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L 코리아', 실명언급 풍자의 혁명 이룰까?
[엔터미디어=듀나의 TV낙서판] tvN에서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의 한국판을 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이게 뭔 소리인가 했다. 이미 일본판이 먼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온전히 이해는 안 된다. 이 포맷을 사들이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가 내세우는 스탠드업 코미디와 스킷은 한국 코미디 문화와 그리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 문화에 맞는 것으로는 이미 ‘콘서트’ 형식을 도입한 [개그 콘서트]가 있고, 이미 그 프로그램은 (토요일에 하는 것도 아니고 라이브도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판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여기에 굳이 미국 코미디의 포맷을 가져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미국 코미디는 우리나라에서 그리 잘 통하지 않는 장르인데. 그리고 댄 애크로이드, 존 벨루치, 빌 머레이에서 시작해서 앤디 섐버그, 크리스틴 위그까지 이어지는 장중한 전통이 없는 이름뿐인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라? 흠...
그래도 궁금해서 첫 회를 봤다. 생방송은 아니었고 일요일에 하는 재방송이었다. 월요일 것을 봤다면 큰일 날 뻔했다. 재방송에서 그렇게 가차 없이 스킷들을 툭툭 잘라낼 줄 누가 알았나.
예상 외로, 아니 예상대로 좋았던 것은 첫 회의 호스트인 김주혁이었다. 그건 그가 [아바타]의 나비 족이나 스티브 잡스의 짝퉁으로 나와 ‘망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 언론들은 이 무의미한 표현을 쓸데없이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코미디의 현장 속에서 단단한 정극의 진지함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병원 스킷이나 간접광고 스킷에서 그는 한국식 코미디 연기를 하지 않는다. 그는 정극 배우로, 또는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로 연기한다.
이러한 경향은 김주혁 뿐만 아니라 이 프로젝트를 책임진 장진과 그의 패거리들의 위치와도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 1회만으로 평가하는 건 너무 빠르지만 그들은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식 미국 코미디와 한국식 코미디 사이에 있는 아직 미개척된 회색 지대를 찾아낸 것 같다.
1회만 본다면 이 시도는 절반의 성공이다. 이번 회의 스킷들은 대부분 오리지널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스킷의 직역처럼 보인다. 어떤 것은 그냥 복사처럼 보이지만 그걸 확인할 만큼 내 기억이 좋지는 않다. 예를 들어 이한위 토크쇼 (실패작이었다)는 케빈 스페이시가 호스트로 나왔던 회의 [스타 워즈] 오디션을 연상시키는데, 아마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서 그런 식의 코미디를 그 때 한 번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여간 이들은 그 때문에 거의 번역극처럼 보이고 (특히 정신병원 스킷이 그렇다) 그 특유의 오글오글함을 완전히 지워내지 못한다.
오리지널의 의도나 역할을 완전히 집어내지 못한 꼭지도 보인다. ‘디지털 단편’의 경우 그건 단순히 녹화된 코미디란 뜻은 아닐 텐데? 화장실 농담이야 언제나 먹히는 거지만, 이 꼭지의 장점과 매력은 내용이 아니라 매체의 패러디에 있지 않았던가? K-Pop 문화가 어느 정도 활성화된 지금 한국 특유의 성격을 갖춘 매체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90년대식 촌발 날리는 드라마타이즈 뮤직 비디오라던가.
반쯤은 거슬렸고 반쯤은 흥미롭게 봤던 것은 시리즈의 자의식이었다. 오리지널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는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가 되겠다는 자의식은 없다. 그들은 그냥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이고 그들로서 존재하면 된다. 하지만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는 이를 하나의 브랜드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원본을 가져오고 그 오리지널리티를 살릴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역시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던) 회의실 스킷은 일종의 자기 폭로와 같다.

여기서 사람들이 가장 주목했던 부분이 터져 나온다. 바로 정치 풍자이다. 오리지널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서 정치가들의 실명을 들먹이며 호전적인 풍자를 하는 것은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심지어 프로그램의 개성도 아니다. 하지만 기껏해야 성대모사만 넣어 물렁물렁한 이야기만 하는 단계에서 멈추었고 이번 정권 이후 그것도 제대로 못한 한국 코미디계에서 고유명사를 직접 언급하며 그 대상에게 공격적인 농담을 퍼붓는 것은 혁명적인 것이 된다. 그리고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의 팀은 그 소박한 혁명을 위해 해외에서 들려온 브랜드를 이용한다.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라는 브랜드는 그들에게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말하는 동안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일종의 방패이다.
성공했느냐고? 장진은 [위크엔드 업데이트]에서 진짜로 이명박을 표현한 몇몇 이름을 언급했다. 하지만 그의 농담은 그를 제외하면 안전했고 구체적인 방향성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의 방송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조금 앞으로 나갔다고 할 수 있지만, SNS와 [나꼼수]를 통해 몇 백 배 강도 높은 정치 농담들과 욕설들을 매일 접하는 시청자들에게 이런 농담은 그냥 나이브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하나의 기회일 수 있다. 미국 사회에서 코미디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거기서는 스티븐 콜베어와 같은 코미디언들이 옛 공화당 정부의 요인들 앞에서 그들을 풍자하는 농담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를 반대로 뒤집으면, 이런 곳에서 코미디는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다는 뜻도 된다. 이런 식의 정치적 관용은 오히려 무관심과 통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비난하는 농담을 듣고 관대하게 웃으며 곧 그에 대해 잊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우린 코미디언들이 진짜로 무언가를 부수고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는 오묘한 지점에 서 있다. 이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가 1회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정도로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그래도 기회는 여전히 있다. 지금이라도 정면으로 나서서 자신의 직업이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 보여줄 코미디언들은 한 번 손을 들어보시라.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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