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 드라마와 PPL 사이의 평행세계가 그려질 정도라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영이가 골라온 커피가 황실 커피랑 맛이 똑같아. 첫맛은 풍부하고 끝맛은 깔끔해. 대한민국은 이걸 시중에서 판다고?” 중간광고인가? 아마도 시청자들 중에는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SBS 금토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이하 더 킹)> 속 한 장면이다. 이 부분이 중간광고처럼 여겨진다는 건, 드라마의 맥이 순간 끊겼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PPL이야 늘 드라마 속에 존재해왔다. 하지만 <더 킹>의 PPL은 아예 그 부분의 대사를 전담하는 작가가 따로 있는 것처럼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또한 대사로 처리되어 있다. “그 신문물은 뭔데, 얼굴, 입술 다 바르시나 해서..” 강력계 막둥이인 장미카엘(강홍석)이 차 안에서 김고은이 얼굴과 입술에 바르는 화장품을 쓰자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김고은의 중간광고 같은 PPL이 이어진다. “와,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애들 앞에서는 멀티 밤도 못 바란다더니. 이거 하나면 다 돼.”
얼굴에 쓰는 LED 마스크, 치킨, 김치, 버블티... 중간광고 같은 PPL은 끝없이 이어진다. 중요한 건 PPL이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배경으로 등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인물의 대사는 물론이고 특정 상황극까지 만들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LED마스크를 마치 아이언맨 마스크나 되는 것처럼 써보는 조은섭(우도환)에게 이곤(이민호)이 황제는 물건을 같이 쓰지 않는다며 조영 노트북의 비밀번호를 열어주면 하나 구입해주겠다는 대사가 그렇고, 다이어트 때문에 고구마만 먹는다는 구서령(정은채) 총리에게 뜬금없이 조은섭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김치를 꺼내 놓으며 “고구마엔 김치죠”하는 대사가 그렇다.
김치 PPL은 정태을(김고은)과 장미카엘이 잠복근무 하는 중에 라면과 김치를 먹을 때도 노골적으로 등장한 바 있다. 장미카엘이 김치봉지를 카메라 앞에 내밀자 정태을이 김치를 집어 먹고는 “아, 시원해, 장미 김치 좀 먹을 줄 아네.”하는 대사가 이어진 것. 흑당 버블티 PPL은 카페에서 나리(김용지)가 이곤과 정태을에게 갖다 주며 “젓지 말고 그대로 한 입 쭉 먹고 달콤함을 느낀 후에 저어 드세요.”라고 친절한(?) 설명까지 붙여주었다.
치킨은 아예 등장인물의 아지트가 되어 단골 메뉴로 올라오고, 배달앱을 통해 먹는 장면도 계속 등장한다. 이민호가 그 치킨의 광고모델인지라 그래서 그 장면은 광고와 드라마 사이를 마치 평행세계처럼 이어놓는다. 이 정도면 드라마에 보조적으로 PPL이 얹어지는 게 아니라, 아예 PPL을 중심적인 이야기 중 하나로 다루는 느낌이다.
사실 <더 킹>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두 평행세계를 두고 벌어지는 이곤과 이림(이정진)의 대결이라는 꽤 흥미진진한 소재와 스토리 구조를 갖고 왔다. 하지만 이런 흥미로운 소재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는 김은숙 작가답지 않은 선택들을 함으로써 시청률에서도 화제성에서도 그리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더 큰 치명타는 너무나 노골적인 PPL이다. 시청자들은 그 흥미진진할 수 있었던 평행세계를 효과적으로 그려내지 못해 혼돈스러운 가운데, 이제는 드라마와 PPL이 마치 평행세계처럼 간섭을 하는 혼돈을 느끼고 있다. 몰입을 깨는 PPL은 결국 인물들의 감정선을 살려내기 어렵고 이야기의 진정성마저 훼손할 수 있다. 좋은 작품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PPL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 극대화를 위해 작품이 훼손되는 것도 감수하며 PPL을 하는 건 그 의미 자체가 다르다. 진정성의 훼손은 그래서 치명적이다. 돈은 벌었을지 몰라도 작품도 명성도 망가지게 되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