서울대 나온 김태희가 그럴 수 있을까? 소녀 팬들의 우상인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바디 수트에 힐 신고 비욘세 옆에서 얼쩡거리며 ‘single ladies’ 춤을 춘 것처럼 여자팬만 있는 성시경이 그럴 수 있을까? 촬영 현장에서 제임스 조이스를 읽는 지적인 배우 제임스 프랑코가 ‘kissing family’라는 꽁트에서 머저리 같은 표정으로 아버지와 형과 키스한 것처럼 TV엔 절대 나오지 않는 원빈이 그럴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온 몸이 오그라들었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는 누구에게나 멍청함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극악한(?) 프로그램이다. 여기선 이에 보철 끼고 바지에다 오줌 싸는 바보도 되어야 하고 세상에서 제일 진지한 얼굴로 컵케이크를 사러 간다는 내용의 갱스터 랩도 해야 한다. 국내 스타들의 멍청한 매력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나도 안 똑 같은 성대모사를 하고 박자에 맞지 않는 막춤을 추는 순수한 수준이기 때문에 걱정과 불신은 더 컸다. 하지만 이 모든 소심한 우려를 장진과 김주혁이 멋지게 날려버렸다. 그들은 정말 웃겼다.
“아유, 누가 검증도 안된 프로에 1회로 출연을 해요.”라는 공형진의 (의도된) 농담처럼, 헤어진 애인이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일랑 온전히 잊어야 하는 이 프로그램에 첫 회로 출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세련되고 지적이고 멋진 이미지로 계약한 기존의 CF가 모두 파기될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역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코리아>에 따르면 하고 있는 CF가 하나도 없는 김주혁이 적임자였던 게 맞았다.
평소 옷 잘 입기로 소문난 김주혁은 ‘환상의 궁합’이란 콩트에서 ‘메뚜기보다 좀 더 하이 웨이스트고 스키니한 핏감’이라는 말로 사마귀를 설명하질 않나, 그 동안 스크린에서 보여준 진지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아바타로 파랗게 분장해 짐승 같은 모습을 보이질 않나, 평소의 지적이고 깔끔한 이미지를 신나게 배반해버렸다.
김주혁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장진의 세련된 유머가 만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코리아>는 정치, 사회적으로 공중파보다 좀 더 수위가 센 새로운 코미디 틀을 제시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게다가 이건 스타들의 힘든 인생사를 눈물로 치장하고 엄청난 가치관을 설파하다가 관련 작품을 홍보하는 토크쇼와 화장 안 한 얼굴과 털털함을 강조하다가 관련 작품을 홍보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이외에 스타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의 틀이기도 하다.
김주혁이 자신의 반듯한 이미지를 스스로 엎어버린 것처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코리아>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군데군데 빌려와 스스로를 계속 조롱하고 비판했다. 정치 얘기를 절대 하면 안 되고 PPL은 심의에 걸리니까 위험하다는 제작진의 가짜 기획 회의 덕분에, 정치인 조롱과 PPL에 대한 노골적인 콩트는 배꼽 빠질만큼 웃겼다. 쇼 중간에 김주혁이 도토루 커피를 마신 것도 웃겼으니 뭐 말 다 했다.
스스로를 바보 만드는 그들이기 때문에 이제 그들이 깐죽대지 못하는 분야는 없을 듯하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나오는 이유도 어쩌면 그 때문일 거다. 자신의 멍청함을 드러내며 스스로를 조롱하는 사람은 대중이 보기에 못할 게 없어 보인다. 이제 우리의 기대감은 하나의 질문으로 정리된다. 과연 김태희, 성시경, 원빈이 나올까?
칼럼니스트 나지언 <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피처 디렉터 > nahjiun@paran.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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