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입니다’의 미스터리, 우린 정말 서로를 잘 알고 있을까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레시피가 다르면 요리의 차원이 달라진다. 드라마라고 다를까. 졸혼, 자살시도, 기억상실, 불륜, 출생의 비밀, 키워드만 쭉 써놓고 보면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핵심 소재들은 전형적인 막장 드라마 소재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홈드라마를 가장한 막장 드라마들이 보통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는 질문에 천착한다면, ‘가족입니다안 그러던 사람이, 어쩌다가 이랬어?”라는 질문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복수의 쾌감과 인과응보에 집중하는 대신, 관계가 틀어지고 일이 어긋나기 시작한 원인이 무엇인지 먼저 대화부터 나누자는 가족입니다의 태도는 근래 찾아보기 드물게 성숙하다.

[TV삼분지계] 세 평론가들의 감상평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석희 평론가는 상식(정진영)을 보면서 자신도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잘 몰랐다는 생각을 했다고 고백하며, 우리 또한 오해와 예단으로 잃어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김선영 평론가는 가족에 대한 질문을 가족 안에서 가장 크게 소외받아 왔던 엄마 진숙(원미경)의 말로 시작한다는 점을 반가워하며, ‘가족끼리의 일이란 말로 봉합되어 왔던 일들에 대한 탐구를 수행하는 작품이란 점에서 반가움을 표했다. 이승한 평론가는 잘잘못을 따지고 가릴 때 가리더라도, 쉬운 단죄를 말하기 전에 먼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대화를 나누자는 작품의 신중한 태도를 칭찬했다.

◆ 우리가 예단과 오해로 잃어버린 것은 또 얼마나 많을까

돌아가신 내 아버지는 육 고기를 일체 안 드셨다. 비위에 안 맞아 못 드신 건지 뜻하는 바가 있어 멀리 하신 건지 알 수 없다. 사실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릴 적 가끔 이름 붙은 날 외식을 하면 불고기백반을 주로 먹었는데 아버지께서는 뭘 드셨는지 그도 알 수 없다.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를 보는 동안 자꾸만 아버지 생각이 났다. 진숙(원미경)이 딱 내 연배인지라 그 처지에 감정이입이 될 만도 한데 처자식 중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는 상식(정진영)이 눈에 밟힌다.

상식이 산에서 실족 사고를 당한 후 사위 태형(김태훈)이 큰딸 은주(추자현)에게 물었다. 장인어른이 본래 밤 산행을 했느냐고. 상식과 가장 살가웠던 자식, 타인의 감정 변화에 민감한 은주조차 아버지의 근황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왜 자살을 결심하고 수면제를 모았던 걸까? 돌아보면 나는 우리 아버지가 고민이며 걱정거리가 있으리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아는 게 별로 없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없다. 사고로 기억이 스물두 살에 멈춘 덕에 둘째 딸 은희(한예리)와 감정적으로 화해한 상식이 딸 손을 잡고 밤길을 기분 좋게 걷는다. 그 그림을 보고 있자니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은주가 엄마 진숙을 매섭게 다그친다. "왜 나만 데리고 나갔어? 은희는 두고. 나 다 기억해. 하루 종일 굶어서 배가 너무 고팠는데 나 말 안 했어. 내가 배고프다고 하면 주스 마시라고 할까 봐. 엄마가 주스 병에 약 넣는 거 봤거든. 엄마 나랑 죽으려고 했잖아."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꾹꾹 눌러온 아픈 기억이리라. 허나 실은 진숙이 병에 넣은 건 독초 가루였다. 들어 선 셋째 지우(신재하)를 지울 요량으로. 남의 감정을 잘 안다고 자부해왔을 은주지만 예단과 오해로 인해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많나. 굳이 따지자면 등장인물 중 은주와 같은 성향인 나. 나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을까?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

가족이라는 소재에 아직도 새롭게 풀어낼 이야기가 남아 있을까.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는 이에 대해 그렇다고 힘주어 답하는 듯한 드라마다. 이는 진숙(원미경)이 자녀들을 집으로 불러모으는 도입부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남편과 각방을 쓰는 큰딸 은주(추자현)를 향해 부부 사이에는 아이가 있어야 한다. 아이 없으면 끈끈한 부부애도 안 생겨라고 잔소리하는 진숙은 우리가 익히 아는 옛날 엄마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요즘 시대의 젊은 여성인 은주가 진숙의 졸혼 선언에 평생 집에만 있었으면서 그런 일을 어떻게 해요?”라고 단정 짓듯 말하는 순간, 진숙은 곧바로 되물어온다. “내가 왜 못해. 네가 날 알아?”

진숙의 반문은 이 드라마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말하자면 가족 유형 다변화 시대를 반영한 많은 홈드라마가 뻔한 가족의 형태를 해체하는 데 차별점을 두려 했다면, ‘가족입니다는 오히려 기본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우리는 가족에 대해 정말 알고 있는가라고. 더욱이 이 질문을, 현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가장 소외돼왔던 엄마의 말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 반갑다. 우리의 엄마들은 어쩌다 옛날 엄마가 되어갔을까.

가족입니다는 이 사소하게여겨졌던 물음들을 미스터리 플롯으로 풀어나간다. 이는 서사적으로도 흥미로울 뿐 아니라, 가족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교정하는 효과로도 이어진다. 요컨대 지금까지 가족끼리의 일이라는 말로 봉합되어왔던 수많은 문제가 본격적인 미스터리 탐구 영역이 된다는 점에 이 드라마 최고의 미덕이 있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미워할 때 미워하더라도

서로를 향한 오해와 원망 때문에 오랫동안 대화가 드물었던 김씨네 집안은, 무심하고 무뚝뚝한 가부장인 상식(정진영)이 기억을 상실하고 아내 진숙(원미경)을 열렬히 사랑하던 풋풋한 스물 두 살의 기억으로 돌아간 것을 계기로 그간 못했던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른다는 사실만을 다시 확인한다. 상식은 자신이 어떤 가부장이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진숙은 상식이 울산에 두고 온 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고, 은희(한예리)는 아빠가 왜 은주(추자현)만 더 편애했는지 알지 못하고, 은주는 엄마가 어떤 삶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른다. 서로를 잘 몰라서 이처럼 원망했던 걸까? 아니, 서로를 이렇게나 잘 모르고도 어떻게 용케 원망할 수 있었던 걸까?

얼핏 잘못 보면 가족입니다는 서로의 잘못을 적당히 덮어주는 것으로 전통적인 가정모델을 수호하고자 하는 작품처럼 보일 수도 있다. 결코 좋은 배우자라 할 수 없어서 1회 초반까지만 해도 졸혼 요구를 받는 게 당연하다 여겨졌던 상식이 기억상실 이후 급격하게 로맨틱한 남자로 돌변하는 대목은 이것이 그를 쉽게 면책해주기 위한 술책인가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가족입니다는 쉽게 신파조의 이야기로 연막을 치거나 조건 없는 용서를 말하는 대신, 보다 신중한 태도로 가족들의 오해가 어디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는지 그 타래를 풀어 나간다.

두 사람 사이가 뭐가 꼬인 건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네 엄마 잘못이 아니라 내가 뭔가 잘못한 걸 거야라며 상대를 믿는 태도를 고수하는 상식의 모습이나, 은주가 엄마 진숙을 향한 오랜 원망을 늘어놓자 진숙이 어렵게 진실을 토로하며 내가 죄가 많다고 인정하는 장면은 대화의 선결조건을 제시한다. 우선 상대를 최대한 선해할 것, 그리고 자신의 잘못이라면 솔직히 말하고 인정할 것.

이 작품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우린 아직 모른다. 상식과 진숙이 다시 한번 좋은 부부로 거듭나길 도전해 볼 수도 있고, 오해를 다 풀고도 그간의 감정소모를 돌이킬 수는 없어서 졸혼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렇게 대화하려 노력한다면, 두 사람은 미워할 때 미워하더라도 최소한 영문도 모르고 서로도 모른 채 미워하는 결말을 맞이하진 않을 것이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사진·영상=tvN,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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