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가수'로 시작해 ‘나가수’로 끝난 2011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물론 지금은 힘이 많이 빠진 상태지만, 그래도 올해 예능의 대세를 꼽으라면 단연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괴력의 예능 프로그램이 대중문화 전반에 미친 파급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가수'로 인해 주말 예능의 흐름에 변화가 생겼고, 유사 프로그램과 이를 패러디한 수많은 복제물들이 등장했으며, 음원시장이 꿈틀거렸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이 배출한 가수들이 저마다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가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2011년 예능에 '나가수'가 미친 영향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먼저 '나가수'가 KBS '해피선데이'에 의해 거의 1년 가까이 독점해온 그 주말 시간에 균열을 냈다는 것은 MBC로서는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일밤'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일요일 저녁 잊혀진 프로그램으로 전락했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을 게다. 하지만 김영희 PD가 현업PD로 돌아와 만든 '나가수'는 이 견고한 '해피선데이'의 아성을 뒤흔들었다. 물론 여전히 시청률은 '해피선데이'가 앞서가지만 적어도 화제성에 있어서 '나가수'를 따라올 일요 예능은 없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가수'가 '듣는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귀를 다시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서바이벌이라는 장치를 둠으로써 오로지 음악에 집중시키는 프로그램은 비주얼에 경도되어 잘 들리지 않던 음악을 듣게 해주었고, 그간 방송에 의해 평가절하 되었던 '노래하는 가수들'을 재발견하게 만들었다. 임재범, 박정현, 김범수, 김연우, 이소라, JK김동욱 등등 재발견된 가수들은 연일 음원 차트를 메웠고, 단박에 예능 프로그램 게스트의 블루칩이 되었다. 한때 '얼굴 없는 가수'로 불렸던 그들은 어느새 '비주얼 가수', '요정'으로 불렸고, 이들이 열어놓은 대중들의 귀는 그래서 가요계에 '듣는 음악'을 하는 작금의 많은 가수들 또한 주목하게 하는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왔다.
과거 흘러가버린 전설들을 다시 모셔놓고 아이돌들이 리메이크를 하는 '불후의 명곡'은 아이돌판 '나가수'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이 프로그램에 영향을 받았다. 아이돌 그룹의 화려한 비주얼에 가려졌던 효린이나 지오 같은 가창력 있는 아이돌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주목받게 되었고, 또한 아이돌은 아니지만(그렇다고 중견도 아닌) 가창력 있는 솔로가수들(예를 들면 케이윌, 이정, 알리 같은)을 재발견하게 했다는 것도 의미 있는 변화였다. 이것 역시 '나가수'의 영향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MBC의 많은 프로그램들은 '나가수'를 변주했다. '보고 또 보고'는 '나도 가수다'를 통해 '나가수'를 패러디해 주목을 끌었고, '무한도전' 역시 패러디를 준비하고 있다. '나가수'가 발굴한 김범수, 김연우, 박정현은 '놀러와', '황금어장' 같은 토크쇼에 게스트로 출연해 프로그램을 빛내기도 했다. 한편 '바람이 실려'처럼 이 프로그램 출신 가수인 임재범이 주인공인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바람의 실려' 후속으로 '룰루랄라'에 김건모가 들어있다는 사실 역시 '나가수'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나가수'가 현재 어떤 정체기에 들어서 있다는 비판은 합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가수'가 올해 예능 전반에 남긴 족적을 부정하는 건 합당하지 않다. 1년 내내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준 '나가수'. 가수라는 존재를 다시 발견하게 해준 '나가수'. 2011년 예능은 그래서 '나가수'로 시작해 '나가수'로 끝난 '나가수'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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