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자의 이름을 호명하는 위로는 없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사실 '나영이 사건'이라는 명칭은 그 자체가 문제다. 비록 가명을 사용했다고 해도 이런 지칭은 그 자체로 당사자인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이 사건을 굳이 지칭한다면 '조두순 사건'이라고 해야 옳다. 실제로 이 사건이 터지고 아고라에서는 이 명칭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으며, 그래서 몇몇 언론사들이 '나영이 사건'이 아니라 '조두순 사건'이라 지칭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피해자의 이름이 사건에 거론될 때, 그것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2차 피해를 줄 수가 있다. 언론의 반복적인 노출은 물론 가해자를 성토하는 것이라고 해도 피해자에게는 계속해서 그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는 가해가 되기도 한다. 만일 이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알리가 굳이 '나영이'를 전면에 거론하며 노래를 발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피해자를 위로하고픈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말이다.

문제가 됐던 "청춘을 버린 채 몸 팔아 영 팔아 빼앗겨 버린 불쌍한 너의 인생아"라는 가사는 심지어 '나영이'라는 제목을 붙인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알리 측은 이것이 피해자를 지칭하는 가사가 아니라 가해자를 비판하는 가사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실 맥락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조두순 사건을 염두에 뒀다면 '청춘을 버린 채'라는 표현이 어색하고, '빼앗겨 버린 불쌍한'이라는 표현은 마치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가해자가 되었다는 식으로 들릴 만큼 너무 온정적이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고 결국 알리가 이 가사가 "자신을 위한 메시지"라고 밝히는 부분에서 "청춘을 버린 채 몸 팔아 영 팔아 빼앗겨 버린 불쌍한 너의 인생아"라는 가사의 어색함은 어느 정도 풀린다. 그것이 알리가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밝힌 성폭행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 가사는 '청춘을 버린 채' 노력했지만 결국은 '몸 팔아 영 팔아 빼앗겨 버린 불쌍한'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는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알리가 스스로 밝혔듯이 자신이 성폭행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가사를 되새겨보면 이 노래가 가진 절절함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즉 '나영이'라는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면 이 노래는 사랑타령이 대부분인 우리네 가요계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진 의미 있는 시도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만일 노래에 얽힌 알리의 이런 힘겨웠던 과거까지 드러난다면(혹 스스로 밝히는 용기까지 내었다면) 알리의 진심은 더더욱 대중들의 마음에 다가갔을 것이다.

즉 노래에 굳이 '나영이'를 언급하지만 않았다면 훨씬 그 진정성이 통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왜 굳이 알리는 '나영이'를 노래제목으로 언급함으로써 이런 모든 진심들을 어긋나게 만들었을까. 사실 여기에는 좀 더 노래를 이슈화하고픈 욕망이 들어가 있다. '조두순 사건'은 그만큼 우리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사건이었다.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른들은 모두 죄책감을 느꼈던 사건이 아닌가. 우리가 '아저씨'라는 영화를 통해 발견한 아이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어른이라는 위치가 갖게 되는 부채감 말이다.

물론 이것은 섣부른 동정심과 사려 깊지 못한 생각이 부른 해프닝이다. 진정성은 있었으나 그 진심이 왜곡될 만큼 크나큰 실수와 잘못이 있었다. 씁쓸한 것은 누군가의 이름을(그것이 가명이라도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직접 거론한 선정적인 제목이 말해주듯, 사회적 트라우마마저 상품화하려는 욕망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진심어린 문제제기와 사회적 이슈를 통한 마케팅의 차이는 정말 아주 작은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자신의 고통마저 노래로 승화해 사회적인 문제제기를 하려 했던 알리의 선의는 이해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선의가 순식간에 악의가 되어버린 이번 논란이 시사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엔터미디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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