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입니다’, 홈드라마의 진화를 보여줄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tvN 월화드라마 <가족입니다>는 ‘아는 건 별로 없지만’이란 전제가 붙는다. 그리고 이 ‘아는 건 별로 없지만’은 <가족입니다>의 특별한 역할을 한다. 사실 드라마에서 아무리 훈훈하게 포장한들 가족끼리 생각보다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족들은 서로를 오해하기도 한다. 혹은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오히려 다행인 경우도 있다. 많은 것을 알면 오히려 서로에게 심한 상처가 될 수도 있어서다. 어찌 보면 가족이란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부부끼리 서로의 비밀을 눙치고 감추고, 그러면서 평온함을 유지하며 굴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일반적인 한국의 홈드라마에서는 이런 가족의 속성을 일부러 외면한다. 기껏해야 홈드라마의 비밀은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 상대를 숨기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가족입니다> 역시 가족간의 비밀을 파헤치는 스릴러류의 드라마는 아니다. 오히려 <가족입니다>는 전형적인 홈드라마의 구성을 갖추었다. 김은희(한예리)의 집은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남매 5인 가족이다. 그렇지만 <가족입니다>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 시청자는 일반적인 홈드라마와 다른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소소한 장면들에서 웃음이 터지곤 한다.
그것은 <가족입니다>가 지닌 ‘아는 건 별로 없는’ 관계를 그려내는 현실감에 있다. 특히 주인공 김은희(한예리)는 밝은 강아지 같은 성격이라 오히려 타인의 어둠이니 비밀 같은 것을 짐작하지 못한다. 김은희는 모두에게 공감할 것 같은 성격이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타인을 피상적으로 이해한다. 그녀를 짝사랑해온 절친 박찬혁(김지석)의 감정선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이성적인 성격의 언니 김은주(추자현)의 아픔을 짐작하지 못했던 것도 그러하다. 또한 긴 시간 사귄 남자친구가 바람피우는 걸 전혀 몰랐던 것도 이런 성격에 기인한다. 늘 밝고, 모두에게 공감하지만, 정작 타인을 깊이 있게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가족입니다>는 오랜 연인과의 이별 이후 조금 더 성숙해진 주인공 김은희를 보여준다.

홈드라마에서 밝고 씩씩한 성격의 여주인공은 흔하다. 하지만 이들과 김은희가 다른 점은 <가족입니다>는 여주인공 캐릭터의 장점만이 아니라 단점까지 알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데 있다. 심지어 그녀가 겉보기에는 꽤 인간적인 매력의 사람으로 보임에도 말이다. <가족입니다>는 전혀 새롭지 않을 법한 홈드라마의 여주인공의 성격을 현실감 있고 생생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한 셈이다.
이 외에도 <가족입니다>는 홈드라마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잘게 쪼개고 재가공하는 센스로 눈길을 끈다. 사실 서로 다른 성격의 자매의 성격 충돌 역시 홈드라마의 흔한 갈등구조다. <가족입니다>의 김은주와 김은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족입니다>는 극적인 긴장감을 위해 자매 충돌에 서로에게 지옥 불을 내뱉는 것 같은 감정적인 대사들을 쏟아붓지 않는다.

<가족입니다>에서 일반적인 형제자매 관계가 그러하듯 이성적인 갑은 늘 당당하고 감성적은 을은 늘 ‘쭈그리’가 된다. 그러다 가끔 감성적은 ‘을’이 욱했다가 다시 사과한다. 이 현실적인 패턴을 보다보면 홈드라마의 구조 안에 진짜 가족관계가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냉정한 성격의 김은주가 훈계하듯 동생에게 내뱉는 대사들 또한 엄청나게 현실감이 있다.
이 외에도 <가족입니다>는 홈드라마의 설정들을 비틀면서 작은 웃음을 준다. 시청자에게 익숙한 식상한 홈드라마의 설정을 살짝 보여주었다가, 그것과는 다른 현실적인 결과로 흘러가면서 일반적인 홈드라마와는 다른 아이러니의 맛이 느껴지는 것이다. 티 나게 웃기는 게 아니라 은근히 눙치면서 웃기는 전략이다.

반면 이들의 부모인 김상식(정진영)과 이진숙(원미경)의 관계는 굉장히 드라이하게 그려졌다. 이진숙과 김상식의 갈등 구조인 ‘졸혼’ 같은 것은 홈드라마에서 종종 코믹의 용도로 쓰인다. 하지만 <가족입니다>가 이진숙의 ‘졸혼’ 요구를 그려낸 방식은 진지하면서도 납득이 갈 만큼 절실했다.
그리고 여기에 반전으로 김상식의 사고 후 기억상실이 등장한다. 언뜻 홈드라마의 빤한 패턴인 기억상실을 어떻게 살려낼지가 <가족입니다>의 성공 여부 같다. 여하튼 김상식은 22살의 청년으로 돌아가 열렬히 이진숙을 사모하던 젊은 남자가 된다. 그리고 전혀 기억 안 나는 세 명의 자녀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극 초반부의 기억상실 설정은 <화려한 유혹>에서 ‘할배파탈’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정진영 덕에 꽤 그럴싸하게 보였다.

하지만 정신만 22살이 된 남편과 한때 남편을 사랑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은 아내와의 관계를 어떻게 의미 있게 풀어갈지가 <가족입니다>의 숙제다. 만약 <가족입니다>가 이 설정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면, 이 드라마는 홈드라마의 새로운 진화를 이끌어낸 작품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관련기사
- 원미경부터 한예리까지, ‘가족입니다’ 우리 시대의 찐 가족들
- 종횡무진 ‘미스터트롯’ 톱7, 생명력이 긴 이유는 따로 있다
- ‘굿캐스팅’ PD의 신통방통한 연출력으로도 살리지 못하는 건
- ‘꼰대인턴’ 장성규, 한지은 전남친 진상 고객 등장…박해진·한지은과 연기 케미도 찰떡
- ‘가족입니다’, 22살 된 정진영의 가깝고도 먼 가족의 초상
- ‘가족입니다’, 오해와 예단으로 우리가 숱하게 잃어버린 것들
- ‘가족입니다’ 충격 반전, ‘부부의 세계’ 뺨치는 가족의 세계
- ‘가족입니다’, 오늘 당신의 가족들은 안녕하십니까?
- ‘가족’, 잇단 충격적 가족사 속 김지석이 돋보이는 이유
- ‘가족’ 정진영·원미경, 왜 엉뚱한 의심하고 숨기려고만 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