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같은 OTT 시대, 제작 시스템도 달라져야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종영한 tvN 드라마 <루카 : 더 비기닝>은 많은 숙제를 남겼다. 먼저 이런 낯선 장르(SF 판타지)에 대한 도전 자체는 박수 받을만하다는 점이다. 언제까지고 우리네 드라마가 멜로와 가족, 사극 같은 기존의 틀 안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있을 순 없다. 이미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해외의 무수히 많은 드라마들을 쏟아내고 있고, 이를 우리네 시청자들이 소비하는 시대다. 저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그간 여러 현실적 여건들 때문에 열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 도전이 필수적이다.

<루카>는 여러모로 이런 시대 변화를 읽게 해주는 작품이다. 전류를 뿜어내는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등장하고, 그가 겪게 되는 존재론적인 질문과 더불어 생명윤리에 대한 메시지까지 담은 <루카>는 기존 우리네 드라마와는 다른 색깔을 지닌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콘텐츠 시대에 맞춰진 도전에 의미를 둔다고 해도, 생각보다 너무 떨어지는 대본과 연출의 한계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물론 새로운 장르이고, 그래서 CG도 동원되며 액션 연출도 다를 수밖에 없어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만들어진 우리네 드라마인 <킹덤>이나 <스위트홈> 같은 작품을 떠올려보면 이것이 노하우 부족에 의한 한계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즉 조선시대 좀비를 소재로 한 <킹덤>이나 우리네 드라마에서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크리처물을 선보인 <스위트홈>도 모두 괜찮은 완성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어째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내는 작품의 완성도와 우리네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에서 내놓는 작품의 완성도에 이런 차이가 날까. 그건 제작진이 달라서가 아니라 제작시스템이 달라서일 게다. 알다시피 넷플릭스는 한 시즌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공개한다. 그래서 완전한 사전 제작이고 기획단계에서 완성까지의 제작기간도 꽤 길다. <킹덤>의 경우 시즌1 6편이 20191월에 공개된 후 약 1년 후인 20203월에 시즌2 6편이 공개됐다. 그리고 다음 시즌3 대신 올해 <아신전>이라는 외전으로 돌아온다. 그만큼 작품 제작에 있어서 기간도 넉넉하고 공개하는 시점도 자유로운 편이다. 즉 정해진 편성 시간에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작품 중심으로 편제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의 드라마 제작 시스템은 어떨까. 거의 1년 단위로 후년의 작품들이 기획되고, 정해진 편성표에 맞춰져 제작되는 시스템이 여전하다. 본방사수라는 편성표에 맞춰진 시청 문화가 이미 OTT 등으로 깨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우리네 드라마의 제작은 편성 시간에 쫓긴다.

이런 관행은 과거 지상파가 주도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드라마를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는 편성 시간을 채우는 연속극 같은 개념으로 보던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 우리네 드라마들이 달라진 시대변화에 적응하고, 해외의 콘텐츠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이 지상파 시절의 편성 시간에 맞춰진 제작방식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월화드라마, 수목드라마, 주말드라마 같은 방식이 아니라, 마치 영화처럼 드라마도 그 때 그 때 완성된 것들을 중심으로 방영시간을 정해 방영되는 방식이 아니라면, SF 판타지 같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진 장르의 완성도를 높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루카> 같은 기획이 나쁘지 않은 작품이 완성도에 흠결을 내고 아쉬움을 남기는 일이 없으려면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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