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성일은 정말 전설의 배우였나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얼마 전 우다다다 채널 서핑을 하다가 종편 채널 어딘가에서 운 나쁘게 신성일 인터뷰가 걸렸다. 자서전 후폭풍이 이해가 안 되는지 뭐라고 변명을 하던데, “"506편의 영화와 118명의 여배우와 영화를 찍었다. 그런 영화배우가 엄앵란 하나만 보고 살아왔다? 그게 참 밍숭이지"라고 말하는 장면을 봤던 것 같다. 나중에 인터넷 기사에도 나온 걸 보면 그게 핵심 대답이었나 보다.

참 잘났구나, 라고 말하고 싶다. 5,60년대에 506편의 영화에 출연한 건 자랑이 아니다. 그건 기껏해야 당시 영화관이 텔레비전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고, 당시 배우들 역시 겹치기 출연하는 텔레비전 배우들처럼 움직였다는 뜻이다. 그건 그가 당시 인기가 좀 있었고 여자 만날 기회가 많았다는 뜻일지는 몰라도 그가 대단한 배우라는 뜻도 아니고 그에게 막 살 권리가 있었다는 건 아니다. 그보다 몇 천 배 유명하고 인기 있던 수많은 배우들이 멀쩡하게 건전한 삶을 살았다. 신성일 기준에 따르면 제임스 스튜어트나 폴 뉴먼 같은 사람들은 어딘가 모자란 남자들인가 보다.

여기서 난 신성일의 사생활 따위를 깊이 물고 늘어질 생각은 없다. 아무리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도 그건 그들의 사생활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무언가 전설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지적을 하고 싶어진다.

우선 일반론부터 해결하자. 옛날 영화를 보고 옛날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할 때는 약간의 교정과정이 필요하다. 할리우드 배우들만 해도 50년대 배우들은 지금 배우들보다 오버 액션을 하고 있는 것 같고 연기의 디테일이 부족해 보인다. 그런 그들이 나쁜 배우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당시의 연기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무성영화로 가면 대사가 없고 과장된 표정만으로 내용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사실적인 연기에서 더 멀어진다. 역시 그들이 나쁜 연기를 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발레나 연극처럼 전혀 다른 종류의 연기이다.

옛날 한국영화들의 연기 장벽은 할리우드보다 더 크다. 우리는 반세기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미국보다 훨씬 많이 변했다. 아무 정보도 없는 사람들에게 5,60년대 영화의 대사만 틀어주면 상당수가 이게 웬 북한 영화냐고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북한 사투리’라고 생각하는 것 상당수는 사투리라기보다는 우리가 몇 십 년 동안 잃어버린 옛 어투이다. 연기 스타일 역시 그 동안 바뀐 건 당연하다. 그 연기의 바탕이 되는 문화와 사회, 미적 감각 역시 바뀌었다.

게다가 영화의 경우 지난 몇 십 년 동안 거의 쿠데타와 같은 단절이 있었다. 같은 충무로에서 8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들과 200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들을 비교해보라. 당연히 요새 관객들은 옛날 한국 배우들이 적응이 안 된다. 그들은 이상하고 우스꽝스럽다. 신성일도 예외는 아니다. 요새 관객들이 그를 아침방송에 가끔 나오는 할머니의 말썽쟁이 남편으로밖에 보지 않는 건 당연하다. 그의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들기 때문이다. 그들 중 몇 편이 한국 영화에 길이 남아야 할 걸작이어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배우들은 보이기 마련이다. 김진규를 볼까. 그는 낯선 억양으로 과장된 연기를 하고 있지만, 조금만 보면 그의 발성과 표정 연기가 얼마나 정확하게 영화의 내용과 맞아 떨어지는지 보인다. 단지 당시 관객들이 좋아했던 그의 연기와 요새 관객들이 좋아할 법한 연기 사이에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요새 관객들은 [마의 계단]이나 [하녀]에서 보여준 그의 찌질한 캐릭터들을 별다른 어려운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처절한 멜로드라마 연기를 하는 [어느 여배우의 고백]과 같은 영화는 암만 봐도 코미디처럼 보인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예로 구봉서의 예를 들고 싶다. 나는 그가 출연한 코미디 영화들 중 세월을 견뎌낸 작품들을 본 적이 없다. 그의 코미디 연기는 이상하게 신경질적으로 과장되어 있고 내용 자체는 당시의 편견이 여과 없이 노출되어 있어서 보기가 불편하다. 하지만 그가 [수학여행]이나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 보여주는 정극 연기는 여전히 감동적이다. 하여간 좋은 배우라면 어딘가 자신의 가치를 남기기 마련이다.



신성일로 돌아가 보자. 앞에서 말했지만 그는 한국영화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할 작품들에 출연했다. [안개], [만추], [맨발의 청춘], [겨울여자]와 같은 영화들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과연 신성일이라는 사람이 어떤 배우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우린 김진규, 허장강, 최은희와 같은 배우들의 연기 스타일에 대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늘어놓을 수 있다. 그들에겐 자기만의 서명이 있다. 하지만 신성일의 경우 인기와 외모를 넘어서면 할 이야기가 툭 떨어져버린다. 그의 연기 스타일은 제한되어 있었고 표정 연기는 갑갑했으며 깊이 있는 연기는 거의 보여준 적이 없다.

나는 여전히 [휴일]이나 [안개]가 신성일처럼 신경질적인 스타카토로 연기를 쏟아대는 배우가 아닌 다른 사람이 연기했다면 영화가 몇 십 배 더 좋아졌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목소리는... 아시다시피 그는 506편이나 되는 영화 대부분에서 금붕어 연기를 했다. 당시는 모두가 후시 녹음이어서 그렇지 않냐고? 물론 후시녹음시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여전히 허장강과 김진규의 목소리를 알고 있지 않은가.

결국 중요한 건 당시의 상황이 어땠느냐가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무엇을 남겼느냐이다. 그리고 그 남겨진 것들을 평가하는 건 후대의 몫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세상이 빨리 돌아가는 곳에서는 그 과정이 더 빨리 이루어진다. 아무리 선배질을 하며 후배들에게 호통을 치고 싶어도 후배들이 그들의 작업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그냥 어쩔 수 없다. 여기에 촌스러운 스캔들까지 더해지면 앞날은 더 어둡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제한적으로나마 불멸을 꿈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불멸을 쟁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후대의 관객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신성일은 정반대로 간다. 그를 왕자처럼 떠받들던 옛날 팬들이 앞으로도 영원히 살 것이라 착각하나보다. 하지만 그들은 다 늙어 죽어가고 있다. 살아서 그를 보고 그의 이미지를 정의할 현재와 미래의 관객들은 그가 머릿속에 품고 있는 스타의 이미지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정답은 내리기 어렵지만, 신성일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반대임은 분명하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MBC, 영화 '맨발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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