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비선대까지 60kg 짊어지고 8천원, 그걸 모아 1억 기부한 천사

[엔터미디어=정덕현] 무려 45년간이라고 했다. 요즘은 60kg 정도지만 초창기에는 무려 130kg에 달하는 냉장고를 지고 설악산을 올랐다고 했다. 흔들바위, 비선대, 비룡폭포는 물론이고 대청봉 꼭대기까지 등산객들이 먹을 것들이나 산장 등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지게에 지고 날라주는 일.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재야의 고수’로 소개한 임기종 선생님(65)은 말 그대로 ‘설악산의 작은 거인’이었다.

그 역시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길’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다리에 알이 배고 어깨에는 피멍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6개월 정도를 지나고 재능을 찾아다 생각했다 한다. 짐을 지더라도 지치지 않고 심지어 빈 몸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

그토록 힘든 노동이지만 그 노동의 대가는 충격적일 정도로 적었다. 일반인이 그냥 걸어가도 몇 시간씩 걸리는 산길을 자기 몸무게를 훌쩍 넘기는(심지어 두 배가 되는) 짐을 지고도 더 빨리 오르는 그지만, 흔들바위까지 2만원, 비선대 8천원, 비룡폭포는 오르막이 별로 없어 6천원을 받는다고 했다. 대청봉은 25만원을 받지만 그것도 오르는 데만 6시간 내려올 때는 4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는 산을 오르는 것이 인생살이와 같다고 했다. “모든 게 다 그렇잖아요.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힘들어요. 내려올 때 많이 다치더라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잖아요. 산도 그렇잖아요. 높은 산은 골이 깊잖아요. 인생살이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 말은 어찌 보면 흔하게 우리가 쓰는 표현일 수 있었지만 유재석은 그의 말에 깊게 동감했다. 그것은 그저 표현이 아니라 그가 45년을 짐을 지고 산을 오르내리며 체감한 삶에 대한 무게가 얹어진 말이기 때문이었을 게다.

산장이 사라져 지금은 마지막으로 남은 지게꾼 임기종 선생님. 이 힘들지만 생계가 될 정도의 벌이도 되지 않는 일을 혼자서 남아 하는 이유를 유재석이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올릴 사람이 없으니까 나라도 남아서 마무리를 해줘야 되니까는 남아서 올려주는 거죠. 70까지 해줘야겠다 생각해 내 갈 길을 가는 거죠.” 그에게 짐을 지고 오르는 그 일은 그런 의미였다. 모두가 떠나도 할 사람이 필요한 일이니 끝까지 하는 그런 일.

마라톤이 꿈이었지만 너무 가난해 포기했다는 그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자 5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지게 지는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게 아니면 굶어죽을 판이었다고 했다. 그 어린 나이에 등짐을 지고 산을 고행처럼 오르는 임기종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유재석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먹먹해져 말을 한 동안 잇지 못했다. 하지만 숙연해진 분위기에 그는 해맑게 웃으며 “제가 직업의 선택을 잘 했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라며 웃었다. “설악산이 엄청 크잖아요. 사업장이 엄청 큰 거죠.”

하지만 수입이 줄어 등짐 지는 일만으로 생활이 어려운 그는 일용직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 했다. 게다가 알고 보니 아내도 장애 2급으로 혼자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를 짓누르는 인생의 무게는 설악산을 오르고 오르며 지고 있는 그 짐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가 이렇게 번 돈으로 지금까지 기부한 돈이 무려 1억이라는 사실이다. “애들 간식거리 갖다 주고요. 노인들 효도여행 시켜드리고요. 독거노인들 쌀을 열 가정을 갖다 줬어요. 24년 동안 하다가 다 돌아가셔서 지금은 한 분도 안 남아 계셔요.”

그는 벌어서 모두 기부했다고 했다. 자신한테 쓰는 건 굉장히 아까웠지만 갖다 주는 건 너무 기분이 흡족하더란다. 그는 자신을 위해 쓰는 게 별로 없었다. 옷도 누가 갖다 준 거 입었고 그의 신발은 항상 해져 있었다. 그래도 기쁘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갖다 주는 것이. 장애를 가진 아내와 결혼하게 된 것도 그의 남다른 타인에 대한 마음을 느끼게 해줬다. “집사람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부족한 걸 채워주고 빈 공간을 채우면서 같이 살면 백년해로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내의 부모는 어차피 책임 못질 것이고 그래서 살다 버릴 거라 거절했지만 결국 허락을 얻어내 결혼한 부부는 그렇게 30여 년을 서로의 발을 주물러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가 기꺼이 기쁘게 짊어진 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이가 지적장애로 시설에 간 지 어언 20년이 흘렀다는 것. 그가 그 어려운 형편에도 기부를 해온 것은 사실 그 아들 때문이었다. 보호시설에 간식거리를 갖다 주면 아들을 더 많이 챙겨줄 거라 생각해서 그렇게 했는데, 아들이 너무 잘 먹고 해맑은 표정을 짓더란다. 그래서 다른 곳도 갖다 줘야겠다 생각했고 기부가 시작되었다.

45년 간 엄청난 무게의 짐을 지고 설악산을 오르내린 그 고행과 넉넉지 않은 형편에 기부를 해온 데는 아마도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터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용아. 너무 미안하고 너무 미안하고 너무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연거푸 하는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에게 산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무거운 등짐보다 더 무거운 삶을 그는 짊어진 채 살아오지 않았을까.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없지 않았을 테지만 그는 그런 차원을 이미 뛰어넘고 있었다. 그는 산이 “내 부모”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고 했다. “품어주고 안아주고요. 산에 가면 편안하니 마음이 흡족하고 너무 좋더라고요. 내 부모라 느껴지더라고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도 묵묵히 걸어 나가는 그는 ‘인생의 고수’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인생의 고수를 찾아내고 소개해준 <유퀴즈 온 더 블럭>의 가치가 새삼 느껴질 정도로.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