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인은 무엇을 할 수 없는 자를 일컫는가
[엔터미디어=나도원의 오늘 음악이 건넨 말] 참 궁금하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최근의 일들부터 복기해봐야겠다. 지난 11월 27일에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는 가히 ‘고소 특집’이라 부를만했다. 개그맨 최효종 씨를 국회의원에 대한 집단모욕죄로 서울남부지검에 형사고소 했던 강용석 의원에게 가해진 융단폭격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 강용석 의원의 고소 취하는 이런 반격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관련된 일에 대한 법원의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한 오버’를 촉발한 ‘의도된 해프닝’의 수혜자들 중에는 강용석 의원도 포함된다. 매우 작은 의미에선 그렇다.
◆ 개그맨을 고소한 국회의원, 가수를 비난한 어떤 사람들
모두가 나서서 한바탕 개그본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을 깔아주긴 했다. 쥐며느리가 웃다가 좌측 18번째 다리와 우측 28번째 다리가 떨어져나갈 이야기였으니 (그리고 당사자도 즐겼다니) 그럴 만도 했다. 덕분에 “성희롱 발언으로 국회의원직 상실 위기에 몰린 강용석 의원이 이제는 개그맨에 도전하고 있다”면서 “누가 개그맨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며 “안습”이라 했던 진보신당의 논평도 볼 수 있었다. “더 이상 어처구니없는 개그로 진정한 개그맨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을 그만두기 바란다”는 충고는 정말 재미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척 간결하지만 꽤 곱씹어볼만한 발언이 하나 나왔다. “연예인을 우습게보지 말라.” 사실 최효종 씨를 고소한 것보다 더 큰 잘못은 개그맨(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을 자기 목적을 위한 도구로 이용해버린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연예인을 우습게” 본 것이다. 그런데, 대중은 그렇지 않았을까. 연예인과 대중예술인의 사회적 의사 표현에 “연예인이 왜? … 자기가 뭔데?”라며 반감을 표해온 이들이 훨씬 많았다. 지난 10월 25일 보궐선거 전후에 가수 이효리 씨에게 퍼부어졌던 일부의 비난은 본질에 있어서 과연 달랐을까.
SNS 시대가 도래 하자 다들 더 바빠졌다. 지하철 좌석에 늘어앉은 승객 모두가 네모난 기계를 만지작만지작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유명인들이 종일 트위터를 하자, 그들의 트위터를 살피는 기자와 네티즌의 일은 끝이 없어졌다. ‘깜’이 생기면 우루루 몰려들었다가 우수수 사라진다. 이효리 씨의 어떤 글들도 이렇게 관심을 모았는데, 선거 때에 그가 어떤 후보를 지지했는지 명확히 밝히진 않았고, 사실 크게 중요한 부분도 아니었다. 사적으로는 평생을 개와 지냈으며, 특히 12년 동안 함께 살다 먼저 가신 짱가 선생의 영정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순정남으로서는 이효리 씨의 동물구호와 봉사활동에 더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음악평론가로서는 지난 앨범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어쨌든 요지는 투표에 참여하자는 것으로 안다. 당연한 말이었다.
민주사회에서 투표는 중요하다. 고대 그리스에선 투표를 하지 않은 귀족에게 벌금을 부과할 정도의 의무였다. 지금도 선거 결과는 증시와 언론의 논조에 영향을 미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정치행위에 의해 건설되었고 정치행위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민주사회의 기본행동에 적극성을 보인 가수가 어떤 이들의 공격 대상이 되어버렸다. 아마 그들 중 다수는 강용석 의원을 함께 비웃었을 텐데, 실은 그와 비슷하게 생긴 잣대를 가지고 있진 않았을까. 물론 내용이 다르고 경우가 다르다. 그런데 본질도 달랐는지 의문이다.

◆ 연예인과 공인에 대한 편견, 이젠 지겹죠?
좀 더 오래된 일을 떠올려보면 또 다른 궁금증이 이어진다. 2010년 지방선거 때에 캠페인송 ‘랄랄라’를 부르며 투표를 독려했던 그룹이 있다. 바로 소녀시대이다. 선거투표 캠페인은 칭찬하고 트위터에 선거투표 이야기를 쓰면 비난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소녀시대와 이효리 씨 중 누구에게 안티가 많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 캠페인인가 사적 활동인가의 차이가 아니다. 긍정·부정의 이미지는 부차적이다. 대체로 정치성향에 따라 결론을 내려놓고 사안에 접근하는 성향이 강한 문화에서 ‘무색무취’이거나 ‘자기편’이 아니면 입을 다물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심리가 “감히, 연예인이!”라는 편견과 만나 표출된다.
김미화·김제동·김여진 씨 등에 대한 어떤 반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을 공격하는 말, 예를 들어 변희재 씨 등의 말을 듣고 있자면 읽으면서 도리질을 반복하게 되는 글을 읽는 기분이 든다. 전제와 목적 그리고 사례수집에 문제가 있으면 논리에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애초에 연예인 혹은 대중예술인의 상업·예술 영역과 한 시민으로서의 공적 영역을 따로 구획해놓는 것부터 구시대적이다. 각각의 사견에 반대하고 비판할 수 있으나, 공인 혹은 연예인이라서 그들의 의견표명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
마지막 궁금증을 해결할 차례이다. TV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아이돌 가수들의 생각은 전혀 알 수가 없다. 긴 연습시간만큼이나 짧은 치마를 입는 이들의 생각은 알 수 없다. 다들 숙녀가 된 소녀시대 역시, 2010년과 달리 이번엔 투표를 했는지 안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아마 워낙에 정치의사에 따라 대립각이 큰 한국사회에 첫 번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를 좋아하는 만인이여, 돈을 던져라’라는 아이돌에게 위험한 일이다. 그랬다간 사장님한테 혼난다. 시키는 대로 하는 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다. 과거엔 기관과 방송국이 통제했지만, 지금은 연예기획사시스템과 관련된 현상이다.
그러나 음악을 찾아듣지 않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대중음악동네에선 다양한 사회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무수히 많은 사례들을 모르고, 해외에선 더 무수히 많은 사례들을 모르고, 연예기획사시스템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 의하여 초보적인 소견과 편견이 재생산되고 있다. 복잡한 가정사를 다루는 일일연속극을 처음 보는 이가 이런저런 딴죽을 거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니 ‘드라마 문외한의 코멘터리’도 재미있을 것 같긴 하다.)
연예인은 공인인가. 그렇다고 하자. 그럼 공인은 무엇을 할 수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사회에 관심이 많다면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굳이 “난 정치는 모른다”, “전 정치색이 없어요”라는 변명을 붙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말이 진심이라면, 우리나라에선 ‘순수’로 받아들여지지만 선진국에서 성인이 그랬다간 어린애 취급당하기 딱 좋다. 그래서 이효리 씨가 트위터에 썼다는, “전 무식한 연예인 맞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안 그럴려고요.”라는 말이 반가웠다. 그런 사회는 오기 힘들다고? 우주캡슐에 레코드판을 넣어 날려 보낸 행성이 지구 아니었던가. 그야말로 더 믿기지 않는 일이다.
칼럼니스트 나도원 <대중음악평론가> nadow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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