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만 코미디’, 반드시 콩트를 살려야 한다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KBS2 <개그콘서트>가 끝나고 JTBC <장르만 코미디>가 왔다는 분위기다. 21년 역사를 뒤로 하고 <개그콘서트>가 종영된 직후 <장르만 코미디>가 론칭됐다. 시기적으로 연결된 양상이지만 <장르만 코미디>는 그 외에도 여러 차원에서 <개그콘서트>와 연관돼 있다.
우선 <개콘>을 한국 최고의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한 서수민 PD가 JTBC로 이적해 선보인 것이 <장르만 코미디>라는 점에서 그렇다. 배우 오만석 외 핵심 출연자들인 김준호, 김준현, 박영진, 유세윤, 안영미 등이 <개콘> 출신이라는 점도 그 연관성에 힘을 보탠다. <장르만 코미디>의 한 코너인 ‘장르만 개그맨’은 아예 종영으로 생활이 어려워진 <개그콘서트> 중견 개그맨들의 일상을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다룬다. 이래저래 <개콘>의 체취가 은근 묻어난다.
<개그콘서트>와 <장르만 코미디>는 모두 희극 연기, 콩트 예능이라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물론 <개그콘서트>는 공개 코미디이고 <장르만 코미디>는 관객이 없어 다르다. 하지만 <개그콘서트> 종영으로 공개 코미디는 지상파에서 전멸했고 tvN <코미디 빅리그>로 명맥만 간신히 유지되는 상황에서 같은 콩트 기반이라는 점도 둘의 유전자가 같은 계열임을 느끼게 한다.

사실 공개 코미디는 예능의 혼이다. 언젠가부터 공개 코미디의 엔딩을 장식하는 개그맨이 아니라 버라이어티 예능의 MC가 최고의 희극인이 되는 풍토로 바뀌었지만 그런 국민 MC들에게도 콩트는 각별하다. 유재석은 관객들 앞에서 콩트하는 공개 코미디 무대에 늘 오르고 싶어했고 신동엽은 콩트 연기로도 여전히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MC다.
예능인들은 기본적으로 공개 코미디에 존경심과 회귀 본능 같은 것을 갖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톱 예능인들 대부분을 배출한 곳이 공개 코미디였다. 현재 빼어난 활약을 보이는 많은 예능인들의 근간은 대학로 연극무대나 <개그콘서트>를 거치면서 다진 콩트 능력이라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럼에도 공개 코미디나 콩트는 한국 예능가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좀 더 호흡이 짧고 단편적, 산발적인 웃음의 연속에 대중의 취향이 맞춰지면서 리얼 버라이어티에 자리를 빼앗겨왔다.

대중들의 선택이니 방송사들은 따라가야 하겠지만 예능의 토대, 예능인의 산실이 사라지는 이 추세는 장기적으로 예능계를 부실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장르만 코미디>의 등장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공개 코미디는 아니고 무대 없는 드라마타이즈 스타일의 코미디라 반쪽의 명맥 유지이지만 그래도 개그맨들이 콩트를 지속할 수 있는 새 프로그램이 <개콘>의 빈자리를 어느 정도 대체해낼 수 있게 됐다. <장르만 코미디>는 공개 코미디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관객은 일단 포기하더라도 콩트의 생존을 다양성과 확장성에 승부를 건 듯하다.
‘숏폼 드라마’라는 짧은 드라마타이즈 코미디 형식에 웹툰, 드라마, 예능, 음악 등에서 소재를 자유롭게 가져와 콩트에 대한 새로운 관심 몰이를 시도하고 있다. ‘쀼의 세계’같은 코너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 ‘끝보소(끝까지 보면 소름돋는 이야기)’는 웹툰, ‘장르만 개그맨’은 휴먼 다큐 등 다양한 장르를 코미디 소재로 빌려오고 있다.

넷플릭스같은 OTT 플랫폼 포맷을 가져다 쓴 ‘코플릭스’, 음악과 병맛이 뒤섞인 유튜브 콘텐츠가 연상되는 ‘억G 조G’ 등 최근의 미디어 플랫폼(혹은 플랫폼의 콘텐츠)의 특징들을 차용하기도 하는데 엽기, 패러디, 블랙코미디 등 콩트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웃음 코드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가까이는 게임 등 새로운 소재를 가져다 쓰면서 패러디, 엽기 등 다양한 콩트를 선보였던 <SNL 코리아>나, 미스터리 스릴러와 블랙코미디가 결합된 1990년대 <테마게임> 등과는 어딘가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장르만 코미디>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특히 궁금하다. 이 프로그램의 성패는 연출자 서수민 PD 개인이나 JTBC 예능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콩트가 성공하면 공개 코미디의 부활로도 확장이 가능해지고 예능의 토대가 다시 튼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개 코미디나 콩트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예능인들은 어떻게든 배출되고 공급될 것이다. 콩트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콩트는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예능에 녹아든 채로 시청자들을 만날 것이다. 하지만 콩트로 단련된 예능인들이 줄어든 예능계는 기본기 부실로 ‘노잼’까지는 아니더라도 ‘덜잼’이 될 수 있다. <장르만 코미디>는 그런 갈림길에 서 있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JTBC]

