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너의 꿈속으로 달아나는 거야 아침이면 모두 어김없이 끝나 버릴 텐데 잠든 너를 지켜보는 것도 지겨워 지겨워 눈을 뜨면 나는 먼 곳으로 떠났을지 몰라” – 아이유 노래 ‘잠자는 숲 속의 왕자’ 중에서.

[엔터미디어=나지언의 어떻게 그런 말을] 잠깐, 아이유가 몇 살이었더라? 열 아홉 살이면 삼촌이 사오는 과자를 순수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해님 달님 별님에게 멋진 왕자님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나이 맞지? 아이유의 새 음반 를 1번부터 13번 트랙까지 듣는 동안 낯간지럽고 민망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요즘 음악계에서 보기 드물게 매력적인 허스키한 음색, 예능 프로그램에서 내숭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태도, 자작곡을 쓰고 싶다는 당돌한 모험심 같은 그녀의 평소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듣는 내내 이런 질문만 머릿속에 떠올랐으니까. ‘잠깐, 아이유가 몇 살이었더라?’ “기술보다 감성, 감정이 중요하다”며 3단 고음으로 주목 받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대학 진학해도 학교 제대로 못 나갈 것 같다”며 대학 진학이 지금의 뜻은 아님을 밝힌 당당하고 솔직한 아이유는 어디 갔지?

귀여운데다가 노래도 잘하는 아이유가 예뻐 죽겠는 삼촌들의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에 참여한 삼촌들, 그러니까 이적, 윤상, 김광진, 윤종신 등이 만들어낸 ‘조카 아이유’는 예쁘고 환상적인 그림책에 갇힌 모습이다. 우리도 다 안다. 노래 잘하며 어른스러운 중학생이었던 아이유가 1집의 실패를 딛고 성공하기 위한 전략은,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컨셉트’였다는 걸. 그리고 그런 전략이 팝스타가 되기 위해 꼭 필요했다는 것도 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빅뱅과 슈퍼 주니어 노래를 기타 치며 어쿠스틱하게 편곡해 부르던 아이유를 기억하던 사람들에게 ‘마쉬멜로우’는 지나치게 아이돌스러운 노래였지만 그녀는 곧 매력적인 멜로디에 본인의 음색을 잘 섞은 ‘좋은 날’을 들고 나왔다. ‘오빠가 좋은데’란 유명한 구절의 ‘좋은 날’은 그 전에 그녀를 알았건 몰랐건 아이유를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그 다음에 기대한 건 오빠 말고 삼촌을 부르는 게 아니라, 진짜 자기 노래를 부르는 아이유였다.



음악적으로 훌륭한 삼촌들이 참여했으니 아이유의 잠재된 음악성을 더 끌어올려 귀여운 이미지 말고 새로운 장르적 실험을 시도할 줄 알았는데, 삼촌들에게 아이유는 뮤지션이 아니라 조카였나보다. 중학교 때부터 자신이 어떤 노래를 하고 싶은지 스스로 깨닫고 기존의 아이돌 노래를 자기 식대로 바꿔 부른 아이유는, 노골적인 팬 서비스인 ‘삼촌’이란 곡에서 삼촌이 사오는 과자나 기다리는 꼬마 조카가 돼버렸다.

‘잠자는 숲 속의 왕자’에서는 동화책 안으로 아예 걸어 들어갔다. ‘언제까지 너의 꿈속으로 달아나는 거야 아침이면 모두 어김없이 끝나 버릴 텐데 잠든 너를 지켜보는 것도 지겨워 지겨워 눈을 뜨면 나는 먼 곳으로 떠났을지 몰라’라는 가사를 듣고 ‘그렇지!’하면서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했나? 이 음반의 아이유는 귀엽기만 하다. 1집 ‘growing up’이나 ‘feel so good’에서 보여준 도발적인 리듬감은 어디로 갔을까?

무대 위에서는 사람 잡아 먹을 듯한 눈빛으로 관능미를 드러내면서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서는 순진한 얼굴로 “남자 친구 사귀어본 적 없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돌을 보면서 느끼는 혼란에 비하면 나이에 맞는 음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전형적인 멜로디 안에 츄리닝 입은 삼촌과 잠자는 숲 속의 왕자와 별과 강아지가 등장하는 이 음반은 이미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보는 아이한테 TV에서 뽀뽀하는 장면이 나오자 ‘눈감아’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순진한 구석이 있지만 동시에 도발적이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고 거침 없기도 한 게 10대 아닌가? 이 음반에서 21세기의 열아홉 살 아이유는 집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 없는 열세 살로 보인다. 아이유에게 기대하는 ‘마지막 판타지’라고 하면 뭐 할말은 없다만.


칼럼니스트 나지언 <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피처 디렉터 > nahjiun@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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