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모’의 남장여자 설정에 담긴 나다운 삶의 메시지

[엔터미디어=정덕현] “저는... 한 번도 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궐을 떠나 네 삶을 살라는 혜종(이필모)의 명에 세자 이휘(박은빈)는 그렇게 말한다. 그는 태어난 대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쌍생 여아라는 이유로 죽을 위기에 처한 채 버려지고, 운명처럼 궁으로 돌아와서는 죽은 제 오빠를 대신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비밀을 숨긴 채 살아왔다는 걸 심지어 아버지인 혜종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모른 척 했다. 그 역시 아버지로서 어찌 자식에 대한 연민이 없었겠냐마는 왕으로서 사사로운 부모 자식 간의 정에 휘둘릴 수는 없는 일이었을 게다. 그런 그가 강상죄를 논하는 유생들의 반발로 이휘에게 폐세자를 명한 후 드디어 숨겼던 속내를 드러냈다. ‘하나 뿐인 딸’인 이휘에게 궁을 나가 제 삶을 살아가라 명한 것.

KBS 월화드라마 <연모>에서 이휘는 드디어 남장을 벗었다. 사랑하지만 세자로서 밀어낼 수밖에 없었던 정지운(로운) 앞에서도 자신이 여인임을 드디어 드러냈다. 전형적인 남장여자 콘셉트 스토리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장면이다. 세자에 대한 충심이 아닌 연심을 품었던 정지운은 이제 이휘의 진면목을 마주하게 됐다.

남장여자 콘셉트의 멜로 사극이지만, 이휘가 “제 삶”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을 때, 이 드라마는 달달하고 애틋한 사랑이야기만이 아닌 ‘나 다운 삶’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걸 드러낸다. 즉 이 이야기는 어째서 이휘가 그런 남장여자 행색을 한 채 살아야 했는가에 대한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건 이휘의 외조부인 한기재(윤제문) 같은 세도가의 권력욕 때문이다. 한기재는 이휘를 왕으로 만들어 그를 꼭두각시처럼 부리려 한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르려 한다. 그래서 이휘는 세자여야 하고 남자여야 하며 폐세자가 되어서도 다시 궁으로 돌아와 왕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 물론 그건 이휘가 원했던 삶이 아니다.

심지어 이휘가 태어난 대로의 그 자신이 아닌 ‘남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왕인 혜종 역시 이를 묵인한다. 왕권을 단단히 유지하기 위해 그 역시 이휘가 강한 세자로서 서 있어야 했다. 실로 <연모>에 등장하는 어른들 대부분은 권력을 위해 자식까지 내버리거나 이용하는 인물들이다. 한기재가 그렇고 정지운의 아버지 정석조(배수빈)가 그러하며 혜종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구도로 <연모>를 들여다보면 이휘와 정지운의 멜로에 담겨진 권력에 눈먼 기성세대와의 대결구도가 엿보인다. 즉 이들의 금기까지 뛰어넘는 사랑은, 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식들을(이휘, 정지운) 이용하며 그들 자신의 삶을 살 수 없게 막으려 하는 것에 대한 저항처럼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휘는 한 번도 제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그에게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제 삶을 살 수 있게 해준 이는 다름 아닌 정지운이다. 마치 자신의 마음처럼 폐가가 되어버린 궁궐 속 그들만의 추억이 담긴 그 공간에 들어온 정지운은 그 곳에 꽃을 심는다. 그 꽃이 이휘의 마음속에서도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물론 남장여자 설정은 멜로를 더 애틋하게 만들고, 퀴어 코드를 더해 금기를 넘는 아슬아슬함을 더해주는 장치다. 그런데 <연모>에서 이휘가 남장을 벗고 정지운과 드디어 자신의 모습으로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그 이상의 메시지가 읽힌다. 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살고 싶지만 그걸 허락하지 않는 기성세대의 억압이 그 장면에 드리워져 있어서다. 과연 이휘는 남장을 벗고 드디어 제 삶을 살 수 있을까. <연모>의 설렘에는 연애감정과 더해진 억압을 벗어난 자유로운 삶에 대한 두근거림이 더해져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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