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의생’, 어느새 시청자들이 기다리는 드라마가 된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이제 목요일이 되면 당연하다는 듯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는 일이 익숙해진 느낌이다. 마치 이 드라마는 우리네 일상의 한 부분으로 들어온 것만 같다. 굉장한 사건이 매회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다음 주 무슨 이야기가 이어질 것인가를 기다리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게 만든다. 도대체 이 드라마의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건 매력적인 인물들에서 나온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보면 볼수록 자꾸만 보고 싶은 인물들이 넘쳐난다.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며 항상 밝은 얼굴로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익준(조정석)이 시청자들에게 유쾌한 기분을 준다면, 신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소아과 의사로서 살아가며 일상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안정원(유연석)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까칠한 듯 보이지만 남달리 후배 도재학(정문성)을 챙기고, 익준의 여동생 익순(곽선영)과 달달한 사랑을 이어가는 김준완(정경호)이나, 아웃사이더로 살아가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양석형(김대명)과 그런 그를 좋아하는 추민하(안은진)의 관계, 또 안정원과 장겨울(신현빈) 사이에 조금씩 생겨나는 감정들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채송화(전민도)를 사이에 두고 보이지 않게 신경전을 벌이는 이익준과 안치홍(김준한)의 삼각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이런 의사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딸에게 간이식을 어떻게든 해주기 위해 살을 빼고 온 아버지의 이야기 같은 환자들의 감동적인 사연들이 더해진다. 이제 매회 어떤 사연이 소개될 지도 기다려진다.

대부분의 미니시리즈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굵직한 사건 전개를 다루곤 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보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특이한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9회의 내용은 그래서 율제병원에서 벌어지는 의사들이 환자들을 보는 장면들이 별다른 극적 장치 없이 병렬적으로 구성되어 보여진다. 하지만 그 특별할 것 없는 이들의 진료 과정이나 병원 생활을 시청자들은 빠지듯 들여다보게 된다. 자잘한 상황들에서 나오는 인물들의 면면을 이제 시청자들은 이해하는 터라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이렇게 매회 극적인 사건을 전개시키지 않아도 시청률이 12.1%(닐슨 코리아)까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것이 매주 2회 편성이 아닌 1회 편성이라는 실험을 통해서 구현되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놀랍다. 사실 매주 드라마 2회 편성은 나름의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한 편이 방영된 후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 모으고 그래서 다음 편을 바로 다음 날 편성하는 것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방식이 그것이다.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그런 극적 장치도 또 편성전략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신원호 PD가 선택한 건 인물들 하나하나의 매력을 디테일하게 살려, 마치 우리가 어떤 호감 가는 사람을 계속 보고 싶게 되는 것처럼, 시청자들이 그 인물을 찾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슬기로운 선택은 옳았다. 이런 방식이라면 시즌을 몇 차례 거듭한다 하더라도 그 인물들의 매력을 통해 지속적인 인기를 끌어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애초 ‘프렌즈’ 같은 드라마가 됐으면 한다는 이우정 작가의 의중은 그래서 제대로 주효했다고 보인다. 시트콤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 상황들의 묘미들이 무한정 그려질 수 있고 무엇보다 그 상황을 더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그래서 시즌제 드라마의 색다른 문법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