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에도 인정하게 되는 신원호·이우정 사단의 놀라운 능력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사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는 아쉬움이 있다. 이 평가가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중반을 넘어선 지금 5인방은 한층 더 완성형에 가깝게 성장했고, 율제병원은 여전히 잘 돌아간다. 웃고 울리다 눈물을 쏙 뺄 뿐 아니라 아니라 시청률이나 화제성 면에선 시즌1을 넘는 상승 추세다. 매회 한 곡씩 주인공들의 연주와 노래로 발표하는 옛 노래들은 음원차트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고 적절한 타이밍의 먹방은 PPL까지 맛깔나게 살려주니 모든 설계들이 기대한 만큼의 대중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아쉽다고 느끼는 이유는 단 하나다. 병원을 무대로 현실에서 만나봄직한 다양한 인간군상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던 하모니가 줄었다.

추민하(안은진) 선생이 스타트를 끊은 첫 장면은 시즌2의 방향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상징이다. 주연이 여럿인 만큼 여러 플롯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방식까지는 같지만 이번엔 각 인물들의 러브라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쌍둥이 ‘윤복과 홍도’가 나선 6회 전까지 시즌1과 비교하면 풍성함을 담당했던 주변 인물들의 존재감이 크게 줄어들었고, 고백의 설렘과 두려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추민하의 현재진행형 짝사랑은 7회에 이른 지금까지 극의 중심에 여전히 녹지 않고 놓여 있다.

‘슬기로운’ 시리즈가 새롭고 매력적인 드라마인 이유는 우리가 봐왔던 기존 드라마들과 달리 주공격수를 두지 않는 축구의 ‘제로톱’ 전술과 유사한 새로운 극작법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주연과 조연이 피라미드식으로 나열되고 남녀 주인공이 중심축을 이루는 스토리라인을 해체하고 현실에선 모두가 각자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처럼 주연과 조연, 단역 상관없이 각자의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들을 수평으로 배치했다. 그러면서 현실에서 볼법한 인간적 고민과 면면을 생생하게 드러냈었다. 리얼버라이어티 시대 이후 예능에서 시청자와 출연자간의 거리감이 대폭 줄어든 것처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시대성, 현실감, 신선한 마스크 등을 통해 이야기 속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신원호·이우정 사단의 드라마가 갖는 가장 특별한 특징이다. 일반적인 러브라인을 걷어내고, 빌런과 인물 간의 갈등이 없는 대신 캐릭터의 매력으로 승부한다. 매회 이야기가 완결되는 에피소드식 구성과 선곡 등 섬세하게 장치한 디테일을 통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스토리라인의 어려움을 해소했다. 그런데 5인방 캐릭터의 특이점들이 연애 과정을 통해 직접 설명이 되고 ‘연애 감정’을 통해 진화하면서 각자의 개성이 둥글게 정리됐다. 연애에 관심 없는 완벽주의자, 외향적이고 장난끼 가득하지만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천재, 손이 베일 정도로 까칠하지만 실은 츤데레, 답답할 정도로 둔하지만 헌신적인 의사, ‘홀리’ 그 자체의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던 드라마는 헌신적이고, 친절하며, 화타와 히포크라테스가 현현했다고 할 만큼 완벽한 다섯 전문의와 그들의 연애를 담은 로맨스가 됐다.

병원의 현실과는 한 발 더 떨어진 판타지는 공고해졌고, 각자 파트너가 정해져 있는 러브라인 탓에 이야기는 단순해졌다. 러브라인은 가장 보편적이고 통속적인 흥미를 자아내는 동력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연애에 몰두하고, 캐릭터들이 완벽에 가까워질수록 다양한 인간 군상이 살아가는 병원의 풍경과 메디컬 드라마의 특성은 아웃 포커스 된다. 장기기증을 둘러싼 절박함과 행운과 불행이 교차하는 변곡점에 대한 묘사 등 휴먼드라마 특유의 감정 연출도 여전히 탁월하지만, 러브라인 밖에 있는 감정선은 주변부로 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를 놓고 보면 청춘 로맨스물로의 변화가 주효했다. 슬기로운 시리즈의 고유한 특성들, 집단 군무와 같은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펼치는 앙상블 대신 가장 단순하고 통속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져왔는데 이게 먹혔다. 합주 장면은 스토리 밖으로 나갔지만 여전히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유사가족 커뮤니티의 튼튼한 울타리가 존재함을 상기시키는 유력한 장치다.

대학교 때 맺어진 울타리 안에서 그때 그대로의 성격으로 살아온 이들이 유예해온 성장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판타지의 농도를 높이면서 강력하게 구축한 러브라인은 현재 최고의 의술을 지닌 대학교수로 성장했지만 제자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장난꾸러기의 순수한 면모들, 이들이 20여 년 전 캠퍼스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는 한결같은 모습에서 변주와 변화, 발전을 줄 수 있는 하나의 선택이었다.

‘슬기로운’ 시리즈의 팬으로서 특유의 심포니, 어떤 장르물이든 그 안에서 연애를 하는 한국식 드라마 작법을 따르지 않은 신선함, 실제 존재하는 병원을 옮겨놓은 듯한 현실감 등의 재미를 느낄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PPL과 O.S.T까지 살뜰하게 챙기면서 가져간 변화의 전략이 통했음은 각종 성적으로 증명된다. 비록 시즌1에서 느꼈던 신선한 충격, 기존 드라마와 다른 차원의 극 전개가 그립지만, 제작진의 대중적 감각만큼은 머리 숙여 인정하게 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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